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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현재 인간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체계와 질서들이 사뭇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그 이유는 다름아닌 흑백논리에서 기인한다. 

과거 인간이 자연의 법칙에 따라 지배되던 시대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경쟁과 생존논리라 할 수 있다. 경쟁의 기본 목적은 바로 독자적인 생존을 위해서이다. 화려한 수식어구를 붙여도 경쟁은 바로 삶의 지속과 직결된다는 것은 가장 극단적은 경쟁심리를 확인할 수 있는 도박이나 복권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경마장에 간 도박꾼들의 심리는 다른 모든 사람들의 선택이 나의 선택과 다르길, 그리고 자신만의 선택이 최종적으로 유효한 선택이 되기를 바란다. 

인간의 특성은 개별 경쟁의 대소(大小)와 적용범위에 따라서 각각 다른 사회적 현상으로 표출될 수 있다. 현상적으로만 보았을때 개인이 가지고 있는 경쟁심리가 내적으로만 성장하였을 때, 사회에서 일컫는 범죄의 형태로 표출될 수 있는 소지가 다분하다. 

대부분 사회적으로 범죄라고 규정짓게 되는 사안들 가운데에서 심하게는 살인, 방화, 강간, 도둑 등의 강렬한 표출과 범죄는 아니지만 다분하게 다양한 문제의 근원이 될 수 있는 언쟁, 무시, 회피 등 미미한 형태로 양분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에 반하여 외부로 표출되는 경우에 있어서 그의 반작용은 사회나 타인들에 의한 그 개인의 인정과 칭찬의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런데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바로 경쟁의 외부적 표출에 의하여 발생되는 현상들이다. 최근들어 공기업과 사기업에서 발생되는 노조의 총파업들은 개인의 경쟁심리가 집단행동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으로 발현되는 대표적 형태로 인식할 수 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자신과 반대편을 설정하고 이를 토대로 다양한 형태의 공격을 하게 되는 것은, 멋모르는 초등학교 시절 뚱뚱하고 못생겼다는 이유만으로 같은반 학우에게 돌을 던지고 욕을 해대는 심리와 동일한 선상에서 해석될 수 있다. 자신은 뚱뚱하지도 못생기지도 않았기 때문에, 돌을 던져도 무방하다는 생각, 이것을 이기적이라고 부르는 것에 그다지 공감하지 않는다. 단지 그것은 상대방과 다르다는 이질적인 사고에서 출발되는 인간의 사회적 폭력인 것이다. 

나와 남을 나눈후 이익관계에서 나의 요구가 받아들여졌을 때, 단기간의 경쟁에서 상대방보다 우세하였다는 만족감이라는 기본 욕구와 함께 이익의 동시 실현이라는 충족감 역시 이러한 행동들을 유도하게 되는 요소들이다. 여기에서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되는 문제는 최근 국제사회 관계에서 보게되는 미국의 행동논리이다.

기본적으로 기독교사상을 가지고 있는 백인문화는 성경의 논리에 기초하여 나와 남을 나누고 경쟁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하느님의 존재를 만들어내어 구약성경들을 쓴 사람의 논리는 명백하다. 그는 자신의 글에 이러한 개념들을 저변에 사용한다. 하느님은 유일신이며 그 하느님은 다른 신들과 다른 전지전능하다. 

게다가 그는 질투의 신이기에 다른 신을 믿는 사람은 죽음을 당해도 마땅하다. 세계는 나와 남으로 양분된다. 나는 옳고 만약 사람을 죽이게 되어도 하느님의 명령이었고 죽음을 당한 사람은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나의 행동은 잘못된 행동이 아니다. 

현대 이전의 인간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자연의 현상에 얽매이는 일상생활을 영위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전세계적으로 고대문명의 유적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는 다신주의(多神主義)는 자연신들로 구성되어 있다. 태양신, 달신, 바다신, 각종 동물신, 심지어 죽음의 신과 생명의 신까지 모든 완전체의 개념은 자연 그 자체에 귀결점이 있다. 당시의 경쟁심리의 표출은 어떤 형태로든 현대와 다를 것은 없지만, 사회적 구속력보다 개인과 가족의 구속력이 큰 시대인 만큼, 현상적으로 현대에서 볼 수 있는 현상보다는 그 규모나 방식이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개인의 경쟁심리가 현대적인 개념으로 변모하게 되는 계기를 오랜 시간동안 만들어 낸 결과가 백인들의 성경논리이다. 이는 고대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소수민족이지만 생존력이 강한 종족인 유대족의 논리다. 그들은 억세고 활동적이며 수리능력이 뛰어난 고대 종족이었으며 상대적 우월성을 강조하는 개인들의 경쟁심리가 가족단위를 뛰어넘어 집단으로 극대화된, 나아가 그러한 개념들이 성공적으로 이익을 보존할 수 있도록 성공적으로 행동한 부족이었다. 

자연을 완전한 논리를 가진 객체라고 가정한 과거의 인간들이 유일한 신을 만들어 낼 수 있던 까닭은 치열한 경쟁속에서 자신의 논리만을 심리적, 현실적으로 극단적으로 강조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상당히 효율적이고 모든 부분에서 적용 논리가 보장되는 이 기본 사상을 유럽의 백인들이 도용하게 되면서 다양한 개념들이 새롭게 만들어져 포장이 되어 왔다. 백인들의 성경논리는 중동에서 오랜동안 종족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다른 종족들과 다른 경쟁논리를 가지게 된 유대족에서 기인하지만, 지칭하는 하느님이라는 유일신의 개념은 상당히 다르게 적용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나와 남을 양분하여 힘이 센 편이 옳다는 논리에서는 2천년전이나 지금이나 일관된다. 

현재 세계는 미국이라고 일컬어지는 자유시장경제체제를 표방하며 실제로는 대표적인 혼합경제체제를 사회의 기본운영형태로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곳의 일부 지역적 문화, 정확하게는 미국내 극히 일부 지역의 자본주의 문화를 세계 많은 국가들, 특히 아시아지역에서 급속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이는 어느새 받아들이는 단계를 벗어나 변형된 자본주의 문화의 역수출의 형태로 세계 여러 지역에서 상호작용을 하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에서 돋보이는 것이 일본의 에니메이션과 게임문화이다. 

세계에서 하느님이라는 절대개념을 설정하고 나와 남을 양분하는 이익추구형 철학을 국가적 민족적 토대로 구축하고 있는 대다수의 기독교, 이슬람 문화와는 다른, 기독교와 이슬람교회가 존재하기 가장 어려운 국가인 일본에서 백인문화의 개념을 바탕으로 현대에 만들어낸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문화들은 개인의 경쟁심리가 동양적 융화사상에서 발생되는 것이 아닌 서양적 흑백논리에서 전개된다는 것은 최근의 일련의 자본주의의 부정적 측면을 설명하는데 가장 편리하게 이용될 수 있다. 

미국의 세계지배는 일본에서 만들어지는 에니메이션 게임의 줄거리와 상당히 흡사하다. 힘없고 가진것 없이 조그마하게 시작된 주인공이 최선의 경쟁심리와 외부로 표출되어 개인의 극대화된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힘, 무기, 자본, 이분법 논리에 가장 적합한 성경을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하면서 나와 다른 남들을 죽이고 그들것을 빼앗고 심지어 그들을 노예로 지배하면서 정상의 자리에 오른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현재 현실화되고 있다는 것. 인간의 경쟁심리의 외부적 표출이 내부적 표출에 비하여 훨씬 더 인간 전체에게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은 미국의 만화적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상당히 설득력있는 논리일 수 있다.

성경이 구별되는 예수의 철학은 동양에서 집약되어 그 사상이 널리 퍼지게 된 부처사상의 영향을 받은 후, 새롭게 포장되어진 논리로 인간사회의 조직화로 인한 인간생활의 현실적 측면들을 다양하게 제고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쟁논리의 폭력성을 약자의 측면에서 다루고 있기 때문에 더욱 현대의 사고에 부합되는 논리를 펼칠 수 있게 된다. 경쟁적 강자가 절대적 약자에게 약자의 경쟁논리를 가지고 상대한다는 것만큼 유용한 도구는 없을 것이다.

인간의 경쟁은 기본적이고 본능적인 철학이다. 그러나 이의 표출의 정당성이 흑백논리에서 출발된 개념으로 잣대를 짓는 현실은 상당부분 반려되어야 할 것이다.

인간들이 서 있는 이 땅은 만화주인공이 만들어내는 게임의 영역과는 사뭇 달라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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