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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지랄맞게 읽기 힘든 소설이었다. 읽다가 몇 번을 중도포기 하다 읽었는 지 모르겠네
카프카에 대한 개인적인 애정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때려쳤을 성싶다.
성은 총 25장으로 구성돼 있는 데 각 장마다의 파트가 개인적으로 단편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장 마다의 연결이 자연스럽게 이뤄졌다기 보다는 그 장에서 다루는 하나의 이야기들이 다른 장들과 따로 따로 움직이고 있어서
등장인물에 대한 어느 정도의 배경만 알고 있다면 어떤 장을 펼쳐 읽더라도 카프카 이 사람이 보여주려는 것을 이해하기는 무리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음.
그 놈의 장광설은 해도해도 너무하다. 한 페이지마다 숨을 돌릴 '여유'가 전혀 없다.
또한 카프카 특인 한 마디로 끝낼 만한 것을 두 세줄의 문장으로 질질 끌어 정신을 조금이라도 놓고 있다 글자의 강물에서 헤엄치다 익사하기 딱 좋다.
아무튼 이렇게 읽기 고역인 책에서 그렇다면 뭘 읽어낼 수 있을까? 단순히 고전이라는 이유만으로 읽으면 바로 집어던질 확률이 높다.
내 온 존재가 K인 마냥, K의 퇴폐미 넘치는 창녀 여자친구인 마냥 물아일체가 돼야 한다.
(사실 난 이 책이, 굉장히 음란하다고 느꼈음. 소설의 첫부터 끝까지 그 관능적이고 퇴폐적인 음란함의 기운이 가득하다. 이건 사창가를 들락거렸던 카프카의 평소 성적 가치관이 개입된 것이었을까.. 모르겠다.)
K의 모든 행동들은 겉으로는 '성'에 들어가는 것이다. 작중 대표적인 관료인 '클람'을 만나려는 것도 성에 들어가기 위해서다.
근데, 읽다보면 성에 들어가는 것이 정말 중요한 문제인가?는 의문이 들었다.
K는 계속해서 초대된 성이 있는 마을에 머무르는 이유로 다음과 같이 든다.
"집을 떠나기 위해 치른 희생, 장기간의 힘든 여정, 이곳에 채용되어 가졌던 희망들,재산이 한 푼도 없게 된 것, 이제 다시 고향에 되돌아가 버젓한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건 나에게 이 마을 출신인 신부(여자친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현대인들이 겪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갇힐 수밖에 없고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자에겐 모든지 가능해 보이죠."라고 스스로 말하는 것처럼 기존에 있던 마을-성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제가 재미있다고 한 것은 하찮게 꼬인 일이 한 인간의 존재를 결정짓게 된다는 사실을 통찰했기 때문이죠."라는 것처럼 그 자신의 환경이 여러가지 문제점으로 인해 진짜 꼬이기 시작하는데 무리한 접촉 시도로 인해 타인과의 관계가 끊어져 버리고 역설적으로 자유를 얻게 된다.
그러나,"이러한 자유-기다림-신성불가침이야 말로 가장 부질없고 절망적인 일이라 생각되기도 했다"는 생각처럼 그의 큰 목표였던 성으로 들어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성에 들어간들 무엇이 달라지는건가?
내 생각은 K가 성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냐는 문제는 소설의 전반부에서 그냥 끝난다 생각한다. K는 성에 들어가는 게 중요하는 게 아니라
그 마을에서 그냥 살아가는 게 중요한거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자신의 모든 희망을 걸고 온 도시,집을 떠나기 위해 치른 재산 등을 생각하면
성에 들어갈 수 있냐 없냐는 차치하고서 고단한 일상적 삶을 견뎌야 되기 시작했다.
즉, 그런 마을에서 자살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살아가는 것이란 말이다. (카뮈는 카프카에게서 희망을 발견했고 매일의 삶이 무거운 바윗돌을 저 산꼭대기로 올려야 하는 부조리의 철학을 논했는데.. 아 이런건가 싶긴 한데 난 카프카의 문학작품에서 희망을 찾지는 못하겠다.)
그래서 소설의 초중반부까지인 K의 일상에서 더이상 성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K와 접촉하게 되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그 사람들이 바로 K의 현재와 미래를 설명해 주고, 그 사람들을 통해 현대인들의 본질을 카프카가 잘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17,18,19,20장을 주목한다.
난 이 17~20장이 이 소설에서의 하이라이트로 굉장히 감동적이었다.
창녀로 전락한 딸들..
잃어버린 직장과 가정생활을 되찾기 위해 탄원을 위해 매일 같이 비바람 속에서도 고독히 견디는 아버지와 어머니
간단하게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바르나바스랑 심부름꾼이 있다. (그는 클람과 K를 연결하는 심부름꾼으로 K에게는 성으로 들어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근데 바르나바스가 심부름꾼이 되게 된 썰이 야릇하다.
바르나바스의 아버지는 유능한 소방꾼이다.
그런데 그의 딸1의 외모가 예쁘다.
한 관료가 그 딸1의 외모를 보고 스폰서를 요구한다. 딸1은 그것을 바로 거절한다.
아버지는 직장에서 짤렸다.
온 가족이 먹고살 길이 없어졌다.
딸2가 백방으로 노력해도 허사였고, 결국 몸을 팔게 되면서 어찌어찌 자기 집의 막내 남동생인 바르나바스를 성에 취직시킨다.
근데 그 바르나바스도 2년 동안 출근하면서 책상 앞에 앉아있기만 하고 아무런 일감을 얻지 못해서 우울해 한다.
그렇게 2년간 존버하고 얻은 일이 K의 심부름꾼 일!
"아버지는 매일 아침 제일 좋은 옷을 차려입고.. 잘 다녀오라는 우리의 인사를 받으며 집을 나서지요,. 날이면 날마다 (탄원을 위해) 그곳에 앉아 있어요.
비가 오는 음산한 가을날이었지만, 아버지에겐 날씨 같은 건 전혀 상관이 없었지요. 저녁이면 흠뻑 젖은 모습으로 돌아와서.. 얼마 후 아버지는 거기에서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한 모양이었어요. 아버지는 거기에 가서 하루를 보내는 것을 자신의 의무나 고독한 소명이라고 밖에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때부터 아버지는 신경통을 앓았고 .. 어머니는 아버지 팔에 매달리며 못가게 말렸으나, 아버지는 어머니와 같이 가게 됐죠. 그 바람에 어머니마저 병이 들고 말았어요."
그리고 소년 시절의 웃음이 사그라 든 불쌍한 막내 바르나바스
"특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소년 시절에는 우리 모두를 좌절하게 할 만큼 용기가 대단했던 동생이 어른이 된 지금은 왜 그것을 완전히 잃어버렸느냐 하는 거예요.
날이면 날마다 하릴없이 우두커니 서서 기다리다 보면 변화에 대한 아무런 저항도 없이 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다 보면
진이 다 빠지고, 회의적이 되어 급기야는 자포자기한 상태로 우두커니 서 있는 것 말고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될 거예요. 그러면 왜 그 애는 진작 저항이라도 해보지 않았을까요?"
그 뒤에는 '페피'라는 말단 하녀 이야기도 나오는데 뭐 똑같다. 나는 카프카가 자신이 직장에서 일을 하면서 가난한 소시민들을 보고 느꼈던 일화들을
소설의 후반부터 한명씩 배치하여 그걸 독자들에게 K의 현재 상황을 명확히 보여주기 위해 소개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K가 소시민이 아니라, 성의 관료처럼 권세가 있다면 저런 '하찮은' 사람들과 내밀하게 소통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렇다면 K는 어떻게 될까?
"아무튼 언젠가는 봄이 오고 여름도 오니, 때가 되면 계절도 찾아오게 마련이지요. 그러나 지금 내 기억으로는 봄과 여름이 어찌나 짧은지 한 이틀밖에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이틀 동안 조차도 아무리 날이 좋더라도 가끔 눈이 내려요."
소설의 첫 문장으로 돌아와보자.
"K는 밤늦은 시각에 도착했다. 마을은 깊이 눈 속에 파묻혀 있었다."
K의 마을을 어둡고 을씨년스럽게 만드는 눈은 계속해서 내린다. 멈추지 않는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다.
이걸 카프카가 말하려는 것이었을까?
난 모른다. 나중에 재독해 봐야 겠다.
아무튼 좆같은 책이었다.
카프카는 언제나 개추야
제목에 스포있음 ㄱㄱ
수정했으
개인적으로 바르나바스 가정의 이야기가 소송에서 K의 모습과 겹친다 생각함. 소송도 ㄱㄱ
소송은 예전에 읽었는데 성에 에너지 넘 써서 당분간 책 안 읽을듯 ㅋㅋ
재독해보면 바르나바스가 K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는 장면이 너무 고통스러움 아! 이게 인간의 운명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