블라디미르 시린은 오늘날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때 러시아를 대표하던 모더니스트였다.
그러나 그의 삶은 불행했다. 그는 모더니스트였지만, 가난했고, 또 한 사악한 포스트모더니스트에 의하여 불행한 생을 마감했다.
심지어 그를 살해한 포스트모더니스트는 자신이 마치 시린인 양 코스프레를 하며 한동안 사람들을 속이기까지 한다. 인간으로서 당할 만한 모든 모독은 다 당한 셈이다.
오늘은 러시아를 지키고자 했던 한 모더니스트의 진짜 이야기다.
블라디미르 시린은 1899년, 제정 러시아의 귀족 집안에서 맏이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블라디미르는 자유주의자였고, 어린 블라디미르 시린은 어릴 적부터 영어와 불어 등 다양한 교육을 받으며 살아간다.
그러나 이 시기 러시아에 산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었다.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자, 시린의 아버지 또한 자유주의 케렌스키 내각에 참여하지만, 곧 볼쉐비키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볼쉐비키 혁명이 일어났다.
이에 자유주의자였던 시린 일가는 서유럽으로 도주한다.
우선 그들은 잠시 영국에 머물렀다. 이 과정에서 블라디미르 시린은 캠브릿지에서 공부를 하게 된다.
그 후 다시 독일로, 1차 대전이 끝나고 바이마르 공화국이 세워진 독일로 이주한다.
당시 독일은 혼란 그 자체였다.
많은 러시아 망명객들이 있었다. 그리고 시린의 아버지는 계속 정치 활동을 한다.
그러던 중 참으로 우스꽝스럽고 부조리한 비극이 일어난다.
1922년, 평소처럼 정치 모임에서 일을 보던 블라디미르 시린의 아버지가 러시아 국왕주의자 극우에게 암살당한다.
그러나 정작 시린의 아버지가 암살의 목표가 아니었다. 시린의 아버지는 암살자들이 쏘고자 했던 이를 감싸고, 대신 죽었다.
그리고 이 소식은 시린 일가에게 한 통의 전화로 전해졌고, 이는 시린에게 있어 참으로 트라우마처럼 남은 기억이 되고 만다.
그 후 시린의 작품엔 이러한 우연적이고 부조리한 죽음과 전화들이 지배하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과 정치와 관련이 있다고 여겼을까, 평생을 어떻게든 병적으로 '정치'와 거리를 두고자 한다.
"샬롯, 당신이 차에 치였다고 전화가 왔어!"
아버지의 죽음 직후 그의 어머니를 비롯한 일부 가족들은 체코로 떠났지만, 블라디미르 시린은 베를린에 남았고, 러시아 망명자들과 교류를 하며 러시아어로 시를 발표하기 시작한다.
제법 러시아 망명자들 사이에선 이름을 알리게 되었고, 그의 시를 알던 한 러시아 유대계 남자의 소개로 그의 딸 베라와 1923 년 결혼하게 된다.
소설도 발표하고, 또 이런저런 허드렛일들도 하면서 블라디미르 시린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베를린에서 힘겹게 살아가기 시작한다.
사실 블라디미르 시린은 전통적인 의미의, 혹은 영미권의 모더니즘과는 거리를 두었다. 오히려 싫어하는 쪽에 가까웠다.
"조이스의 글은 좋아하지만, 난 그에게서 영향 받지 않았다고요"
그는 에즈라 파운드나 T.S. 엘리엇 같은 현대 영미 모더니즘과 현대 시의 중요한 지점들을 경멸하였고,
토마스 만 같은 이도 싫어하였다.
물론 그가 좋아하는 모더니스트들도 있었다. 조이스, 카프카, 그리고 프루스트.
그러나 그의 진정한 사랑은 그가 어쩔 수 없이 떠나야했던 고향 러시아였다.
특히, 그는 그의 선배들, 언젠가도 말했던 일명 러시아 황금세대 다음에 이어진 전성기, 러시아 은의 시대의 작가들을 존경하고 따르며 영향을 받았다.
원래 시를 먼저 썼던 만큼, 그는 시인을 꿈꾸었고, 또 러시아 후기상징주의 시인들에게 큰 영향을 받는다.
콘스탄틴 발몬트, 브류소프, 안드레이 벨르이, 알렉산드르 블로크, 그리고 이반 부닌과 같은 시인들.
특히 이들을 5B라 부르며, 그의 소설 <재능>에서도 언급한다.
이반 부닌은 소설가 이반 부닌 맞다. 원래 시도 썼다.
"좋아, 시린, 그거야."
특히 그가 좋아하고, 영향을 받은 것은 러시아 상징주의의 대표자 중 하나인 안드레이 벨르이였다.
조이스, 카프카, 프루스트와 함께 벨르이의 <페테르부르크>를 모더니즘의 4대 걸작으로 뽑았을 정도로.
블라디미르 시린의 필명 '시린'의 유래 자체는 러시아 민담의 환상의 새의 이름이지만, 동시에 벨르이 등의 러시아 상징주의 시인들을 출판하던 러시아 출판사의 이름이 '시린'이었다는 점 또한 의미심장하다.
아이러니한 점은, 그는 러시아를 사랑하고, 푸슈킨과 고골, 톨스토이를 사랑하며 벨르이를 좋아했지만,
정작 도스토예프스키만은 경멸에 가까울 정도로 싫어했다.
벨르이 같은 상징주의자들의 신비주의적 면모가 도스토예프스키에게서 강하게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물론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러시아 극우에게 암살당했고, 러시아 슬라브 극우의 상징과도 같은 도스토예프스키와는 생리적으로 맞지 않았을 것이며
애당초 자신의 미적 세계관이 워낙 확고하였기에, 그저 맞지 않았을 점도 클 것이다.
어쩌면, 그가 전통적인 영미 모더니즘 작가들 대부분을 싫어하거나 무관심한 것과도 관련이 깊을지도 모른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영미권에 영역되고 소개되면서 영미 모더니즘에도 큰 영향을 끼쳤으니까.
물론 애증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정말로 증오했다면 언급조차 안 하겠지만, 은근히, 그러면서도 도스토예프스키의 <분신>만은 나름 좋아한다고 말하거나,
자신의 수많은 소설들 속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을 패러디하는 것을 보면, 사실....좋아하는 거 아니야?
물론 시린 본인이 도플갱어 테마를 워낙 좋아하고 즐겨 사용하였기에, <분신>을 좋아했을 수도 있다.
"섹스! 세에에에엑스!! 섹스!!!"
"(경멸)"
이런 점에서 사실 블라디미르 시린은 일반적인 모더니스트들과는 조금 관점이 달랐다.
그는 도스토예프스키를 경멸했고, 무엇보다 섹무새 프로이트를 증오하고,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싫어했다.
그의 이론 같은 건 전부 쓰래기라고 여겼고, 툭하면 자신의 글에서 조롱하며, 자신의 글을 프로이트적 관점으로 해석하는 것엔 극혐했다.
또한 <율리시스>가 오디세이아 신화를 재해석하듯, 많은 모더니스트들이 신화에 집착했다면, 그는 신화에 무관심하였다.
대신, 블라디미르 시린은 '패러디'를 하였다. 그가 패러디하는 것은 신화가 아닌, 문학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문학 밖에 모르던 인간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들을 패러디하고, 푸슈킨과 고골을 오마쥬하며, 때론 <밴드 시니스터> 같은 책에서 <율리시스>의 레오폴드 블룸의 아들 루디를 연상케하는 인물과 장면을 넣는 등, 그는 문학을 사랑하고, 패러디한다.
이렇듯, 영미 모더니스트들과는 다르지만, 앞서 말했듯, 그는 러시아 상징주의자들에게 강한 영향을 받았다.
거기에 플로베르 같은 모더니즘 소설가들이 신봉하던 거장을 부정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아주 좋아하고 영향을 받았다.
그러니 러시아 모더니즘의 일원이기도 하니 어쨌든 모더니스트이지 않을까?
시인으로 시작하였지만, 블라디미르 시린은 1926년부터, 약 10년 조금 넘는 기간 동안 9편의 장편 소설과 다양한 단편들도 발표한 소설가이기도 하였다.
물론 모두 그가 사랑하는 러시아어로 쓰여졌고, 상당수 작품의 인물들은 그와 같은 러시아에서 도망친 망명자들이었다.
죽은 마셴카를 그리는 한 러시아 망명자의 이야기를 그린 <마센카 (마리> >를 시작으로, 분신 테마가 등장하는 <킹, 퀸, 잭>, 시린 본인이 좋아하던 체스를 소재로 한 체스 천재의 비극을 다루는 <루진의 방어>, 카프카적인, 혹은 그가 좋아하던 고골적인 환상소설 <사형장으로의 초대>, 도스토예프스키의 <분신>을 대놓고 다시 쓰는 <절망>, 그리고 러시아 문학 자체에 바치는 그의 찬사 <재능> 등 다양한 그의 작품들은 오늘날 러시아 문학의 대표작으로도 알려진다.
어쨌든 블라디미르 시린은 러시아 모더니즘의 끄뜨머리를 차지하던 일원 중 하나였지만, 여러모로 특이하고 괴팍한 존재였다.
그의 취향 자체도 그러했다.
그는 자신만의 확고한 문학관이 있었고, 이걸로 사람을 판단하며, 절대 바꾸지 않았다.
그리고 '완성된 작품'들만을 좋아하였기에, 카프카를 좋아하여도 그의 미완성 장편 등은 거들떠도 보지 않았고, 그토록 좋아하던 프루스트 사후에 출간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후반부에도 무관심했다.
얼마나 편집증적이냐면, 굳이 모더니즘의 4대작을 언급할 때조차,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처음 절반부'라고 굳이 꼬집을 정도였다.
물론 다시 마지막으로 강조하지만, 이러한 모든 시린의 세계관과 취향 등은 어찌되었든 러시아로 귀결되었다.
그가 카프카를 좋아했던 이유조차, 사실상 카프카의 환상소설에 열광한 것이었는데, 여기에서 그가 그토록 사랑하던 '고골'을 보았기에 열광한 것에 가까웠다.
조이스나 프루스트, 혹은 플로베르를 좋아하던 것도, 거기에서 그가 존경하고 사랑하던 톨스토이의 완벽함을 엿볼 수 있어서 열광한 것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에게 언제나 남바완은 퓨슈킨이었고, 러시아 문학 그 자체였다.
애당초 그의 러시아어 소설 최고봉인 <재능>만 봐도 알겠지만, 그냥 이 소설의 히로인은 '러시아 문학'이다.
아무튼, 블라디미르 시린은 알게 모르게 다른 나라에도 알려지긴 하였다.
러시아 망명자들끼리 돌려보던 그의 소설 중 일부는 프랑스어로 번역되기도 하고 또 영어로 소개되기도 하였으니까.
정작 시린 본인은 형편없는 번역에 기겁하며 경멸하였지만, 아무튼, 그는 외국에도 알려졌고, 특히 미국 출판사들과도 연줄을 얻게 되었다.
이는 시린 본인에겐 행운이자 불행이었다.
시린이 어디 살고 있다고? 독일 베를린.
"내 라이히에 유대인과 슬라브는 필요 없다."
히틀러가 증오하는 것 두 가지가 있는데, 유대인과 슬라브인이었다.
블라디미르 시린이야 당연히 러시아 망명자였고, 그의 아내 베라는 유대계 러시아 망명자였다.
점점 험악해지는 독일 내 분위기를 보곤, 시린 일가는 우선 프랑스로 이주한다.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미국으로 이민을 갈 것을 결심한다.
그리하여 1940년, 블라디미르 시린은 자신의 가족과 함께 뉴욕으로 간다.
그리고 시린에게 비극이 일어났다.
"크으, 죽여주는 나비구만."
블라디미르 시린, 아니,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이제 러시아어를 버리고, 모더니스트로서 시린을 죽인 채,
영어로 글을 쓰기 시작하며 포스트모더니스트로서 본색을 드러내고 만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모던과 포스트모던이 나눌 수 있는 단 하나의 불멸이란다, 나의 시린-
모더니스트의 기묘한 모험
- 20세기 최고 시인 예이츠의 환상록과 자서전 읽으쉴?
- <율리시스>는 어떻게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책이 되었는가?
- 위대한 피츠제럴드 (1), (2)
- 토끼공듀의 삶
- 만델스탐의 노래
- 악어들의 거리
- 독일인이 오리라
-머피를 기다리며 (1) 잃어버린 아버지를 찾아서 (2) 계승하는 중입니다 (3) 계속한다, 계속할 수 없다, 계속해야만 한다
모더니스트의 선조들
와아아아 갓보코프다! 갓보코프!
아마 나중에는 부닌과 사이가 틀어졌던 걸로 알고 있음. 개인적으로 나보코프가 부닌 좋아했던 거 신기함. 난 아르세니예프의 인생 읽어 보고 소설가로서의 부닌은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아 누군가 싶더만 페테르부르크 좋아한다는 거에서 살짝 느낌왔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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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테르부르크에서 눈치 챘네 아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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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써주신 글 재밌고 유익해서 열심히 읽고 있는데 오늘은 유독 열심히 읽었어요. 항상 유익한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와 마지막에 소오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