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원이 국가의 형성에 그렇게 필요불가결한 요소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수도사와 수녀를 만드셨습니까? 교회는 수도사와 수녀원 없이 존립할 수 없단 말입니까? 예수님께서 그렇게 많은 미진 처녀들을 아내로 두고자 하시겠습니까? 인류는 또한 그렇게 많은 희생자를 만들어 낼 필요가 있습니까? 인류의 번창에 장애가 되는 이 제도를 축소할 필요는 없을까요? 수녀원에서 날마다 하는 기도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동전 한 푼만한 값어치라도 있는 것일까요? 사람을 사회적 동물로 만드신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스스로를 담 속에 가두는 것은 허용하실까요? 불안정하고 약한 존재인 우리가 한순간의 선택인 서원의 구속에 묶이는 것을 옳다고 인정하실까요? 자연의 섭리에 어긋나는 이러한 서원은 감정이 메마른 기형적인 사람만이 지킬 수 있는 것 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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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 당신의 모습을 본따 인간을 대지에 뿌리내리시고 당신이 우리를 사랑할진대 왜 우리를 망령들 사이에 싹 틔우셨는지요.
저희는 왜 항상 나아가기 위해 저항해야만 하나요. 왜 기쁨에 자유롭지 못한가요. 왜 불행은 계속되나요. 왜 고통을 주시나요. 왜 온 땅에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지 않으시나요.
간절히 바랍니다. 하느님, 부디 사랑하는 이들에게 그들이 받아 마땅한 사랑과 평화를 내려주세요. 그들 곁에 그들만큼 아름다운 이들이 머물도록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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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쉬잔은 부모의 강요에 의해 수녀가 되고, 수녀원 생활에서의 폐단과 학대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원 취소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패소합니다. 책은 그 과정에서 알게된 어느 후작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편지형식의 글입니다.
상단 인용문은 본문에서 발췌한 재판과정중 변호인의 변론 일부입니다.
비오는 날 진중문고실에 갔다가 아무 동기도 없이 그냥 읽기 시작했다가 앉은자리에서 끝까지 읽었네요. 근래에 책을 좀 열심히 읽었는데 이렇게 몰입해서 읽은 책은 참 오랜만입니다. 읽고 나서 한동안 이 책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어요.
저자인 디드로 역시 엄격한 가톨릭 집안에서 부모의 강요로 수도원 생활을 했고, 마찬가지로 수녀가 된 그의 여동생은 결국 정신질환으로 죽었다고 합니다.
기회가 되시면 꼭 추천해드리고싶어요. 편역본이긴 하나, 번역 자체도 아주 좋았어요.
재미있겠네요
편역본이긴 하지만 번역도 아주 훌륭해요. 기회가 닿는다면 꼭 읽어보셨으면.
부모의 강요로 할 수 있는 생활이 아닌데 그 삶이란 게. 뭐 틀어지니 부모 탓하는 느낌인데
ㄴ처음 시작은 자기가 원해서 했다고 말하려는 거임?
ㄴ yes. 실제 타온의 강요가 아님을 문서로 남기기도 하고 성당에서 공개적으로 서약하기도 하는 예식이 있고. 이런 거 저런 거 다 떠나서 그 생활 자체가 부모강요로 할 수 있는 삶의 양식이 아님. 그 말은 마치 부모 강요로 교도소 생활 했다는 것과 똑같은 말.
뭐 자의로 시작했어도 살다보니 인간답지 못한 삶에 부적응 했고 벗어나고 싶었다는 걸 신을 탓하든 부모를 탓하든 표현했다는거네
음....... 수녀 읽어 보셨나요? 저는 그렇지는 않다고 느껴서요. 그리고 그 부분이 본질적인 차원에서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 않을까요?
나는 '그 삶'이 어떤지도 모르고 드니 디드로에 대해서도 아주 조금밖에 모르지만, 디드로가 18세기 사람이라는 건 염두에 두어도 괜찮을 것 같은데.
ㄴ 이건 좀 예리한 지적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