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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걸리버 여행기
저자 : 조너선 스위프트
역자 : 신현철
읽은 기간 : 20.03.12~20.03.20



소인국과 거인국을 여행하는 재미있는 모험소설로 알았던 책.
저도 이름만 들어보고 읽어보지는 못한 '동화'를 읽어보자는 마음으로 「안데르센 동화 전집」과 함께  「걸리버 여행기」를 샀습니다.

그런데 책 뒷표지를 보니 '독설과 풍자로 감옥에 갇힐 것을 각오하고 쓴 책' 이라는 소개 문구가 있었습니다.
그냥 '어른들을 위한 동화' 정도라고 생각을 하고 책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이 책은 소인국 / 거인국 / 하늘을 나는 섬 / 말들의 나라
총 4부로 이루어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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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인 소인국(릴리퍼트)파트부터 작가의 풍자가 시작됩니다.
15cm의 작은 키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사는 릴리퍼트에서
'계란 윗부분을 깨서 먹냐, 아랫부분을 깨서 먹냐' 같은 사소한 문제로 전쟁이 일어난 상황을 보여주며, 중요치 않은 문제로 사사건건 다툼하는 사회를 풍자합니다.

허나 소인국 파트는 풍자보다 국가나 사회에 대한 회의감이 더욱 느껴집니다.

'다스리는 영역은 땅 끝까지 미치고 그 영역은 20km나 되고, 왕중의 왕이며, 키는 누구보다도 크고, 내딛는 발은 땅의 중심을 누르는' (걸리버 여행기 1부 3장)
그런 왕을 가진 소인국 릴리퍼트를
걸리버가 거인의 시점에서 바라보면서
국가와 제도들이 얼마나 보잘것 없고 무상한 것인지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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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는 거인국(브롭딩낵)이야기입니다.

거인이었던 걸리버가 이제 난쟁이가 되어 인간사회를 바라봅니다.

인간의 육체를 더 자세하게 볼 수 있게 된 걸리버는 육체의 추함을 자세하게 서술합니다.


나는 이제까지 유모의 거대한 젖가슴보다 더 구역질 나는 물체를 본 적이 없었다. (•••)
젖꼭지는 내 머리크기의 절반 정도 되었고 양쪽 젖가슴의 빛깔이며 그 주변에 나 있는 여러 개의 점과 여드름, 주근깨들이 무척 지저분하여 그보다 더 구역질 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것을 보자 나는 영국 귀부인들의 살결이 생각났다. 그 살결이 우리에게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귀부인들의 크기가 우리와 같아서 추한 부분이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걸리버 여행기 2부 1장)



거인국의 왕은 걸리버와 담론을 자주 나누며 걸리버의 나라에 대해 궁금한 것을 자주 물어보았습니다.
걸리버는 영국의 영토, 정치, 가문, 종교, 법률, 역사 등을 찬사하며 거인의 앞에서 단지 키가 작을 뿐 다른 것들은 꿀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필했습니다.

그러나 거인국 국왕은 걸리버의 이야기를 종합하여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
만들었을 당시에는 아주 좋았을 제도들이 그대의 나라에서 조금씩 허물어지기 시작하다가 이제는 부패되어 완전히 희미해지거나 제멋대로 변모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
삶의 많은 부분을 여행하는 일에 바친 그대는, 그대의 조국이 저지를 많은 악덕으로부터 벗어나 있었다고 나는 믿고 싶습니다.
(•••)
그대의 이야기와 내 질문, 그대의 대답을 종합해보았을 때,
그대의 민족 대부분이 세상의 표면에 기어 다니게 된 생물 중 가장 유해하고 밉살스러우며, "작은 벌레들의 모임"인 것으로 나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습니다.
(걸리버 여행기 2부 6장)


저자인 스위프트는 거인국 국왕의 입을 빌려
탐욕과 위선,불신,광기,증오로 가득찬 영국을 '작은 벌레들의 모임'이라고 표현합니다.

3부 또한 이러한 비판의 연장선입니다.

걸리버는 하늘을 나는 섬 라퓨타와 발니바르비 섬에 도착합니다.

라퓨타는 자석의 힘을 통해 발니바르비 섬의 경계 안쪽에서 둥둥 떠다니고 있는 섬인데, 그들의 힘으로 발니바르비 섬 전체를 식민화 하여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발니바르비 섬의 '래가도'라는 도시는 온갖 기상천외한 연구들이 진행되는 연구단지입니다.

다양한 연구 가운데 눈길을 끈건 정치에 관한 연구였습니다.

그곳에서 정치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의사에 정반대방향으로 투표하도록 만들면 국민에게 이롭게 될 것이다'

'싸우는 정치인들의 뇌를 반으로 잘라 서로에게 나누어주면 두 뇌가 하나의 머리에서 싸우다가 서로 이해하게 될 것이다'

라는 주장을 합니다.

사실 이정도면 풍자가 아니라 주먹으로 패는 수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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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에서 3부까지 사회에 대한 풍자를 마친 스위프트는
4부에서 사회가 아닌 인간본성 그 자체를 비판하며 자신의 이상향을 보여줍니다.
가장 중요한 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걸리버는 말들의 나라에 표류하게됩니다.
그 곳은 자기 자신을 '휴이넘'이라고 칭하는 말들이 본인들의 사회를 만들어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발굽으로 정교한 발기술을 사용하여 바느질도 할 수 있었고, 그들의 언어로 소통하며, 다른 동물들을 지배하기도 하였습니다.

휴이넘들의 세상은 걸리버가 생각하기에 정말 완벽하고 이상적인 곳이었습니다.
그가 소인국, 거인국, 라퓨타 등은 그토록 떠나고 싶어했지만,
휴이넘의 나라에서는 평생 살고싶어했고 휴이넘의 나라를 떠나는 것에 대해서 '파멸의 운명'이라고 까지 표현할 만큼 그곳을 사랑했습니다.

휴이넘들은 자연적으로 많은 덕성을 타고난 피조물로 묘사됩니다.
휴이넘들은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며 감정에 의해 이성을 망가뜨리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걸리버는 휴이넘들을 존경하며 따르고, 그들의 생활방식을 모방하며 생활합니다.



걸리버는 말들의 나라에 도착해서 '야후'라는 생물을 보게됩니다.
걸리버는 그들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나는 여행을 하먼서 그렇게 기분 나쁜 동물은 결코 본 적이 없었다. 또한 지금처럼 반감을 품어 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동물에게서는 경멸과 혐오를 강하게 느꼈다.
(걸리버 여행기 4장 1절)

'야후'들은 간사하고 악하며 배신을 잘하고 건방지며 야비하고 잔인하며 음탕하고 더러운 존재입니다.
그래서 휴이넘들의 사회에서 야후들은 휴이넘들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동물들이 배척합니다.

그런데 야후들의 생김새는, 그들이 옷을 입지 않았고, 손발톱이 길며, 4족보행을 한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걸리버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야후는 퇴화된(혹은 진화가 되지 않은) 인간이었던 것입니다.

걸리버는 야후를 보며 나는 그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이성이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죠.
그러나 걸리버가 휴이넘과 대화하며 인간의 본성은 야후와 다를 바 없고, 이성이 타락한 걸리버의 세계(유럽)는 야후의 무이성(無理性)보다 더 끔찍하고 더 역겹고 더 잔인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결국 걸리버는 인간에 대한 혐오와 증오에 가득차게 됩니다.


나의 가족과 친구들, 영국사람들은 그 모습과 기질에 있어서 분명히 야후들이었다.
호수나 샘에 비친 나의 모습을 보게 될 때, 나는 한 마리의 야후에 불과한 자신에 대해 증오와 혐오감을 감출 수 없었다.
나는 나를 참을 수 없었다.
(걸리버 여행기 4부 10장)


휴이넘들에게는 '악함'을 의미하는 단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휴이넘들은 '악함'을 표현하기 위해 '야후'를 묘사했습니다.
게으른 하인, 악천후 등을 '야후같은' 하인, '야후같은' 날씨로 표현합니다.
저자인 스위프트에게 야후는, 인간은 악함 그 자체인 것입니다.




이 책은 18세기 영국에서 출간되었습니다.
그러나 스위프트는 18세기 영국만을 비판한 것이 아닙니다.

스위프트의 사회와 인간에 대한 독기어린 분노는
영국만이 아닌, 문명을 이룬 모든 국가
18세기가 아닌, 문명을 일구어낸 시기부터 현재까지 유효합니다.

저는 인간의 이성을 믿는 사람입니다.
이성을 잘 활용하면 조화롭고 평화로운 사회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휴이넘 나라의 기행을 읽고
왜 제가 군대에 있는지 다시 생각해보고
군대 존재의 이유를 떠올렸을 때
제가 너무 이성에 대해서 이상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