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이나 퀴어나... 뭐 이런 소재들 자체가 많이 보이는 것도 사실이고
소수자 담론이 엄청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와 별개로 작가들보다는 오히려 평단의 진부화? 전형화?
그런 게 미치는 영향이 더 큰 거 같다는 생각이 듦.
내가 좋은 평론이 좋은 작품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기도 하고....
예를 들어 이건 202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침착하게 사랑하기'인데
몸에 든 멍을 신앙으로 설명하기 위해 신은 내 손을 잡고 강변을 걸었다 내가 물비린내를 싫어하는 줄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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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함께 내려올 천사에 대해, 천사가 지을 미소에 대해 신이 너무 상세히 설명해주었으므로 나는 그것을 이미 본 것 같았다
반대편에서 연인들이 손을 잡고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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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저렇게 사랑하세요? 내가 묻자
신은, 자신은 모든 만물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저만 사랑하는 거 아니시잖아요 아닌데 왜 이러세요 내가 소리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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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분들 싸우나봐, 지나쳤던 연인들이 소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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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침착하게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는 신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고 강을 보고 걷는다
강에 어둠이 내려앉는 것을, 강이 무거운 천처럼 바뀌는 것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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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두르고 맞으면 아프지만 멍들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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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목소리가 멎었다 원래 없었던 것처럼
연인들의 걸음이 멀어지자 그는 손을 빼내어 나를 세게 때린다
- 차도하
평단의 평을 읽어보면 전적으로 젠더 비평의 관점에서 이 시를 읽고 있음
그런데 사실 내가보기엔 이 시는 젠더 문제에 관한 시로 읽힐 수도 있지만(텍스트 해석의 복수성을 떠나 시인 자체도 그런 의도가 없었다곤 못할 거 같음)
좀 더 고전적인 주제, 그러니까 욥기에서부터 이어지는 '신이 가하는 폭력으로서의 인생'이라는 테마가 드러나거든
그걸 뭐 '가부장제적인 무의식에서 신의 자리를 대체하는 남성~' 식으로 썰 풀 수야 있지만
내 생각에 이런 작품을 읽으면서 신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 사이에 놓인 차이, 고전적으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카리타스' 개념의 불가해성, 신적인 폭력으로서의 삶... 등등의 테마를 다루지 않는다는 건 좀 성급한 읽기가 아닌가 싶거든.
황정은의 젊작상 대상 수상작인 상류엔 맹금류도
도덕적 딜레마라는 문제가 꽤 명확히 드러나는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평단에서는 대부분 그러한 딜레마를 가부장제와 한국식 가족주의의 문제로 읽더라고(당연하지만 그런 주제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님)
뭐 그 외에도 조금이라도 근대 비판적인 글이면 무조건 신자유주의 합리성 비판으로 읽는다거나
주체의 문제를 다루는 글이면 일단 라캉의 도식을 끼워넣고 본다거나 하는 식으로
도식화되고 전형화되면서 평론 자체가 진부해진 감이 분명히 있음...
아마 이걸 나만 느끼는 건 아닐 거 같은데
충분히 해석의 복수성이 열려 있는 작품들에
지나치게 좁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건 오히려 평단이 아닐까 싶다
그냥 평론가들이 자기들 읽고 싶은데로 해석하는듯 - dc App
이게 맞다
감상하고 비평하는게 아니라 비평에 목 맨채로 끌려다니니까
근데 이건 퀴어 시는 맞는듯
글킨해
퀴어 시라기보단 페미니즘적으로 읽힐 의도가 들어간 시?
"저만 사랑하는 거 아니시잖아요 아닌데 왜 이러세요" 이 구절 보니까 저절로 좆같아서 몸서리쳐지는데 또 데이트 폭력 단편 생각나네
어쨌든 극혐
나는 '신은 의로운 자에게나 의롭지 못한 자에게나 모두 비를 내린다'는 구절부터 떠오르는데 걍 내가 개독이라 그런 걸수도 ㅎ;
욥기스럽게 읽을 순 있겠는데 솔직히 욥기의 핵심은 결국 '선한 자도 끔찍한 삶을 살 수 있다' 정도라고 생각해서 큰 감흥은 없다......
욥기의 핵심은 그렇게 신이 온갖 방법을 다 써서 욥을 괴롭히는 게 신 입장에선 사랑이란 게 아닐까.... 곰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