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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는 3부작으로 구성된 연작소설로

1부 채식주의자
2부 몽고반점
3부 나무불꽃으로 구성되어있다.

세 이야기의 핵심 인물은 '영혜'로
사건 마다마다의 주제의식을 관철시키는 핵심인물이다.



1부에서는 주인공 영혜와 남편의 이야기


2부에서는 형부와 영혜 그리고 형부의아내(영혜의언니)의 이야기


3부에서는 영혜의 언니를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1부 채식주의자는 평범하고 무미건조한 영혜의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영혜와 남편 모두 평범함 그자체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

어느날 영혜는 생육을 먹는 꿈을 꾸고 고기를 멀리하게 된다.

이후 집에 있는 고기란 고기들을 모두 치워버리고

심지어는 고기냄새가 난다며 가죽으로 된 모든

생필품들을 없애버리곤 남편과의 잠자리도 거부하기에 이른다

영혜는 어릴 적 자신을 문 개가

아버지의 오토바이에 묶여 끌려다니다 거품을 물며 죽어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어릴 적 영혜는 그 개로 만든 고기를 아무렇지 않게 먹었다.

이랬던 과거를 지닌 영혜의 꿈은 점점 '고기를 먹는 것' 에서 떠나, 누군가가 누군가를 때려서 살해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렇게 꿈이 악화되면서 증세가 더 심해지고

영혜는 중요한 연회에서도 상황판단을 못할만큼의 큰 실수를 한다.

이를 마땅찮게 여긴 남편은 보다못해 그녀의 비정상적인 행동을 교정하기 위해 그녀의 가족들을 부른다.

영혜를 만난 장인어른과 장모는 고기를 거부하는 영혜에게 책임과 의무를 지우며 설득해보지만

실패하자 그녀에게 억지로 고기를 먹이려 폭력을 휘둘렀고

결국 영혜는 과도를 집어들고 손목을 긋기에 이른다.

그 때 영혜의 가족은 '비정상'적인 집안이 되었고 영혜는 '비정상'이 되어 정신병동에 들어가게 된다.

병원에 들어가서도 증세는 더 심해져 '어머니가 달여준 한약'으로 위장한 흑염소즙을 본능적으로 거부하고

햇빛을 쬐기위해 웃통을 벗고 벤치에 앉아있다가 근처의 새를 잡아다 목을 붙들고 그 피를 핥아먹는 등

남편으로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반복한다.

이런 상황을 참을 수 없는 남편은 이혼서류를 제출하곤 영혜와 결별해버린다.

1부 채식주의자는 이렇게 끝이나고

2부 몽고반점으로 시점이 변경된다.

이때 미디어 아트를 업으로 살고있는 영혜의형부가 조명된다. 형부는 평소 초라하고 볼품없는 모습에 비관하지만 예술을 할 때면 본인도 이해하지 못하는 열정을 발휘하는 사람이다.

형부의 아내는 영혜의 언니로 그녀는 일생동안 열심히 그리고 묵묵히 살아온 사람이다.


-


과도로 손목을 그은 영혜의 시점으로 돌아가,

형부는 순간의 기지를 발휘해 처제(영혜)를 응급실에 앉힌다.

그후 무언가를 계속 고민하는 형부.

그것은 다름아닌 자신의 사타구니에 빳빳이 피가몰린것이다.

불륜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는 인간으로서의 도덕적인 금기

계속해서 고민과 사색에 빠진다.

아내가 돌연 이런말을 한 적이 있었다.

영혜를 씻겨주다가 그녀에게서 몽고반점을 봤다는 것이다.

엉덩이에 조그맣게 피어올랐다는 그 몽고반점.

되새길 때 마다 인간으로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을것 같은 불안감과 금기를 깨고서라도 욕구를 이루고 싶은 흥분이 밀려온다.

결국 거부 할 수 없는 열망에 빠진 그는 비밀스레 영혜를 불러 그녀의 몸에 , 누드의 몸에 꽃을 그리고 촬영하고 싶다는 부탁을 한다.

우려했던 생각에 비해 이를 흔쾌히 허락하는 영혜

일은 흔쾌히 진행되고 곧바로 작업실을 빌려 녹화를 시작한다.

형부는 영혜의 몸에 꽃을 그리면서 몽고반점을 강조한다.

그렇게 그는 성욕을 초월한 예술적 열망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그의 예술의 완성을 위해서는 남자가 필요했다.

그의 예술은 수분(식물의교미)으로, 사람으로 치면 남자와 여자의 교미였다. 순수한 교미.

그러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남자가 필요했다.

젊고 에너지가 넘치는 그런 남자. 하지만 자신은 잘생기지도 않았으며 배가 튀어나오고 젊음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한눈에 봐도 볼품없는 모습이었다.

이에 형부는 자신의 동업자로 J를 불러 모델을 부탁한다.

젊고 유망한 J의 몸에도 바디페인팅을 그리며 영혜와의 촬영이 성사된다.

순조롭게 일이 진행될 무렵 형부는 교미를 하라는 무리한 부탁을 하게된다.

그 과정에서 협박 , 설득 등의 방법들을 동원하지만

수치심에 독이오른 J는 녹화를 중단하고 떠나게된다.

예술로서 자신이 그 자리에 있었으면 하고 생각했던 형부는,

사타구니에 피가 몰린만큼 상상했던 형부는

결국 자신의 몸에 꽃을 수놓으면서 영혜와 한몸이 되는 수분을통해 자신의 예술을 완성한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고 일어난 형부의 눈앞에는
자신의 아내가 있었다.

아내는 당연히 형부의 행동을 이해할 수 도 감내하지도 못했고 혐오감을 갖게된다.

그렇게 형부는 아내와 결별하게된다.



3부 나무불꽃은 형부와 아내가 완전히 결별하고 난 후,

영혜의 증세가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로 시작한다.

영혜의 언니의 시점으로 바뀌게 된다.


-


언니는 영혜가 비 내리는 숲의 한 가운데서 며칠이고 가만히 서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녀의 언니는 영혜를 찾아간다.

영혜는 정신병동에 입원하게 되었는데 언니는 다른 환자들의 몰골을 보며

영혜를 보기 위해 지나간다.

영혜 역시 비쩍 마른 몰골로 물구나무 서기를 한 채 언니의 부름에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이러다간 정말 죽는다고 영혜를 말리며 호소하는 언니를 두고

그녀는 발악에 가까운 반발을 한다.

영혜는 이제 고기를 거부함은 물론이고

채식마저 거부하며 햇빛만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며 확신하고 있었다.

광합성만 있으면 된다고. 음식은 필요없다고.

완전히 자신을 나무라고 여기면서 그 어떤 음식물의 섭취도 거부한다.

이에 언니는 영혜에게 태어나서 쳐본적 없는 고함을 친다.

"니가, 죽을까봐, 그러잖아!"

영혜는 답한다

" 왜, 죽으면 안돼? "

영혜의 되돌아온 물음에 자신의 상황을 비관한다.



-



쉽게 이해할 수 없고 재미가 없다는 평때문인지 힙스터의 마음이 솟아올라 읽게되었다.

막상 읽어보니 심오한 주제의식을 담고있어 가볍게 읽어선 이해하기 어렵겠다 싶다.

나는 주제의식에 가장 많이 언급된 '비정상'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비슷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소위 정신분열증이라 일컫는 정신병을 앓고있는 세살위의 형이 있다.

그렇기에 망상이라는 소재가 내게 주는 오묘한 감정들은

때론 트라우마를 건들여 아프기도 하고

본능적으로 형을 싫어하는 나 자신의 모습이 겹쳐보여 반성하기도 한다.

사실 조현병이라는 질병은 자아가 조화되지 못하다는 뜻이다. 

때론 초기의 영혜처럼 정상인같은 모습을 하기도하고

때론 말기의 영혜처럼 정신나간짓, 비상식적이고 비정상적인 짓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형의 모든 행동에반감을 품고,형을 형이라 부르지 않고,인정하지 않고 존재자체를 부정했었다.

분명 옳은 행동을 했던적도 있었을것인데

나는 고정관념이라는 색안경을 낀채로 되는것이라면 모조리 부정하고 또 부정했다.


사람이라는 취급조차 하지 않았다. 개만도 못한놈.쓰레기. 동물취급도 하지 않았다. 내게 불편한 존재인 형은 부정의 사념체 그자체였다. 그렇게 형의 모든것을 부정했다.

하지만 부정하고 남은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오히려 가족이라는 테두리에서 조금만 더 사랑해 주었다면 더 심해지지는 않았을까. 그런 아쉬운 마음이 또다른 상처로 남았다. 나름대로의 후회란 이런것일게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온 인생에 걸림돌로 생각했던 문제들을 나는 그저 문제자체로 보고 해결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런 아쉬운 마음이 응어리로 남는다.

채식주의자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나, 외설과 예술의 경계를 심오하게 다루고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보통의 사람들은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영혜의 남편으로 남을것이고,

비슷한 아픔을 안고있는 사람들은 또다른 영혜의 언니로서 남을것이다.

나는 그중 비슷한 아픔으로 형에게 너무나도 많은 죄의식을 느끼며 반성하게되었다.

고정관념을 벗어던지라는 우리 사회나 나 자신조차 고정관념을 끼고 세상을 바라본다.

넌 이상하니까 인정하지않아라는사고방식은 나에게도 큰 아픔으로 돌아왔지만

우리 사회도 검게 물들어 있다는건 당연한 소리일것이다.

별세한지 3년이 지난 마광수교수의 <즐거운사라> 불온서적 지적으로 문단의 왕따를 당했던 사건이 그렇다.

평생을 외롭고 누리지 못한채 살다간 그의 죽음에 많은 사람이 애도했지만 그것은 순간에 불과했고

지금도 많은 마광수들이 사회에서 따돌림을 당하고있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사랑해주지 못한다면 아프고 병든 사회는 더 나아지지 않을것이다.

형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와 함께 한강의 글 몇자로 감상을 마친다.


-


어리석고 캄캄했던 어느날에, 버스를 기다리다 무심코 가로수 밑동에 손을 짚은 적이 있다. 축축한 나무껍질의 감촉이 차가운 불처럼 손바닥을 태웠다. 가슴이 얼음처럼, 수없는 금을 그으며 갈라졌다. 살아 있는 것과 살아 있는 것이 만났다는 것을, 이제 손을 떼고 더 걸어가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도 그 순간 부인할 길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