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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내가 겁쟁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근데 요사이 생각해 본 건데, 어느 순간 사회적 금기를 지나치게 두려워 하는 겁쟁이로 변모되지 않았나 싶음


누구도 적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는 마음 때문에, 내 자신의 의견도 하나 둘씩 사라져 감


어떤 사람 앞에서 특정 집단의 의견을 대변하는 듯한 말을 했다면 그 날 하루 내내 후회하곤 함


난 남 앞에서 아무런 의견도 없는 듯한, 색깔 없는 인간이라는 인상으로 남고 싶은 걸까?


내가 특이한 케이스라고 생각하지는 않음. 현대의 사회 분위기 안에서, 누가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를 가장 좋아하고 존경함. 근데 나는 그 이유를 잘 몰랐음


나보코프가 영문학 사상 손꼽히는 미문을 구사해서? 글의 심상이 뛰어나서? 독창성이 뛰어나서? 포스트모더니즘의 기수라서?


아닌 것 같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건 바로 나보코프가 '롤리타'를 출판했기 때문인 것 같음


1955년, 각종 사회적 금기들이 팽배했을 때, 여러 고초를 겪어가며 롤리타를 출판했고, 그 후 롤리타를 쓴 것에 대해 후회하는 듯한 뉘앙스의 발언을 한 적도 없음.


롤리타가 과연 2020년에도 아무런 논란없이 멀쩡히 출판될 수 있을까? 온갖 진영에서 들이닥치는 비난의 칼날을 감당할 수 있을까?


1955년에 롤리타를 써낸 나보코프라면, 2020년에도 일말의 거리낌없이 롤리타를 써낼 거임


왜냐? 본인이 본인에 대한, 본인이 어떤 것을 할 수 있느냐에 대한 자신이 있었고, 자유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임


단언컨대, 나보코프는 인류 전부를 적으로 돌려서라도 롤리타라는 작품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함


나보코프가 자신의 문학 강의에서 제시한 'philistine' 이라는 개념에는 그럴 의지가 없는 사람도 포함되지 않을까?


문득 생각해 보면, 그에 따르면 나또한 구제 불능의 philistine이 아닐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가장 싫어하는 부류가 된다니, 간담이 서늘해짐



난 나보코프가 무언가를 초월한 존재였다고 생각함. 본인이 뜻하는 대로 살아간 그런 작가였다고 생각함


이건 비단 나보코프뿐만이 아니라, 사드 후작과 알랭 로브그리예같이 기존의 가치관에 도전장을 내민 다른 도발적인 작가들도 마찬가지임


나는 그런 작가들에게는 무언가 고귀한 점이 있다고 생각함.


그런 의미에서 나보코프 같은 작가들은 인류의 역사에 영원토록 이름이 남겨져야 마땅함.




책 이야기: 랭보는 읽어도 읽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