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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읽으며 사슬을 상상했다.
철학적 연구란 무언가를 위로 총체적으로 아래로 집중적으로(전문적으로) 규명을 하려 시도한다. 하지만 우리는 본질을 알 수 없다. 즉 총체적으로도 집중적으로도 규명이 불가능한 것을 규명하려는 노력이 된다. 여기서 실증주의, 즉 관계 현상 관찰로 넘어가는 것이 연상됐다. 즉 위로 총체적인 것과 그 아래 소분류들의 무한한 연쇄고리를 연구하는 것이다.
 사슬의 고리는 속이 비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다른 고리와 연결된다. 즉 철학 사유가 금속성의 고리 형태로 내부의 형태 없는(비정형의) 본질을 어렴풋 형상화 하고, 그 비어있는 내부를 연결해 다시 비정형의 총체성을 사슬 형태로 구현한다.
기호 또한 위와 비슷하다. 단어는 단어가 지칭하는 대상이 아니다. 그것이 될 수도 없다. 예를 들어 ‘말’은 동물 ‘말’을 지칭하지만 ‘말’과 단어 ‘말’에는 어떠한 연관도 없다. ‘말’은 ‘horse’든 ‘‘든 뭘로 불러도 상관이 없다. 사전적으로도 마찬가지로 동어 반복일 뿐 ‘말’ 그 자체는 아니다. 즉 언어와 사물(실체, 어쩌면 우주 전체)의 관계는 위의 사슬구조와 마찬가지로 접점이 없는 두 무엇의 관계다. 다만 여기선 언어가 비정형이라는 상반되는 형태가 될 것이다.



어찌됐건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철학에서의 이야기고, 내 생각엔 본질을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과학은 그 무엇을 규명 가능할 거라 본다.

객관은 주관이 배제된 세상, 즉 주관적으로 관측하고 인지할 수밖에 없는 내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는 이미 객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