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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딕을 처음 펴보고서는 앞의 고래에 대한 발췌록에 당황스러울 것이다. 성경의 여러부분에 나온 고래에 대한 이야기, 레비아탄에 관한 이야기, 고래를 잡는 설화나 우화, 고래를 목격한 항해기, 고래 내용, 고래이야기 등. 여러 감상들이나 리뷰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듯이 이 소설에서는 이야기를 진행하다 말고 고래학 내용이 가능하다 싶으면 바로 '고래학'이 치고 들어오며 이 고래학은 고래의 크기, 분류, 역사적 기록들에 있었던 고래에 대한 비유나 설화들, 고래를 어떻게 잡고 어떻게 처리하는지 등 과하다 싶을 정도로 고래얘기를 하기 때문에 멜빌이 독갤 공식 고래박이가 된 것은 이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래도 뱃일을 해본 것도 아니고 고래를 본 적도 없는 사람으로서는 고래를 잡고 기름을 짜내는 과정을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에 - 기껏해야 돌고래정도는 봤겠지만 소설 내 화자의 분류법에선 돌고래는 향유고래나 수염고래 같은 2절판 고래 종류가 아닌 12절판 고래에 들어간다. - 이러한 포경에 관련된 지식은 책 내용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부분이라 본다.
의외로 버티기가 힘든 부분은 희곡 형식으로 진행되는 부분이였다. 노래를 여럿이서 부르는 장면이나 희곡처럼 대사를 주고받는 장면은 인상적이지만 뭘모르는 고등학생 때 파우스트에 오기로 도전했다가 희곡 공포증이 생겨버린 독린이 입장에서는 책을 덮고 싶게 만드는 대목이었다. 읽기 힘든 부분들과 독린이에게 부담스러운 두께, 기독교적, 영미 문학에 대한 지식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왜 명작이 명작인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라 생각한다.
가장 유명한 첫 문장인 -날 이스마엘이라 부르라- 라는 말은 유명하고 여러 의미를 담고 있겠지만 사실 소설 내에서 모비딕도 그 대척점에 있는 에이허브선장도 아닌 화자가 이름을 불리지 않고 마지막 추격 장면은 '나'의 시점으로도 말하지 않기 때문에 모비딕이란 소설을 상징하는 문장으로 기억되는 것이 아쉽다. 다른 소설도 그렇겠지만 다 읽고 여러 정보들을 찾으면서 재미있는 점들이 많았는데 특히 위키백과를 보며 인터넷에서 정보 좀 찾아본다고 아는 척 하면 털린다는 좋은 교훈을 얻은 것같다.
한국어 위키에서는 등장인물이 안죽는데도 죽는다고 써놨다. 굉장히 중요한 소재로 사용되는 것이라 죽었다고 이해했으면 전혀 내용을 안 읽은 것이고.
나무위키에서는 누군가 이 소설을 퀴어소설이라고도 했던거 같은데 그들의 머리속엔 그런것 밖에 없나보다. 주인공과 퀴퀘그의 우정은 처음 만날 때부터 피퀴드 호에 오르기 전, 고래해체 작업 빼고는 같이 나오는 장면이 별로 없으며 에이허브와 스타벅은 각자의 지위를 인정하지만 스타벅은 이새끼 그냥 쏴버릴까하는 생각을 했고 에이허브를 부축하는 부분에서도 전혀 그런 감정은 없다. 당연히 에이허브는 인간에서 모비딕에 대한 복수만 남아버린 사람이며 스타벅은 모비딕을 만나고도 돌아가자고 설득하려 했던 사람이라 짜증나면 짜증이 났지 별 감정은 없었을 것이다.
모자란 부분이나 생각들이 남는거 같긴 해서 좋지만 쓰다보니 소설 분량도 많고 의미도 많아서 하고 싶은 말은 넘치는데 정리는 안되고 아는 건 없다보니 너무 재미도 없고 막써진거 같다. 재밌고 유익하게 글쓰는 사람들 존경함. 그래도 쓰다보면 늘겠지?
퀴어소설보다는 고래와 인간의 복잡한관계를 설명하는소설같던데
모비딕은 명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