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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무엇인가를 리뷰하게됐는데 책은 흥미롭고 재밌었다 영혼에관한 글도 흥미로웠고 셸리 케이건이라는 사람은 참 글을 잘쓰는것같다.

내가 더자세하게 말하기는 힘든게 책을읽은지 꽤나 시간이 흘러서 중요한 대목빼고는 생각이 별로 나지않는다 근데 내가 그의 글을 읽을때 별로 마음에 들지않은 대목들이 있었다.

1.죽음은 두려움의 대상도 아니며 무조건 나쁘지도 않다 오히려 영생이야말로 형벌이다.

이책의 핵심주제중하나인데 셸리 케이건은 죽음을 두려워하는것이 비이성적이고 훌륭한 태도가 아니며 우리가 죽음과 직면해야한다고 주장한다.죽음이 왜?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면 죽음 그자체는 너에게 그어떤 해도 끼치지 않기에 그러니까 죽음이 다가온 그사람에게 있어서 죽음그자체는 더이상 나쁠수없음 왜나하면 나쁨이라는 개념은 남은 살아있는 사람한테만 유효한 개념이고 죽음을 직면하는 본인한테는 더이상 악이될수없다.

 그러니까 나의 비존재는 나에게 악이될수없음 왜냐하면 인식할수 없으니까 하지만 죽음이 나쁠때가있다면 그것은 우리삶의 긍정적인 것들을 빼앗기때문임 하지만 그것만빼면 죽음그자체는 하나도 나쁘지않다는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죽음을 인정하고 그대로 받아들여야하며 죽음에대한 공포를 느낄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히려 영생이야말로 형벌이다 이거다 왜냐하면 만약 내가 영생한다면 내인생이 끔찍하다면 그것은 형벌이며 내인생이 훌륭하고 좋다해도 그것은 너무 지속된다면 지루해지기에 영생이 오히려 나쁘다느것이다.

나는 이대목이 별로 마음에들지않았다 왜냐하면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자아의 소멸에대한 공포때문이기에 이공포는 이성적이고 훌륭하게 설명될수는 없지만 나라는 존재의 영구한 소멸 바로 그것이 죽음이 두려운 이유이다.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그의 말대로 철학적으로 설명할수없음 죽음이 나쁜이유는 왜나하면 철학적인 이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성적인 이유가 있는것도아니다 그것은 본능적인 감정이며 나는 죽고싶지않다는 말로 표현되는 본능적인 감정임 그러니까 그의 말대로 죽음이 이성적으로 공포쓰렀지않다고 말하는것은 이 이야기의 촛점이 벗어난것이다.

죽고싶지않다는 갈망은 내존재를 계속 이어가게하고싶다는 그감정은 이성이나 합리로 설명될수없음 그것은 갈망이며 소망이며 이감정은 내가 섹스를원하는것처럼 감정적이며 동물적인 감정이지 그것은 본능이자 합리와 이성을 벗어난 내삶의 목적이다.

그러니까 왜? 음식을 먹고 싶냐고 한다면 우리는 살기위해서 먹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사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흔히들 행복하기 위해서 산다고 대답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불행하면 죽기를 원할까 그러니까 우리가 총체적인 불행에빠지면 죽기를 원할까?

그렇다고 답할수도있을것이다 그러나 아유슈비츠에 수감된 유대인들은 자살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자신의 인생을 불쌍한 그들의 인생을 약간이라도 더 지속시키기 위해서 약간이라도 더 살기 위해서 투쟁했다. 왜?그들은 자살하지않았을까?바로 죽기를 원하지않았기때문이다 그러니까 자기 목숨을 사랑하기 때문에 죽지못했다는것이다.만약 인간이 오직 행복만을 위해서 산다면 아유슈비츠에 같힌 유대인들이 선택해야될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자살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선택을 대체로 선택하지 않았다 왜나하면 인간은 살기를 원하기때문이다 나는 예전에 지옥에대해서 들었을때 생각보다 그렇게 겁먹지않았다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에서 모든 죄인은 언제가 지옥에서 완벽히 소멸한다고 했을때 그어떤 끔직한 지옥그림들 보다 끔찍한 공포에 빠진적이있었다.

정녕 내가 지옥에떨어진다해도 나는 진정 살기를 원한다.그것은 그어떤 이성적인 이유도 합리적인 이유도 없다 하지만 인간은 진정으로 생존하기를 자기 자신의 자아가 끝까지 생존하기를 진실되게 원한다.그러니 나에게 죽음이 왜 두렵고 나쁜지 이성적으로 설명해달라고 하는것은 나에게 있어서 불가능하다 죽음을 무서워하고 죽음이 두렵다는것은 이성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나는 두려워한다 그렇다!나는 그렇다해도 죽음이 두렵다 이것은 변치않는 진실이다 비록 영생이 지루하고 끔찍할지라도 나는 살고싶다 아니 나는 지옥에 떨어져서라도 내인생을 영속하고 싶다!비록 영생이 형벌일지라도 나는 살고싶다 그러기에 나는 영생을 소망한다.

그러니까 죽음에대한 공포가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이라고해서 뭐가 문제인가?

그런 지식이 나를 죽음에대한 공포에서 해방시킬수 있는가?

여기 글을 읽는 당신이 한번 생각해보라 진지하게 자신이 영원히 사라지는것을 생각해보아라 과연 당신은 셸리 케이건의 말처럼 죽음을 대면하면서 그어떤 공포도 느껴지지 않는가?

섹스에대한 열망처럼 음식에대한 열망처럼 불멸의 열망은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이라고하자 그렇다고해서 그것을 내가 그만둘수있는가?

자신의 공포나 욕망이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이라고 해서 당신은 섹스에대한 열망 음식에대한 열망을 포기할수있는가?

수컷이 암컷을 수태시킬려고 하는것처럼 이런 욕망은 이성적으로 방향을 잡을수없고 목적도 잡을수 없는 본능적인 열망이다 그런 열망이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이라고 해서 내가 그것을 그만둘수있는가?

그가 말하는것은 어떤 면에서 괘변처럼 들린다.

그리고 일단 영생이 과연 지루한지에대해서 칸트적 관점에서 생각해보자

만약 인간이 도덕적 완성을 향해가는데 지금의 세계는 도덕과 행복이 합일되지않았지만 천국에서만큼은 그런 도덕과 행복이 합일된 정복의 상황이어야만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선해질수록 우리의 선행이 더 강해질수록 우리의 행복의 총량은 늘어난다면

칸트의 말대로라면 우리는 무한한 하나님이라는 절대적으로 선한 존재에게 계속 가까워지면서 우리의 행복또한 무한히 커져만 갈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무한하게 선한 신적인 존제에게 무한하게 가까워지면서 무한한 행복을 누린다면 그러니까 우리의 도덕적 완성에 가까워지면서

행복의 총량도 끝없이 증가한다면 무한한 시간선에서조차도 우리는 천국에서 지루하지 않고 무한한 행복을 누릴수 있을지도 모른다.

행복의 량이 계속 증가한다면 우리의 영생도 그 끝없는 행복속에서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더 즐거울수있을것이다.

그리고 사후세계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우리가 겪고있는 이 육체적인 감각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살게 될까?

만약 영혼이라는것이 존재한다면 우리가 느끼는 시간의 지배를 계속 받을까?

우리가 느끼는 시간은 뉴턴물리적인 시간이지만 사후세계는 우리의 세계와 차원이 다른곳이다 그런곳에서 우리가 느끼는 그런 지루함이 존재하지않을지도 모른다 그 세계에서는 우리가 지금 겪는 지상에서의 행복과는 완전히 다른 절대로 지루해지지않는 행복을 얻을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곳은 우리가 살고있는 세계의 시공간의 제약을 벗어난 곳이니 그곳에서의 시간은 우리가 현실세계에서느끼는 시간개념과 완전히 달라질테니 우리의 논의인 무한한 시간이라는 전제조전 자체가 무의미해질도 모른다.

2.만약 앞으로 불행밖에 없으며 앞으로 그불행을 덮을만큼 많은 행복이 주어지지 않을꺼라면 자살은 도덕적이고 합리적일수있다.

셸리 케이건의 말에따르면 우리가 사는이유는 행복때문이며 만약 우리인생의 전망이 아주 않좋으며 우리가 불행하게 산다면 자살은 정당할수있다고 그가 주장한다.

그의 말에따르면 인생의 행복을 그래프로 나타낼수있다는 주장을 바탕으로 공리주의에 의거해서 인생의 행복그래프가 마이너스로 끝난다면 그인생은 자살하는것이 합리적이며 도덕에도 그렇게 반하지 않는다는것이다.이주장에 내가 마음에 안드는 부분은 인생의 행복지수를 객관적으로 나타낼수있다는 부분이다.

인생의 행복지수를 객관화 기킨다면 어떤 기준점을 기반으로 행복과 불행을 나타내야할것이다.

그래야만 행복과 불행을 수치화시킬수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기준은 어떤사람을 기준으로 해야하까?예를들어서 아프리카 어린이들은 음식을 먹는것만으로 행복해한다 하지만 그들이 만족할 음식물로는 한국에있는 평범한사람들에게 불행이될것이다 더 극단적인 예시로 아유슈비츠 수감자들은 구타나 모독이 없다는 그상테에서도 행복을 느끼겠지만 우리는 그런 상태에 아무런 행복을 느낄수없을것이다.

그렇다 행복은 주관적이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식으로 수치화시킨다면 우리는 아유슈비츠에서의 자살은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선택이고 이건희 딸의 자살은 비합리적인 비도덕적인 선택이될것이다 그러나

자살자에게 그런식으로 항의한다면 어떻게 대답할까?예를 들어서 학업에 지친 어떤 아이가 자살할려고 할때 너는 아유슈비츠 수감자들에비해 행복한편이며 행복할가는성도 있는데 왜죽으려하냐고 묻는다면 그는 이렇게 대답할것이다 "힘들어서"그러다 우리는 힘들때 자살한다 그러니까 힘들다는 개인적인 측면에서 아유슈비츠 수감자나 학업에 찌든 10대 소년이나 똑같은 처지에 있는것이다 그런데 그런사람들의 자살을 어떤건 도덕적이고 합리적이라하고 어떤건 비합리적이고 비도덕적이라고하는것이 과연 타당한가?

그는 어떤 자살은 합리적이고 도덕적이라고 하고 어떤 자살은 비합리적이고 비도덕적이라고한다 그러나 우리한테 그것을 정당하게 평가할 잣대가있는가?

자신이 만든 인위적인 잣대로 미래가 희망이없고 앞으로의 인생이 불행으로 가득찼다는것을 도데체 누구의 시선으로 평가하는가?

도데체 10대 소년의 자살을 비도덕적이고 비합리적으로 만드는 행복의 잣대는 누구의 잣대로 평가하는가?

아유슈비츠 수감자의 잣대인가?아니면 예일대 교수의 잣대인가?

나는 질문한다 당신 말대로라면 아유슈비츠 수감자들은 자살해야한다 그러나 아유슈비츠 수감자들한테 자살을 권유한다면 그거야말로 비도덕적이지 않는가?인생이 불행이 가득해도 인생의 미래가 비관으로 가득찬 그 아유슈비츠 수감자들은 아주 약간의 그 예일대 교수가 본다면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그희망을 가지고 인생을 자살로 끝내지않고 투쟁했다 그런자들한테 자살을 권유한다면 그거야말로 비도덕적이고 비인간적인 처사이지 아닌가?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인간이지 아닌가?어마어마한 고통속에서도 자신의 인생을 약간이라도 더늘리기위한 그 열망을 위해서 죽음을 두려워하기에 자신의 인생을 약간이라도 더 늘리기위해서 투쟁하는것이야말로 진정 인간적인 감정이자 인간적인 투쟁이지 아니한가?

3.죽음이 끝이니까 열심히 삶을 살아가자 그리고 죽음이 삶을 더가치있게 만든다.그리고 죽음을 인정하자

참 좋은 소리다 나도 이주장에 딱히 동의 못하는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을 더낫고 가치있는 이야기를 채워넣자는것은 내가 딱히 동의할수 없는 주장이다

우리 인생을 하나의 꿈이라고 가정하자 당신이 꿈에서 아무리 훌륭하고 좋은 선행과 일들고 신비한 모험을 한다해도 결국에는 그꿈이라는 세상과 당신은 영구히 단절될거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한 모든 일들은 당신한테 만큼은 그 어떤 의미도 가치도 남지않는다 마찬가지로 당신이 꿈에서 아주 사악하고 나쁜 행동들을 엄청나게 저질렀다고하자 그렇다해도 당신에게는 그어떤 의미도 가치도 처벌도 남지않는다 꿈이라는 세계가 내가깬후에도 지속된다고해도 당신이 꿈에서 껜후에는 그꿈이라는 세계는 아무런 가치도 남지않는다.

그러니까 당신이 성인군자로 삶을 살든 나쁜놈 연쇄살인마로 인생을 살든 종국에는 완벽히 사라지는 같은 운명에 처해지는대 내가왜 그렇게 살아야하는가?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한번뿐인 그꿈에서 자신이 할수있는 극강의 쾌락과 행복을 누릴려고 하지않을까?당신이 어떤인생을 살든 이 삶이라는 꿈조차도 한 몇백만년후에는

없어져서 당신을 기억해줄 사람도 존재하지않을텐데 왜?내가 나의 인생을 도덕적으로 만들어야할까?

내가 지금 너무 허무주의적 주장을 하고있다고 생각하지만 나의 결론은 우리 삶이 우리의 꿈처럼 끝이라면 막살아도 된다는것이다.

다른 사람 안볼때 칼로 사람을 찔러도 어쩌피 그사람도 영원히 없어질것을 내가 더 빠르게 끝낸것이 아닌가?

그리고 현실이 꿈처럼 영원히 끝날 것이라면 내가 아무리 착하게살아도 남는것은 소멸뿐이며 내가 아무리 나쁘게 살아도 남는것은 소멸뿐이다

그렇다면 한번뿐인 인생 나의 행복만 추구하면 되지않는가?

그래 당신말대로 내인생을 조심하고 열심히 충만하게 살았다고 치자 그래서 무슨의미가 남는가?

무슨 가치가 남는가? 내 인생이라는 책을 누군가 기억해주기라도 할것인가?내가 죽으면 내가 적은 이책은 아무런 가치도 의미도 남지않는데 내가왜?쾌락만 추구하며 막살면 안되는가?

내가 죽는다면 정말로 내가 영원히 사라진다면 쾌락우선주의적 관점에서 자신의 쾌락만 추구하며 도덕이니 윤리니 하는것을 거부하는 인간상이 왜?합리적이지 않은가?

생각해보아라 죽으면끝이다 그렇다면 내가 본능적으로 추구하는 그 쾌락을 추구하는것이 왜? 나쁘지 않는냐말이다?

도덕이니 윤리니 하는것을 내가 죽으면 끝인 이세상에서 법을 제외한 윤리니 도덕을 지킬 필요는 어디서 나오는가?

여기에서 쾌락을 기반으로 인생의 자살이 정당화될수있다고 주장하는것처럼 쾌락이 가장 중요하다면 내가 왜?윤리니 도덕따위를 지켜야하는가?

당신이 꿈에서 아주 완벽한 인간관계와 훌륭한 선행과 훌륭한 업적들을 남겼다고 치자 당신이 죽으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내가 한마디로 말하겠다 남는것은 없다 그렇다 우리가 착하게 살아도 남는게 없고 개새끼로 살아도 남는게없다.

그러나 개새끼로 살면 쾌락 그렇다 쾌락의 농도만큼은 그러니까 남을 등쳐먹고 사는 사이코패스같이 산다면 쾌락만은 남는다 착하게 살아도 행복할수는 있지만 생각해보아라 우리가 도덕이니 윤리니 하면서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사는것보다는 이기적으로 사는것이 쾌락적 관점에서는 더 낫지 않은가?

그러니까 이삶이 하나의 꿈이라면 쾌락을 쫓는게 더 합리적이지 않는가? 어쩌피 당신이 쌓아올린 인간관계나 선행 인격적 성숙모두다 무로 돌아갈텐데말이다.

내가 너무 허무주의적으로 접근한거같기도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죽으면 끝이라면 꽤나 허무주의적 결론이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허무주의자가 아니다 그러나 합리적으로 죽음이 우리의 완벽한 끝이라면 자신의 쾌락만 쫓으면서 사는게 합리적일수 있다는것이다.

이책에 나온대로 인간의 삶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쾌락이 마이너스라면 자살도 합리화될수있다면 오직 쾌락만 추구하며 사는것이 합당한 결론일수 있다는것을 말하고 싶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런 삶을 원하지않지만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이런 삶이 합리적일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죽음은 삶을 더가치있게 만들지 않는다 내가 너무 장담한는것 같지만 생각해보아라 나의 모든 업적과 인생동안 쌓은 모든 관계와 선행 인격적 성장이 끝인데 왜?이것이 삶을 더 가치있게 만드는가?오히려 허망하지 않는가?

꿈에서 백만장자가 됐다가 깨면 허망한것처럼 말이다 오히려 허망해야 정상이 아닌가?

당신은 할수있는가? 그러니까 당신은 이 죽음은 무엇인가라는 책을 통해서 죽음의 공포가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이라고 한다 해도 당신은 그 공포를 없게 할수있는가?

아마도 할수없을 것이다 나또한 그렇다 그는 우리한테 불가능한것을 요구하고있다 아무리 죽음이 두렵지 않고 죽음이 공포스럽지않다고 할지어도

인간이라는 존재가 같는 그 공포 그 불안을 없게 만들수는 없기때문이다.

당신은 과식이 당신한테 해롭다는것을 알아도 그것을 쉽게 끝낼수있는가?

불멸에대한 열망과 죽음의 공포는 그 과식과는 비교도할수없는 욕망이다 그런데 이런것을 당신은 끝낼수있는가?

불가능하다 그렇다 불가능하다.

그는 불가능을 우리한테 강요하고있다 그렇다 그는 자신도 할수없는것을 이상적인 목표라면서 다른이한테 권유하고있는것이다 이런게 합당한가?

결론

내가 너무 이책을 비판해서 저자에게 약간 미안하다 그저자가 나보다 똑똑하고 훌륭한 분인데 내가 너무 그를 비난한것같다 그러나 내속에있는것을 말하지않는다면 내가 겁쟁이가 아닐까?아무튼 나같은 멍청하고 지위도 낮은자가 그같이 훌륭한 사람을 비판하는것이 약간 우습게 보이기도한다 만약 내글을 읽고 불쾌하셨다면 사과합니다

제가 너무 네거티브하게 글을 쓴것같다 다음 리뷰는 좀 긍정적으로 써야겠다 이책은 아주훌륭하고 싶고나는 개인적으로 별 네개반을주고싶을정도다 좋은 책이니 내글을읽고너무 부정적으로 이책을 생각하지않으셔도 됐니다.그리고 제가 이책을 오해한것이 있다면 댓글남겨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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