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시절은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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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절판된 책이니 오웰의 다른 작품, 에세이 등에서는 볼 수 없는 부분 중 인상 깊은 내용을 몇 개 더 소개하려 함.
식민지 경찰로서의 교육을 받던 경찰학교 시절. 뒷 줄 키가 젤 큰게 조지오웰임.
1. 가족들에게 버마 경찰 노릇을 그만 두겠다고 선언한 28살의 오웰.
‘어델피’ 등의 잡지에 서평이나 짧은 에세이를 비정기적으로 연재하며
나중에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이란 이름으로 출판될 두 대도시의 부랑자의 삶을 다룬 르포를 쓰고 있었음.
이처럼 뚜렷한 직업이 없는 상황이라, 어머니의 소개로
어머니 친구의 세 아들을 가르치는 가정교사 노릇을 하기도 함.
아래는 그 내용의 일부.
그(오웰)는 1930년과 1931년 세 차례의 방학 중에 소년들을 가르쳤는데 주로 그들과 놀이를 하거나 야외로 나가곤 했다. 소년 중 한 명인 리차드 피터즈는 즐거웠던 이 시기와 그들의 가정교사가 도입한 비전통적 교육방법을 회상하는 글을 나중에 발표했다. 피터즈가 런던대학의 교육철학과 교수로 재직할 때 썼기 때문에 더욱 흥미로운 부분이다.
(중략) “그는 서서히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미소를 지으며, 우리에게 관심을 보여주었고 자신도 우리로부터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오웰은 아이들에게 굽은 핀과 돌돌 말은 빵으로 낚시를 하는 요령을 가르치고 들판의 폐허와 늪에서 올라오는 가스의 성질에 대해 조사했다. 왜가리를 찾아다니고 윌버스윅의 모래더미에서 전쟁놀이도 했다. 그리고 폭탄을 만들어 정원에서 폭발시키기도 했다.
“그는 폭탄에 불을 붙이는 독특한 방법을 알고 있었어요. 염소산염과 설탕으로 만든 도화선에 솜을 붙이고 멀리서 유황산으로 된 실험용 튜브의 꼭지를 따는 식이었죠. (중략) 나의 불쌍한 어머니는 다음엔 정원의 어떤 구석이 날아가는지 지켜보며 창문 밖을 내다보곤 했습니다.”
2. 비슷한 시기, 오웰은 사우스월드 해변에서 아침마다 그림을 그렸음.
그 모습이 휴가를 온 런던의 중년 부부의 눈에 띄게 되고,
평소 예술가에 대한 관심이 있던 부인 메이블 여사는 오웰을 자주 초대했고
런던의 인맥을 활용해 직접 편지를 쓰거나 사교 단체에 오웰을 데리고 가 출판인이나 매체와 연결을 시켜주려 시도함.
그러나 오웰은 메이블 부부와의 친분은 유지했지만, 그녀가 바라는 식의 연줄은 잡고 싶어하지 않았음.
아래는 오웰이 메이블 부부에게 했던 거의 유일한 부탁.
어느 날 오웰이 (메이블 부인의 남편) 프랜시스에게 물었다.
“프랜시스, 낡은 바지 하나 있어요? 너무 낡은 것일수록 좋아요. 혹시 내가 그 바지를 더 더럽혀도 괜찮을까요?”
프랜시스가 바지를 내어주자 오웰은 옷을 뜰로 가지고 나가 발로 짓밟았다. 이것을 본 점잖은 사업가는 분명 혼란된 감정에 휩싸였을 것이다. 오웰은 또 한 번의 부랑자 생활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20세기 초반, 부랑아들을 수용하던 영국 구빈원의 모습
3.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이 출판되기 직전, 연애를 하는 대목.
‘1984’나 ‘엽란을 날려라’ 등에 묘사된 가난한 로맨스의 원형을 볼 수 있음.
좋지 않은 주머니 사정으로 그녀를 아주 즐겁게 해줄 수는 없었고, 그것 때문에 마음이 상한다는 사실을 숨기지도 않았다. 오웰이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박물관, 공원, 대중음식점에서의 식사, 비싸지 않은 낮 공연 등이었다.
“일요일에 시골로 나가 오랫동안 산책을 하고 목로주점에 가서 점심을 먹는 건 어떨까요? 돈이 없을 때 런던에 가면 그저 우울하기만 하잖아요.”
그들에겐 남몰래 사랑을 나눌 장소를 구할 돈은 없었다. 좋은 호텔은 너무 비쌌다. 시골길을 산책하는 것이 그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었다. 정열의 포로가 된 그는 열심히 하루의 여행 계획을 위해 열심히 시간표를 짜고 육지 측량 지도를 들여다 보았다.
“예를 들면 당신이 패딩턴에서 액스브리지까지 오는 표를 끊고 내게 도착 시간을 알려주면, 나는 그에 맞춰 헤이즈에서 기차를 타고 같이 액스브리지까지 가서 산책을 즐긴 후 덴헴에 가서 점심을 먹을 수 있을 거에요.”
(중략) 오웰은 여름이 끝난 직후 쓴 편지에서 그 순간을 이렇게 회상했다.
“사우스월드의 날씨는 정말 훌륭했고, 당신과 같이 나간 산책만큼 제게 즐거웠던 일은 없었습니다. 특히 그날 그 숲속에서...... 바닥에 이끼가 잔뜩 낀 그곳에서, 저는 그걸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짙은 초록색 이끼 속의 당신의 새하얀 육체를.”
마지막 연애부분 완전 1984잖아 ㅋㅋㅋㅋ
저도 일찌감치 사서 읽고, 보물처럼 아끼는 책입니다. 거의 완벽에 가까운 훌륭한 평전이었죠. 마무리까지 훌륭해서, 조지 오웰(에릭 블레어)이 죽기 몇 달 전에 재혼한 두 번째 부인이 조지 오웰의 작고 이후 그의 작품들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유산 및 저작권을 홀라당 차지하고 심지어 "블래어 부인"에서 "오웰 부인"로 개명해서 전세계로 강연하러 다니는 내용, 자식을 낳지 못했던 조지 오웰이 첫 번째 부인과 행복하게 살면서 입양한 양아들이 조지 오웰 작고 후 두 번째 부인에게 버림받고 심지어 양아버지의 저작권마저 통채로 빼앗겼지만, 조지 오웰 첫 번째 부인의 자매(양이모)가 거두어서 그 품에서 성장하고는 "블레어"라는 성을 꿋꿋하게 지키면서 자기 힘으로 먹고 살고 양아버지 이름을 팔지 않는 것 등이 담겨 있었죠
네, 특히 그 후처 소냐는 사람들에게 소심하고 숫기 없었던 오웰 대신 중요한 출판 계약을 다 하고 오웰의 작품을 알린 것으로 오해되고 있더라고요. 1984가 영국과 미국에서 출판되고 크게 인정받은 후에야 청혼을 받아들였고, 그 이전엔 아무것도 기여한 것이 없는 게 진실인데 말이죠. 사후, 오웰 관련 재단을 만들고 운영했던 것도 과유불급이라고 생각되더라고요.
1984 밀회 장면 그 자체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