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무기력해진 걸까


한동안 힐링용 클래식 음악에만 빠져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감당할 수 없는 무기력함이 온몸을 덮쳐왔다.


마스크 때문에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서 머릿속이 몽롱해져 그런 걸까.


요즘 책에 눈이 잘 안 들어와서 그런 걸까.


그런데 오늘에서야 그 이유를 깨달았다.


책을 빌리거나 반납하거나 읽지 않아도 습관처럼 방문하던 그곳.


도서관의 책 냄새가 그립다.


나를 아는 체 하며 반겨주시던 사서 선생님의 미소가 떠오른다.


새로 들어온 책들 중에 내 취향의 책이 없는지 재빠른 눈짓으로 제목들을 훑어보던 그 재미가


이제는 사라졌다.


동네에 그 흔하다는 롯데리아조차 없던 그 시절에


뜬금없이 도서관이 지어진 후 꾸준히 다녀갔던 그곳인데


누가 나한테 이런 말을 했었다.


나를 찾으려면 여기저기 뒤지며 다닐 필요가 없다고.


분명 도서관에 가 있을 테니까 거기서 잡아오면 된다고.


관념어로 가득 찬 산문시를 쓸 때도


이력서를 프린팅할 때도


블로그에 사야 할 책을 정리해둘 때도


집에 전기나 수도에 문제가 생겨 하루종일 밖에서 지내야 할 때도


심지어 교통사고로 죽다 살아났던 그날도 책을 반납하러 향하던 도서관 앞길에서였다.


어느 날부터인가 내 삶에 우리 동네 도서관이 얼마나 깊이 들어왔었는지 이제야 돌아보고 깨닫게 됐다.


한동안 외출할 때 부모님께서 어디 가냐고 물어보시면 항상 "도 다" 라고 말했었다.


"도서관에 다녀옵니다"를 줄여서 한 말이다.


내게 일할 때, 병원에 다녀올 때, 장을 보러 마트에 갈 때 빼고 외출의 목적은 도서관밖에 없었다.


아참, 서점이나 헌책방에 어쩌다 가끔 갈 때 빼고는.


그랬던 도서관이 문을 닫으니


이제 나는 몸도 마음도 둘 곳이 없어졌다.


나는 유물론적인 사람이다.


물질이 모든 걸 지배한다.


'나'라는 육신의 물질이 향할 곳이 사라진 이후로 방황만 반복된다.


집에는 아직도 읽어야 할 책이 잔뜩 쌓여 있지만


그냥 아무 목적 없이라도 반드시 본능적으로 다녀왔던 곳을 지나칠 수 없으니


내 정신도 책에서 멀어지는 기분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단순히 폐렴 이상의 영향력을 이런 식으로 행사할 줄은 몰랐다.


예전에 독갤러들보고 너네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보다 도서관이 문을 닫는 게 더 끔찍하지? 라고 비웃었는데


실은 남의 얘기가 아니었다.


4월부터 다시 문을 연다는데 현 상황을 봤을 때 과연 가능할까 의문스럽다.




그래서 에필로그처럼 남기는 책 얘기:


스즈키 코지의 어두컴컴한 물밑에서 이 책 이거


프롤로그, 에필로그가 있어서 장편소설인 줄 알았더니


이 뭔... 그냥 물을 테마로 한 소설모음집이었다.


뭔가 엄청난 게 있을 줄 알았는데 어딘가 스케일이 작은 공포 단막극을 보는 기분이라서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