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섭과 지적 사기
이 책은 소칼의 '지적 사기'를 읽다가 언급된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사례가 이해가 어려워 중간에 읽기 시작했다.
지적사기에 대한 국내학자들의 책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만약 지식인들이 인터넷에서 익명으로 예절바르게 개싸움을 벌인다면 이런식으로 싸울 것이다. 그 글을 일일이 정리한게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한두가지 실망한게 아닌데, 첫번째로 책장을 덮었을 때는 이상욱 한양대학교 철학과 교수가 쓴 장에서였다.
과연 이 사람은 지적사기라는 책을 읽긴 한걸까. 인터넷 기사나, 교수들과 커피를 마시면서 공정치 못한 정보를 전해들은게 아닐까? 소칼이 책에 들어가기 전 유의점에 대해서만 물고늘어지는 것인가.
지적사기에서 소칼은 들어가며 논란의 여지에서 나올만한 여지와 의심, 질문들에 대해 분명히 이야기한다.
1. 지엽말단적 인용이 아닌, 잘못된 인용사례 오류를 바로잡고, 그 오류에 기초를 둔 전문어의 남발에 주의하며, 모호 인용이유와 결론의 본질을 알고자 함.
2. 맥락을 이해 못하는 것이 아닌, 지적 목적으로 자연과학의 개념을 끌어들인 것인지-또 그런 상황에서 그 개념을 잘 숙지하고 있었는지-, 아니면 장광한 설명을 목적으로 이해자의 기를 죽이기 위한것인지 알고자 함.
3. 은유의 목적은 정확한 개념을 연결시켜주는 개념이므로 잘못 알고있는 개념을 끌어다 씀은 잘못되었음.
4. 모호한 개념에 확실한 개념을 끌어다 유추하고자 함은 위험할 수 있음.
5. 오만한 생각으로 자잘못을 따져묻겠다는 것이 아니며, 어떠한 주장과 반박에는 권위가 필요하지도 않고, 자연과학적 사례에 오남용에 대해서만 반박하려함.
이상욱 교수는 위에 정리된 공지를 그대로 질문하고 있다.
결국 '그게 아니라 이러이러해서 이렇게 쓴겁니다...' 라고 미리 공지해논 상황에 뒷북을 거하게 치고있는 셈이다.
이 책은 최상천 교수의 통섭 개념에 기초한 두 학문-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교류에 대해서 자신의 의견을 쓴 칼럼들도 실렸는데, 이것들이 또 재미있다.
우려에 섞인 칼럼이 있는 반면,
인문학자라면 언제 어디서나 써먹는 사골같은 떡밥. '과학의 가치중립성'을 끌고와서 과연 과학을 하는 과학자가 그럴 자격이 있는지 묻는 칼럼들도 있다.
개인적으로 과학자가 핵을 발명해서 인류에 재앙을 만들었다고 과학자와 과학에 공포를 부여하려는 인문학자들의 책을 볼때마다 웃음을 참기 힘들다.
또한 최재천에게 환원주의자 딱지를 붙이며 사회생물학의 철학을 비판하고 선구자들을 매도하는 학자도 있다.
인문학과 과학이 근본이 다른것은 알지만 이건 좀 심하지않은가. 과학이 인문학을 오만하게 설명하려는게 아니라 그저 대화하며 합의를 이뤄보자고 대화할 용의를 보였지만 너는 우리와 달라 새끼들아 라며 침을 뱉고 가버리는 것 같다.
이 책의 진미는 맨 뒤에 있다. 김지하의 칼럼이다.
만약 이것을 칼럼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디시의 모든 갤러들은 칼럼으로 먹고살 수 있을 것이다. 전혀 논리적이지도 않고, 예절바르지도 않다.
최재천을 까는것은 물론 에드워드 윌슨도 까고 학문도 깐다. 과학자의 태도도 까고 눈에 뵈는것 안뵈는것 (그동안 과학자들에게 말못할 무언가 쌓인게 많았나보다) 모두 다 깐다. 까는 것은 그렇다 치자. 전혀 논리적이지 않다.
김지하는 얼마나 빡이 돌았는지, 논리적 오류가 남발된 글을 써내려간다.
'니들 과학자들이 설명하려던거 있잖아! 그거 틀린경우 많더라? 니들이 그렇게 완벽해? 이것도 틀리고 이것도 틀리고 이 씨발럼들아. 니들 인간이 뭔지는 아냐? 이러이러한 인문학적인 개념은? 이런 철학은 알아? 모르지? 아무것도 모르는 니놈들이 감히 인문학을 재단하려고 해? 무식쟁이들아! 공부좀 해라! 쯧쯧쯧...'
이런 느낌이다.
인간이라면 답변하기 힘든 개념부터 사소한것까지 끌고와서 자문자답하며 상대의 무지함에 대해 조소한다. 또한 씩씩대며 화를 내기도하고 혼자 기가막혀하기도 한다. 질문한 자기는 얼마나 알까? 학문이라는게 그런것을 알아가는 것 아닌가.
이 칼럼을 읽고 이 새끼 책이든 시든 뭐든 하나도 읽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
외국 번역서를 읽으면서 늘 느끼는 것은 읽기 편하고 깔끔하고 쉽게 설명한다는 것이다. 반면 이 책에 있는 칼럼들 대부분은 (철학자들이라 그런지) 쉽게 설명하면 될 것을 더욱 난삽하게,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자기 지식을 뽐내려는 의도로 장황하게 쓰는 것 같다.
이 책을 읽기전 인생이란 무엇인가, 촘스키처럼 생각하는 법 두권을 읽었는데, 아주 논리적이고 깔끔했으며 이해하기 쉬웠다. 반면 이 책을 읽으면서 도대체 이야기하려는 바가 뭔지, 왜 그런 시대상을 끌고오는지, 지식인들이나 알만한 처음들어보는 저자의 개념을 왜 끌고오는지 알기 힘들었다.
또한 왜 문제 자체는 발로차버리고 저자와 선구자, 학문의 기본철학을 들추어내어 단순히 모욕만 써내려가는지 모르겠다.
이 책은 2014년 세종도서 교양부문이라고 딱지까지 있지만 사서 읽을만한 가치는 없다고 생각한다.
틀딲들처럼 오만하고 고집불통이다. 라는게 느낀점이다. 역시 무슨 학문이든, 그것을 배우려거든 유학을 가야하나보다.
이 책은 소칼의 '지적 사기'를 읽다가 언급된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사례가 이해가 어려워 중간에 읽기 시작했다.
지적사기에 대한 국내학자들의 책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만약 지식인들이 인터넷에서 익명으로 예절바르게 개싸움을 벌인다면 이런식으로 싸울 것이다. 그 글을 일일이 정리한게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한두가지 실망한게 아닌데, 첫번째로 책장을 덮었을 때는 이상욱 한양대학교 철학과 교수가 쓴 장에서였다.
과연 이 사람은 지적사기라는 책을 읽긴 한걸까. 인터넷 기사나, 교수들과 커피를 마시면서 공정치 못한 정보를 전해들은게 아닐까? 소칼이 책에 들어가기 전 유의점에 대해서만 물고늘어지는 것인가.
지적사기에서 소칼은 들어가며 논란의 여지에서 나올만한 여지와 의심, 질문들에 대해 분명히 이야기한다.
1. 지엽말단적 인용이 아닌, 잘못된 인용사례 오류를 바로잡고, 그 오류에 기초를 둔 전문어의 남발에 주의하며, 모호 인용이유와 결론의 본질을 알고자 함.
2. 맥락을 이해 못하는 것이 아닌, 지적 목적으로 자연과학의 개념을 끌어들인 것인지-또 그런 상황에서 그 개념을 잘 숙지하고 있었는지-, 아니면 장광한 설명을 목적으로 이해자의 기를 죽이기 위한것인지 알고자 함.
3. 은유의 목적은 정확한 개념을 연결시켜주는 개념이므로 잘못 알고있는 개념을 끌어다 씀은 잘못되었음.
4. 모호한 개념에 확실한 개념을 끌어다 유추하고자 함은 위험할 수 있음.
5. 오만한 생각으로 자잘못을 따져묻겠다는 것이 아니며, 어떠한 주장과 반박에는 권위가 필요하지도 않고, 자연과학적 사례에 오남용에 대해서만 반박하려함.
이상욱 교수는 위에 정리된 공지를 그대로 질문하고 있다.
결국 '그게 아니라 이러이러해서 이렇게 쓴겁니다...' 라고 미리 공지해논 상황에 뒷북을 거하게 치고있는 셈이다.
이 책은 최상천 교수의 통섭 개념에 기초한 두 학문-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교류에 대해서 자신의 의견을 쓴 칼럼들도 실렸는데, 이것들이 또 재미있다.
우려에 섞인 칼럼이 있는 반면,
인문학자라면 언제 어디서나 써먹는 사골같은 떡밥. '과학의 가치중립성'을 끌고와서 과연 과학을 하는 과학자가 그럴 자격이 있는지 묻는 칼럼들도 있다.
개인적으로 과학자가 핵을 발명해서 인류에 재앙을 만들었다고 과학자와 과학에 공포를 부여하려는 인문학자들의 책을 볼때마다 웃음을 참기 힘들다.
또한 최재천에게 환원주의자 딱지를 붙이며 사회생물학의 철학을 비판하고 선구자들을 매도하는 학자도 있다.
인문학과 과학이 근본이 다른것은 알지만 이건 좀 심하지않은가. 과학이 인문학을 오만하게 설명하려는게 아니라 그저 대화하며 합의를 이뤄보자고 대화할 용의를 보였지만 너는 우리와 달라 새끼들아 라며 침을 뱉고 가버리는 것 같다.
이 책의 진미는 맨 뒤에 있다. 김지하의 칼럼이다.
만약 이것을 칼럼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디시의 모든 갤러들은 칼럼으로 먹고살 수 있을 것이다. 전혀 논리적이지도 않고, 예절바르지도 않다.
최재천을 까는것은 물론 에드워드 윌슨도 까고 학문도 깐다. 과학자의 태도도 까고 눈에 뵈는것 안뵈는것 (그동안 과학자들에게 말못할 무언가 쌓인게 많았나보다) 모두 다 깐다. 까는 것은 그렇다 치자. 전혀 논리적이지 않다.
김지하는 얼마나 빡이 돌았는지, 논리적 오류가 남발된 글을 써내려간다.
'니들 과학자들이 설명하려던거 있잖아! 그거 틀린경우 많더라? 니들이 그렇게 완벽해? 이것도 틀리고 이것도 틀리고 이 씨발럼들아. 니들 인간이 뭔지는 아냐? 이러이러한 인문학적인 개념은? 이런 철학은 알아? 모르지? 아무것도 모르는 니놈들이 감히 인문학을 재단하려고 해? 무식쟁이들아! 공부좀 해라! 쯧쯧쯧...'
이런 느낌이다.
인간이라면 답변하기 힘든 개념부터 사소한것까지 끌고와서 자문자답하며 상대의 무지함에 대해 조소한다. 또한 씩씩대며 화를 내기도하고 혼자 기가막혀하기도 한다. 질문한 자기는 얼마나 알까? 학문이라는게 그런것을 알아가는 것 아닌가.
이 칼럼을 읽고 이 새끼 책이든 시든 뭐든 하나도 읽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
외국 번역서를 읽으면서 늘 느끼는 것은 읽기 편하고 깔끔하고 쉽게 설명한다는 것이다. 반면 이 책에 있는 칼럼들 대부분은 (철학자들이라 그런지) 쉽게 설명하면 될 것을 더욱 난삽하게,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자기 지식을 뽐내려는 의도로 장황하게 쓰는 것 같다.
이 책을 읽기전 인생이란 무엇인가, 촘스키처럼 생각하는 법 두권을 읽었는데, 아주 논리적이고 깔끔했으며 이해하기 쉬웠다. 반면 이 책을 읽으면서 도대체 이야기하려는 바가 뭔지, 왜 그런 시대상을 끌고오는지, 지식인들이나 알만한 처음들어보는 저자의 개념을 왜 끌고오는지 알기 힘들었다.
또한 왜 문제 자체는 발로차버리고 저자와 선구자, 학문의 기본철학을 들추어내어 단순히 모욕만 써내려가는지 모르겠다.
이 책은 2014년 세종도서 교양부문이라고 딱지까지 있지만 사서 읽을만한 가치는 없다고 생각한다.
틀딲들처럼 오만하고 고집불통이다. 라는게 느낀점이다. 역시 무슨 학문이든, 그것을 배우려거든 유학을 가야하나보다.
한마디로 이름값만 빌린 사기란 소리네 소칼 책은 재밌게 읽었는데 이건 걸러야겠군
한국의 어느 물리학 박사가 자기 블로그에 쓴 이 책의 근본적인 한계 -이 책이 한 사람의 저자에 의해서 씌여진 것이 아니고 더구나 어떤 주제에 대한 글을 새로 기고받아서 모은 것도 아니라서 그렇다. 이 책은 여러 필자들이 여러 다른 장소에 발표한 글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그래서 분량이나 가정하고 있는 독자층이 다 다르다.
이인식 저 사람 그냥 쌩양아치 사기꾼임.
에드워드 윌슨의 제자인 최재천의 제자이면서 데이빗 버스의 제자인 진화심리학자 전중환 교수가 쓴 이인식 비판
http://evopsy.egloos.com/m/3968609
ㄴ 댓글 고맙고, 과학자 일거수 일투족이 마음에 안드는 김지하의 글을 보고싶다면
http://m.pressian.com/m/m_article.html?no=57142
통섭과 그냥 클래스가 다른 책.
배운 놈들도 속은 디시놈들과 다를 바 없음. 그래서 차라리 빤쓰벗고 똥반살반 개소리 절반 속에 절반의 진리를 담은 디시가 편할 때도 있다 ㅋ
김지하 글이라는 거 들어가서 읽는데 두드러기가 나는 기분이라 반쯤 읽다 창 껐다;;; 맙소사 "그러면 한번 말해보라!" ㅋㅋㅋㅋㅋ 시발 장난하나 이거 예전에 극좌 스탈린주의자가 쓴 스탈린 옹호 팜플렛을 읽은 적 있는데 문체가 너무 흡사하네... 극과 극은 통하는 건가? 거기다 이 진한 아저씨 냄새... 계룡산 돗자리 냄새...;; 진귀한 경험이군 이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