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시절 :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eading&no=103016&s_type=search_all&s_keyword=%EA%B0%90%EC%B6%B0%EC%A7%84+%EC%96%BC%EA%B5%B4&page=1


청년 시절 :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eading&no=107035&s_type=search_all&s_keyword=%EA%B0%90%EC%B6%B0%EC%A7%84%20%EC%96%BC%EA%B5%B4&page=1


절판된 오웰 평전 '조지 오웰 감춰진 얼굴'의 내용 중, 다른 에세이나 기록과 겹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것을 선별함. 요약과 윤문 있음.






1.

1940년. 38살, 2차 세계대전 발발 후 런던의 조지 오웰.


그는 적극적으로 전쟁 수행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근무직을 찾기 시작했다.

신체검사를 속이고 육군에 가려 했으나, 의학적 이유로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이 때문에 그는 지독한 좌절을 느꼈다. 오웰은 윌리엄 엠슨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나라 남자들의 반이 그들의 불알을 주고서라도 갖고 싶어할 것을 가지고 있어. 하지만 난 그런 것은 필요없어."




2.

비슷한 시기, 오웰이 '타임 앤드 타이드'라는 잡지에 썼던 미국 영화에 대한 평론.


"영화는 관객을 생각하게 만들거나, 생각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미국인)이 만든 영화는 그렇지 못하다. 책을 읽는 미국 영화 배우는 문맹자같은 태도로 책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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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프리 보가트 주연 1941년 작 '하이 시에라'에 대한 평) 새디즘, 약한 자를 못살게 구는 사람 숭배, 총놀이, 턱에 걸린 양말,

전반적으로 갱 분위기를 가장 잘 재현한 것을 원하는 관객에게는 이 영화가 제격이다.

거물 험프리 보가트는 사람들의 얼굴을 피스톨 개머리판으로 갈기고,

동료 갱들이 불에 타 죽는 걸 보며 태연하게 '저것들은 촌놈들일 뿐이야'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개에게는 친절하고 그의 과거를 모르는 불구 소녀의 순수한 애정에 마음을 빼앗기는데

이것은 관객들에게 매우 감동적으로 여겨지도록 처리되어있다."




3. 1942년, 영국 bbc 라디오 방송국에서 담당한 인도 지역에 방송되는 전시 프로그램 제작 및 진행을 그만두며 썼던 일기.


"내가 하는 일은 모두 쓸데없고 투자한 시간에 비해 결실은 보잘 것 없다. 가장 무서운 좌절감은 시간을 낭비한다는 느낌.

그것은 전쟁이 어리석은 것이기 때문에 전쟁의 일부인 그 일도 쓸데없이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이 사실상 전쟁수행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를 사로잡고 있는 거대한 관료주의 체재만 그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bbc 방송의 대부분은 성층권으로 쏘아지거나,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오로지 방송 제작자들에게나 알려질 뿐이다."




4. 1945년, 나치에게서 해방된 파리에서 헤밍웨이를 만난 오웰.


오웰은 자신이 묵은 호텔의 숙박기록부에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이름을 보고 방 번호를 기억해 두었다가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헤밍웨이는 급하게 짐을 싸고 있었다. 오웰은 수줍어하며 자신을 '에릭 블레어'라고 소개했다. 헤밍웨이의 대답은 무례했다.


"그래서, 제기랄, 당신 뭐가 필요해?"

"저는 조지 오웰입니다."

"제기랄, 왜 진작 그렇게 말하지 않았소?"


헤밍웨이는 가방에서 술병을 하나 꺼냈다.


"한 잔 하시오. 두 잔이라도 괜찮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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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웰의 첫 번째 부인 '아일린'


4. 조지 오웰의 첫 번째 부인, '아일린'은 1945년 자궁근종 수술을 받다가 마취 부작용에 의한 심장마비로 39세의 나이로사망함.

아래는 그녀가 오웰에게 자신의 병세를 설명하는 편지의 내용.

'동물 농장'의 출판이 코 앞이었고 이 작품은 영국과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출판 전인 이 시기, 부부의 경제 사정은 좋지 않았음...


"런던보다는 비용이 싼 뉴캐슬에서 수술을 받기로 했어요. (중략) 걱정스러운 것은 제가 정말 그 돈 만큼의 가치가 되는 사람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걸 치료하지 않고 그냥 놔두면 제가 죽는데 시간이 더 걸릴 것이고, 그동안 돈이 더 들 거예요."


"저는 당신이 문필(신문 기사나 칼럼을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지 않고, 다시 글 쓰는 일에 전념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그것이 리차드(오웰과 아일린이 입양한 양자)에게도 훨씬 나을 거예요.

리차드는 당신에게 이런 메세지를 보내요. '나는 아무런 갈등이 없어요'라고요.

리차드의 눈에 멍이 든다면 아픈 동안 그는 울겠지만,

뺨의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자신을 보고 '야옹'하는 푸른 고양이를 보고선 즐겁게 웃어요.

그리고 고양이에게 사랑스런 말을 하며 안아줍니다. 새로운 상황은 그에게는 재미나고 바람직한 일이예요.

리차드는 너무 똑똑해서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좋은 친구라고 생각하고,

비록 누가 그를 해롭게 하더라도 그것이 실수였다고 이해해주고, 조금도 자신감을 잃지 않아요."




6. 두 번째 부인 소냐와의 결혼 전후의 몇몇 장면들.

소냐는 1984의 성공 전까진 오웰의 청혼을 거절하다가, 1984가 미국에서 크게 인정을 받고 난 후에야 그의 청혼을 받아들임. 1984의 집필에 그녀가 기여한 바는 전혀 없음.


그녀(소냐)은 오웰을 사랑하지 않았고 작품의 우수성에 대해서도 의심을 품고 있었다.

더욱이 (그녀의 직장 보스)코놀리가 그해 말 잡지사를 폐업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기 때문에 직업적 미래도 불안했다.

소냐의 친구 다이애나 위더비는 다음처럼 회상한다.

"그녀는 자신이 오웰을 매우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음을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를 행복하게 해주면 자신도 행복하다고 느꼈고요.

그녀는 그를 사랑하지는 않았지만..."


(1984가 큰 성공을 거둔 덕분에) 오웰은 병원비와 리차드(양자)와 에이브릴(오웰의 여동생)의 부양비 외에도 상당한 금액을 저축할 수 있었다. 9월에 소냐는 그가 저축한 돈을 가지고 값비싼 약혼 반지를 샀다.


1949년 10월 13일 두 사람은 (폐병 치료를 받는 중이던) 오웰의 병실 침대에서 간단한 결혼식을 올렸다.

소냐의 친구이자 결혼식에 참석했던 자넷타 월리는 이렇게 회상했다.

"오웰은 침대 밖으로 나올 수 없었어요. 결혼식 동안 그는 몸을 일으키고 앉아있었는데 미소를 짓고 있었죠."

이 결혼식 후 소냐와 친구 등의 하객들은 오웰을 침대로 남겨둔 채 결혼 만찬을 위해 리츠 호텔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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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양아들 리차드.


병언에 오래 있는 동안 오웰이 가장 슬퍼한 일은 리차드를 거의 못 본 것이었다.

오웰은 아들이 자신을 가까이 하다 결핵에 감염될 까봐 에이브릴에게 그를 자주 데려오지 말라고 했다.

"나는 리차드가 자라면서, 내게서 멀어지거나, 나를 언제나 누워 있기만 했고 놀아주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될까봐 무척 두려워요.

어린 아이들은 병을 잘 이해하지 못해죠. 그는 내게 와서 '어디 다쳤어요?'라고 물어보곤 했어요. 그게 내가 언제나 침대에 누워있는 이유라고 생각한 거죠."


이 편지를 쓴 지 9개월 뒤인 1950년 1월 21일, 오웰은 자정 무렵 사망함.




8. 죽음 이후.


어린 리차드 블레어에겐 거액의 보험 증서가 남겨졌고 나머지 돈 -책에 대한 모든 인세를 포함한- 은 그의 아내 소냐에게 돌아갔다.

오웰은 소냐가 리차드를 기를 것이라 믿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냐는 다섯 살 난 리차드를 에이브릴에게 맡겼다.


소냐는 남편이 죽은 지 두달 뒤 (옛 연인이던) 멀로 폴티를 초대해 긴 휴가를 떠났다.


소냐는 법적으론 블레어 부인이었으나 성을 '오웰'로 바꾸었다. 남편의 인기가 치솟던 1950~60년대에는 유명 작가의 미망인으로 대단한 명성을 누렸다.


리차드는 아버지와 관련된 서류 중 단 한 가지만 간직하고 있었다. 그것은 입양 증명서이다.

그 서류에는 주목할만한 흔적이 하나 있다. 오웰은 리차드의 친부모의 이름이 있는 곳에 담뱃불로 울퉁불퉁하게 구멍을 내놓았다.

그것은 의미없는 행동 -정부 공식기록에는 친부모의 이름이 있을테니- 이었을지 모르나,

아마 오웰은 아일린이 죽은 후, 리차드가 친부모 대신 자신에게 더 강한 유대감을 갖게 하려는 의도로, 어느 외로웠던 순간 그런 행동을 했을 것이다.

리차드는 이런 서류 훼손을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그는 없어진 이름을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는 에릭 아서 블레어와 아일린 오쇼너씨의 아들인 리차드 호레이쇼 블레어로 만족한다. 그는 그들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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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먹먹해서 딱히 덧붙이고 싶은 말은 없다.

말 그대로 자신의 육신을 펜으로, 피를 잉크 삼아 글을 썼던 에릭 아서 블레어 aka 조지 오웰.

그의 영혼이 어느 곳에서건 평안하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