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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날이 맑은 날, 바다위로 밝은 햇살이 쏟아질 때의 해면은 마치 별이 잔뜩 보이는 강원도 산골 밤하늘처럼 반짝반짝 빛이 난다.
그 반짝임을 곁눈길로라도 한 번 슬쩍 보게 되면
바로 그 순간부터 짙푸른색 바다에 박힌 바닷별들의 반짝임에 취해 숨을 죽이고 멍하니 바다를 바라볼 수 밖에 없게 된다.
사람을 홀리는, 환상의 빛이다.
2.
이 아름답게 날뛰는 바다의 빛은 사실 아무것도 아닌 그저 작은 파도가 모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햇살은 그저 해면 위로 일렁이는 잔물결의 일부만을 살짝 비출 뿐, 잔물결을 만들기 위해 바다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교묘히 숨긴다.
그렇게 멀리서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속인다.
빛이 일렁이는 그곳만은 더이상 바다가 아닌 부드러운 어머니의 품과 같이 느껴져 그만 풍덩 빠져들어 헤엄치고 싶다고 생각하게끔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바다를 모르는 이들이 '환상의 빛'에 마음을 홀린 것이다. 바다를 아는 사람들은 결코 바다를 따뜻하게만 보지는 않는다.
그들에게 바다는 변덕스럽고 흉포한 공간이다.
3.
굳이 바다에서만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일상에서도 늘 환상의 빛에 마음을 홀린 채 살고 있다.
겉으로 보이는 상황이나 사건을 판단할 때, 우리는 표면위로 일렁이는 잔물결의 일부만을 보고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려 한다.
그러고서는 '바다는 반짝반짝 아름다운 곳이야' 라며 엄숙, 진지, 근엄하게 판결을 땅땅땅 내리는 것이다.
올 5월 일어난 강남역 살인 사건의 경우에도 그렇다. 조현병 걸린 정신병자라서 벌인 일이다, 여성혐오 범죄다 따져보지만 실상 그 살인마가 무슨 생각으로 피해자를 살해한 것인지는 본인만이 아는 일이다.
내 마음을 넘어 타인의 마음이 걸려있는 이 세상 모든 일들을 따질 때,
우리는 코끼리 다리를 만지며 '음. 코끼리는 큰 기둥처럼 생긴 동물이군!' 하고 만족스런 미소를 띈 채 고개를 끄덕이는 장님이 될 수 밖에 없다.
4.
<환상의 빛>에서 남편이 자살한 이유 역시 우리는 알 수 없다.
소설의 화자는 삶에 지쳐서, 불행해서, 혼이 빠져나가서 등의 이유를 따져보고 그 중 가장 와닿는 하나를 선택해 마음의 안정을 얻는다.
소설 외부의 평론가는 '사람은 죽고 싶어서 죽을 수도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남편의 자살 이유를 따져보는 그 모든 행위가 '장님 코끼리 만지기'다.
우리가 햇살을 받은 해면의 빛을 보고 멍하니 바다의 아름다움에 취하지만 사실 그 빛은 그저 작은 파도가 모여든 잔물결에 지나지 않으며,
그 아름다운 반짝임 아래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는 알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http://blog.naver.com/rnjs1016k/220776845356
블로그글 옮겨옴.
좋다
이동진이 좋아하는 그 책이구나
ㅇㅇ 이동진이 좋아하는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데뷔작 '환상의 빛'의 원작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