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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어ㅡ 『페도 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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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너는, 『근친마귀』인가?"




사실, 에드거 앨런 포의 '이미지'가 어딘가 괴기스럽고 괴팍하며 비현실적인 것엔 단순히 그의 작품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이 보기에도 무언가 괴상한 업적 달성 때문일 것이다.


하나만 달성해도 아 이건 좀 아니지 않나요, 할 법한 업적을 2연속 달성한 업적왕 에드거 앨런 포는


덕분에 오늘날까지도 그의 삶을 알기엔 수많은 왜곡들 속에서 실체를 알기 어렵다.


그렇지만, 수많은 미국 문학의 대가들 중에서도 사실 '영향력'만 따지면, 가장 큰 영향력, 말 그대로 세계문학의 흐름을 바꿔놓은 업적달성까지 한 것이 바로 에드거 앨런 포였다.


그리고 그 정신은 당연히 모더니즘으로 계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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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9년, 미국 보스턴에서 태어난 에드거 앨런 포는 태어난 직후부터 비범한 삶을 살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태어난 직후에 가출하였고, 어머니도 그 다음 해 죽었다.


거의 태어나자마자 고아가 된 에드거 포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남부의 그럭저럭 부유한 상인 가문이었던 앨런 가문에 양자로 입양되었다.


포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앨런 가문으로 입양되었기에, 오늘날 그는 에드거 앨런 포가 되었다.



그러나 사실 포는 '앨런'을 무척이나 싫어하였다.


미국 남부 버지니아주에서 생활하다가 잠시 영국으로 이사를 갔다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고, 


포는 타고난 내성적이고 문학적인 성격 덕분에 자신의 양부와 갈등을 줄곧 겪었고,


특히 대학에 입학하면서, 남부 자제들 틈바구니 속에서 위축되기 시작한다.


공부 자체는 잘 했으나, 내성적인 포는 그만 술독에 빠지고 만다. 사실상 알콜 중독자가 되어버리면서 퇴학을 당해버린다.


이에 그는 군인이 되기로 결심하고, 군대에 갔다가, 장교가 되기 위하여 다시 사관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당연히 엄격한 사관학교를 견디지 못하고, 다시 술을 마시고 규율을 어기다가 퇴학당한다.



사실 사관학교 시절 시집을 자비출간도 하였으나 모두 망했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끝끝내 자신의 양부에게 의절당한다.


이미 두 사람의 관계는 포의 대학 시절부터 최악으로 향하고 있었다. 일부러 생활비를 보내주지 않자, 돈에 쪼들려 거액의 빚을 지거나 약혼녀와 깨지는 등, 불안한 삶을 보낸다.



호적이 파여버린 포는 양부의 유산이나 지원 등은 전혀 기대할 수 없었고, 방황하던 도중, 작가의 길을 꿈꾸며, 


포 가의 친척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한다.


그가 끝내 정착한 곳은 자신의 고모의 집이였다.



그리고 여기에서 그는 끝끝내 단편 데뷔에 성공을 하고, 또 운명적인 사랑을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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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내일세. 내 사촌이지."


"네?"


"그리고 13살이야."


"히이익!"



1835년 , 27살의 에드거 앨런 포는 13살의 버지니아 클램과 사랑에 빠졌고, 두 사람은 그렇게 부부가 된다.


사실 조금 어린 사촌과 결혼하는 등의 일은 오늘날 기준 말고, 당시 미국 남부적으론 전통적이었다, 그렇게 파격적이거나 이상한 일은 아니다, 란 말도 있긴 한데,


13살의 결혼 자체는 그 시대 기준으로도 조금 많이 이상하다는 걸 포 본인도 알고 있었는지,


혼인신고할 때는 아내의 나이를 21살로 신고했다.


유 퍼킹 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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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두 사람이 사랑한 건 맞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부부라기 보단 친한 남매 같았다는 증언도 있긴 하지만


이러한 사실은 훗날 <롤리타>의 험버트 험버트의 수많은 모델 중 하나로 쓰이게 되었다.







아무튼, 결혼도 한 포는 이제 제대로 돈을 벌고 싶어하지만, 사실 세상은 그가 쓰는 소설들에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소수의 지지자는 있었으나, 기괴한 그의 글들을 받아들이기엔 아직 멀었던 걸까?





그러나 포가 완전히 무명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름 자체는 문단에서 조금씩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오늘날엔 작가로 유명하지만, 이 당시 에드거 앨런 포는 유능한 편집자이자 평론가로 조금씩 이름을 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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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평론가로서의 유명한 일화 중 하나는 또 다른 이 시대의 대가와 연관된다.



이 시대 슈퍼스타 찰스 디킨스가 처음으로 시도하는 역사소설 <바너비 럿지>.


무수히 많은 악수를 받는 디킨스의 소설은 거의 실시간으로 미국에서도 연재되고 있었다.


포는 첫 4장까지의 연재본에 대한 평론을 잡지에 발표하면서, 결말을 예측했고, 정말로 그렇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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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눈치채네?"


이러한 일로 나중에 찰스 디킨스가 가족과 함께 미국 투어를 왔을 때 그와 편지도 몇 차례 주고 받고, 직접 만나기도 한다.



참고로, 디킨스는 이 당시 애완까마귀를 데리고 왔었고, 위의 <바너비 럿지> 표지에서도 '까마귀'가 나오듯, 바너비 럿지가 까마귀를 데리고 다녔는데,


여기에서 모티브를 얻어, 나중에 포의 가장 유명한 시가 탄생하기도 한다.





아무튼, 포는 열심히 일하긴 했다.


무엇보다 그는 냉혹한 평론가였다.



당시 미국 문단의 주류는 북부 중심의 부유한 자제 양반들이었고, 에머슨 등의 초월주의 붐도 불고 있었다.


이와 반대로 포는 앨런 가문에 입적되어 남부 계열이었다.


물론 지역 때문만은 아니었고, 포 본인의 문학관과 당시 주류와는 너무나도 달랐기에, 포는 이러한 북부 중심 문단을 냉혹하게 까내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무 빽도 없는 한 평론가가 주류 문단을 비판해봤자, 본인만 손해인 것은 분명했다.


다만, 포의 공격이 여러모로 효과적이고 뼈아프긴 했다.


정말 듣보의 공격이었다면, 알지도 못하거나, 무시했을 텐데, 포에게 공격받은 주류 문인들은 굳이 일부러 포를 언급하며 욕을 했으니까.



아무튼 포는 편집자이자 평론가로서도 열심히 일했다.


새로운 미국 문인들을 육성하기 위한 잡지도 창간하고, 또 여러 잡지사에서 일을 하며 아무 문제가 없다면, 잘 나갈 것만 같았다.



그러나 우선적으로, 그의 술병이 조금씩 도지기 시작했다.


그의 장모와 아내 모두 폐결핵에 걸려서 고생하고 있는 까닭도 있었고, 주류 문단을 공격한 대가는 생활고로 돌아왔다.


결국 끝내 포는 가족들 모두를 병으로 떠나보내면서, 특히 1847년 24살의 아내의 죽음으로 큰 충격을 받았고, 이러한 충격은 오늘날 그의 가장 유명한 몇몇 작품들의 뿌리가 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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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레이븐 아시는구나!!"


아내가 죽기 전에 쓰였지만, 일어날 일을 어느 정도 예견하며 쓴 <애나벨 리>, 그 후 <레이븐>이나 <라이지아> 등 죽은 아내에 관한 그의 명작들은 그의 대표작들 중 하나가 되었으며, '폐결핵'에 대한 공포는 <붉은 죽음의 가면>으로 승화되었다.



그러나 포는 점점 망가졌고, 기괴한 작품을 쓰고, 묻히고, 술을 마시는 과정을 반복했다. 운영하던 잡지는 망하고, 출판사에서도 짤리는 등 고난은 반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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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의 포는 정신적으로도 불안한 증상을 보였는데, 특히 오늘날 그의 괴작 산문시 <유레카>의 출간이 그러했다.


뜬금없이 그는 우주의 비밀을 모두 풀었다며, 철학과 우주론에 관한 기괴한 산문 작품을 1848년에 출간하였다.


물론 직관으로서, 대충 빅뱅 우주론을 예견하거나, 우주가 무한하다던지, 올베로스의 역설의 해답을 제시했다 등 과학적인 관점에서 '직관'적으로 흥미로운 결론을 일부 내렸다는 것이 몇몇 과학자들의 평이지만,


일단 논리적인 글이 아니라, 극도로 산만하고, 불안한 글이라 오늘날까지도 포 연구자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희대의 괴작이다.



그리고 1년 후, 에드거 앨런 포는 길거리에서 발작을 일으키며 쓰러진 채로 발견되었고,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그대로 1849년 죽고 만다.


죽음 직후, 그의 병원 기록이 모두 사라져버려서 오늘날까지도 포의 사인에 대해선 여러 이견만이 있을 뿐, 정설은 없다.



포의 죽음 이후,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작품을 편집하고 그에 대한 글을 쓴 것은 포의 평생의 적이었던 그리스월드였는데,


그는 특히 포를 구제불능의 알콜중독자이자 괴팍한 이로 조금 더 과장되게 포를 묘사하였고, 덕분에 오늘날까지도 포를 다루는 수많은 전기들과 일화는 때론 왜곡을 어느 정도 감안해야하는 실정이다.





장르적인 관점에서 그는 <모르그 가의 살인 사건>이나 <도둑맞은 편지>로 추리문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이미 틀을 완성하여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이들이나 보르헤스 같은 대가들로부터 이러한 작품들만으로도 찬사를 받았다.



포가 증오하는 것 두 가지는 진부한 알레고리와 교훈이었다. 이는 그의 작품들에서 매우 중요하게 나타났다.


'교훈'을 주는 이야기나 시가 아니기에, 그가 겉으로 표현하는 것 아래를 '느껴야만 했고,'


xx는 oo의 상징, 처럼 곧바로 알 수 있는 알레고리가 아닌, 말 그대로 그의 후배들이 될 상징주의자들이 사용할 수많은 '상징'들이 녹아들고 있었다.



거기에 기괴한 작품들을 쓰는 것과 달리, 그는 매우 정교하고 계산적으로 모든 걸 설계하며 썼다.


이는 그가 당대에도 그의 작품들 중 그나마 가장 성공했었던  시 <레이븐>의 창작과정에 대해 쓴 <작법의 철학>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물론 포가 정말로 이대로 썼는가는 논쟁의 대상이지만, 아무튼 평론가로서 포는 새로운 길을 제시했고, 스스로가 그 모범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산 채로 매장되었다가 돌아온 자, 어딘가 비현실적이고 낭만적이지만 읍습한 존재들, 시체 등등 


보수적인 청교도 사회에서 용납되기 어려운 소재들의 사용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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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신이야...!!!"


아이러니하게도, 포가 죽은 지 몇 년도 지나지 않아, 50년대에 포를 접한 젊은 샤를 보들레르는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들을 프랑스에 알리고 번역하는 것으로 먼저 문학적 명성을 떨쳤다.


보들레르의 번역 아래, 에드거 앨런 포는 미국에선 무명이지만, 오히려 외국, 프랑스에서 더 추앙받는 기묘한 작가가 되었고,


포를 추앙하며 그의 영향을 받은 보들레르는 훗날 <악의 꽃>을 비롯한 상징주의의 아버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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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는 신이야...!!"


이러한 보들레르의 전통을 따라, 말라르메 같은 후배 상징주의자들 또한 거의 예외 없이 포를 추앙하고 숭배하였다.


특히, 말라르메 또한 포의 <레이븐>을 손수 번역하기도 하였다.



애당초 에드거 앨런 포의 시는 '교훈'을 제거하고, 특히 '음악적 운율'에 극도로 집착한다는 점에서,


'무엇보다도 음악'을 강조했던 상징주의자들에겐 더더욱 선구자로 다가왔다.



보들레르가 상징주의와 현대시의 아버지라면, 포는 대충 상징주의와 현대시의 할아버지가 된 것이다.


물론 단편 작법과 이론도 단편소설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수많은 장르 소설도 개척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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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겨운 포 쉐리 술이나 처마시는 알콜중독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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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느그 시집들 니 뒈지고 나면, 싹다 잊혀진다~"



냉혹한 평론가 포카콜라의 주된 타켓은 당시 미국 문단의 중심 시인이었던 헨리 롱펠로였다.


특히 포가 혐오하는 교훈적인 시로 유명했고, 포의 공격에 뼈를 맞았는지, 롱펠로 또한 포를 조롱하기 시작했다.


이에 포는 롱펠로는 죽으면 잊혀질 자라며 평론을 썼고, 그대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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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바"



오늘날엔 "짝퉁 영국 낭만주의 아류"로까지 불리는 우리의 롱펠로.......


사실 롱펠로 요즘 아무도 안 읽잖아? 자 쓰레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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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끝까지 읽혀지는 나의 승리네"



삶은 시궁창이었지만, 맞섰던 수많은 듣보잡 적들과 달리, 우리의 근친 페도 대장은 오늘날에도 세계문학 역사에 그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모더니스트의 기묘한 모험


- 20세기 최고 시인 예이츠의 환상록과 자서전 읽으쉴?

- 프루스트와 조이스의 자존심 강한 제자 대결

- <율리시스>는 어떻게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책이 되었는가?

- 냉혹한 이탈리아의 마피아 작가

- 폴란드식 기묘한 모더니즘 작명법

- 조이스의 기묘한 유언

-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

- 유교 탈레반은 파시즘을 꿈꾸는가? (1), (2)

- 뿌슝빠슝 안아키를 하던 극작가가 있다?!

- 위대한 피츠제럴드 (1), (2)

- 아일랜드인들의 아름다운 전통이란?

- 본인 오늘 마초 되는 상상함

-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약이 필요한가?

- 냉혹한 남아공의 파시스트

- 모더니스트란 누구인가?

- 그렇다면 모더니즘은 언제 시작되었는가?

-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공무원

- 오 빅보스 마이 빅보스

- 작가는 권력가를 꿈꾸는가?

- 토끼공듀의 삶

- 오 캡틴 마이 캡틴

- 양키인 내가 대영제국 시민?

- 세상에서 제일 끔찍한 것은?

- 오늘은... 바람이 소란스럽

- 테에에엥 마망 (ᗒᗣᗕ)՞

- 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

- 슈르레아아아아알 - 다다다다(2)

- 초현실대전 - 다다다다다슈르레아아아알(3)

- 1억의 비명을 대신 쏟아내는 지친 입

- 자동차박이들의 찬가

- 특성 없는 제국, 특성 있는 남자

- 나보코프가 뽑은 4대걸작을 알아보자

- 켈트의 동정 대마법사 (1)

- 너 나 지큼 동정해?

- 연극이여 신화가 되어라

- 부조리를 기다리며

- 주나, 살아있니?

- 나치참기 LV 99

- 독일 소설은 어떻게 노잼의 대명사가 되었는가?

- 밤 끝으로의 파시즘 여행

- 잔혹한 위뷔가 지배한다

- 베케트는 배우들을 좋아해

- 내가 엠마 보바리다

- 하늘에선 시인의 왕, 그러나-

- 뿌슝빠숑! 비트겐슈타인이 찬양하던 시인이 있다?!

- "대충 알았다 너희들의 레벨"

- 영국적인, 가장 영국적인

- 모더니스트들이 즐기던 게임

- 레닌이 매료되고 스탈린이 반한 참된 시인

- 러시아에서의 흑사병 연대기

-"사실 할로윈이란 것도 아일랜드에서 온 거거든요."

- 조이스가 매료되고, 쇼가 반한 민중의 적

- 트렁크 속에 우주를 숨긴 남자

- 안데스에서 온 전령

- 달리야, 나도 순정이 있다.

- 원고는 불타지 않는다

- 만델스탐의 노래

- 흩어지면 죽고, 뭉치면

- 악어들의 거리

-저를 슈베이크라고 소개시켜주시겠어요?

- 독일인이 오리라

- 혁명가는 모더니즘을 꿈꾸는가?

-광기....모더니스트의 오랜 친구여

-키메라의 절망

-소리와 분노로 가득한 백치의 이야기

-오 멋진 신세계여

-루마니아로 보내줘

-디오니소스와 소피아

-전쟁과 평화

-과거와 미래 사이의 기묘한 막간극, 혹은 긴 여로

-크리스마스엔 캣츠를!

-스트린드베리와 지옥불 극장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이미지즘 전쟁

-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

-머피를 기다리며 (1) 잃어버린 아버지를 찾아서 (2) 계승하는 중입니다 (3) 계속한다, 계속할 수 없다, 계속해야만 한다

-사랑받지 못한 자의 노래

-우크라이나에서 온 톨스토이

-저주받은 상징주의자들 (0) 저주받은 시인들

-모더니스트들의 학교

-키위는 나눌 수록 커지잖아요

-폴란드 묵시록 코제니오프스키

-메타 속의 메타 속의 메타 속의 자전거

-오늘부터 우리 베프인 부분인 각인거다

-블라디미르 시린의 참 인생

-이것이 당신의 시입니다


모더니스트의 선조들

-지나간 모더니스트는 어디에 있는가

-셰익스피어와 사라진 연극들 - 영국 르네상스 (1)

-고래박이 멜붕이의 삶 (1) (2) (3)

-단테....쇼펜하우어, 니체.....베케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