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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이중성은 상당히 기묘해서, 전체적으로 보면 쿳시의 모든 저작 중 가장 실험적이면서도, 부분적으로 보면 가장 읽기 쉽고 편안하다 말할 수 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알아차리는 데에는 그리 큰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 그저 첫 페이지만 넘겨봐도 곧바로 알 수 있으니까. 이게 대체 무슨 구성이람? 글은 총 세 개의 부분으로 상중하가 나뉘어 있다. 말 그대로의 의미에서, 줄을 경계선으로 두고 나뉘어 있다. 상층은 JC(아마도 J.M.쿳시)라는 노년 작가가 쓰는 에세이, 중층은 JC를 화자로 하는 현실의 이야기, 하층은 안야라는 미인 타이피스트를 화자로 하는 현실의 이야기인데, 세 개의 서로 다른 텍스트는 텍스트 상의 현실에서 분명하게 상호작용하고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 '대위법'적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 그걸 드러내듯 작중에서 JC는 수많은 작곡가들 중 유독 바흐에게 특별히 찬탄을 보낸다. "어째서 나는 바흐에게, 오직 바흐한테만 이처럼 말하고 싶어 하는 걸까? 어째서 슈베르트한테는 아닐까?" (p.243) 이런 부분이 과연 메타적인 아이러니를 노린 것일지, 아니면 실제로 쿳시가 바흐를 좋아하기에 이런 글을 썼는지는 알 수 없다.



사람마다 어디에 더 관심을 갖고 읽느냐는 다르겠지만, 내 경우 에세이의 흥미로운 주제와 내용에 사로잡혔다가 점차 아래 쪽에서 이뤄지는 '현실'의 이야기에 끌려들어갔다. 대충 그 시점이 에세이와 현실이 보다 적극적으로 얽히기 시작한 순간일 것이다. 타이피스트가 소설가에게, 소설가가 타이피스트에게 점차 관심을 갖고 서로를 다른 인격체로서 인식하게 되는 순간. 그 전까지도 에세이가 '현실'과 어느 정도 연관은 있었지만, 사실상 큰 의미는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처럼 실수투성이로 일을 진행한다. (...) 어쩌면 그녀는 작가가 그런 존재일 거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p.42) "그가 정치에 관해 말하는 것은 나를 졸리게 만든다." (p.46) 등의 부분들이 그런 의미 없는 교차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본격적으로 얽히고 영향을 주기 시작하는 부분은 그들이 진지한 '의견 대립'을 한 순간이라고 본다. 타이피스트가 그가 준 텍스트에 동의하지 않고, 좀 더 부드러운 글들을 써보라고 제시하는 순간 말이다.



이런 방식은 쿳시의 글에선 사실 꽤나 익숙한 방식인데, <엘리자베스 코스텔로>에서 가장 노골적으로 보여주듯-다른 글들에선 노골적이진 않지만 하나의 글 안에서의 대립으로 보여주듯-작가가 주장하는 내용과, 그것과 대립하는 현실 사이의 변증법을 통해 의견을 제시하는 방식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여기에선 정과 반으로 끝나지 않고, 합의 과정을 독자에게 넘기는 대신 작가 본인이 다음 텍스트로 제공한다는 점이다. 책의 두 번째 부분인 "두 번째 일기"가 그렇다. (참고로 말하자면 첫 번째 부분의 이름은 "강력한 의견들"인데 자전적 소설 3부작처럼 확실히 나보코프의 영향력이 강하게 느껴지는 이름이다.)



JC는 거기에서 더 이상 '크고 무거운' 주제를 다루지 않고, 보다 더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한 글들을 쓴다. 안야는 자신의 피앙세가 JC에게 무례하게 대한 것을 이유로 그와 헤어지고, JC에게 편지를 보낸다. 그리고 그 둘이 일반적인 사랑과는 다른, 노인과 젊은이 사이의 색다른 방식의 사랑을 했었다는 걸 인정하고 JC가 그랬듯 자신 역시 JC로 인해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다. 이 과정에서 처음에 JC의 말로 나왔던 죽음에 대한 꿈 이야기는 아래쪽의 안야의 말에서 다시 끄집어졌다가,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전설에 대한 해석으로 변환되어 에세이로 재등장하고, 말미에 안야의 편지에서 또 등장한다. 이런 하나의 소재가 어떻게 다층의 텍스트에서 돌아다니는지. 이런 게 바로 메타적인 글이 줄 수 있는 형식상의 재미가 아닐까?



하지만 무시하기 힘든 단점이 하나 있으니, 읽기 힘들다. 이 세 텍스트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말 그대로 대위법적인 텍스트지만, 페이지마다 조금씩 끊겨 있으니 어느 하나에 제대로 집중하기가 상당히 힘들다. 역자는 아래쪽의 현실에서의 이야기-상술한 '부분적으론 가장 읽기 쉽고 편안한' 이야기가 이 부분이다-가 어떻게 진행될지 너무 궁금해 이를 먼저 쭉 훑으며 읽은 다음, 그 다음에야 전체를 보았다고 하는데 과연 어떨지. 내 경우에는 귀찮음을 무릅쓰고 매 페이지마다 각 텍스트를 조금씩 읽어나갔다. 덕분에 처음에 본 상층의 에세이가 다음 페이지에선 잘 기억이 안 나 돌아오던 게 몇 번이다. 대부분의 실험작은 어쨌든 독자의 물리적 불편함을 상당히 요구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