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아>

무아란, 모든 것은 고정되지 않고 변하기에 나라고 할 실체가 없다. 그러니까 에고(자아)는 사실 본래 내가 아니다란 개념임.

*여기서부터 불자들끼리도 갈리는 부분임.

첫번째ㅡ 무아 자체를 참나 또는 진아라고 하는 어떠한 우주적 본질이라고 보는 개념. (그러니까 깨달음에 이르면 에고에서 벗어나 진정한 나를 발견한다는 것인데 이 진정한 나가 바로 참나임.)

두번째ㅡ 참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개념. 참나 역시 하나의 상이고 에고의 작용으로 보는 개념임.

무아에 관해선 크게 이 두 개념이 존재함.


첫번째의 오류는 이거임.

무아의 전제가 "세상 모든 것은 가변적이며 고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임.

그런데 무아가 어떤 우주적 본질인 참나라고 한다면 자가당착에 빠져버림.

논리적 모순에 빠지게 되는데 이에 대한 답은 결국 형이상학으로 빠져버린다는 것임. (수행을 해서 느껴야 한다 등등)

+ 윤회에 대한 증명 여부 등

그렇다면 과학적 종교라는 명성은 결국 기독교적 믿음을 담보하게 함.



두번째의 오류는 이거임.

참나 역시 없다. 그것 조차 공하다. 그러니까 완전한 무아, 공하다는 것조차 공한 경지임. 하지만 이 경우에는 불교가 자랑하는 윤회에 대한 답을 못내림.

불교에서 윤회는 뗄래야 뗄 수가 없음. 경전은 물론이고 사후 윤회가 없으면 불교가 자랑하는 사성제의 당위성이 무너져 내림.

왜냐하면 사성제의 기본 명제가 삶의 고통을 멸하는 방법임.

윤회가 단순히 현세의 인과법칙일 뿐이라면

'자살'이라는 것에 대한 극약 처방에 답을 내릴 수 없음.

그리고 잘먹고 잘사는 사람들에게 해당이 없어지게 됨.

견뎌내기 충분한 고통들에 대해 무용지물임.

그런데 이 두 번째 무아는 윤회와 명백히 모순임.

무아 그 자체라면 윤회 할 실체가 없어지게 되는 것임.


불교는 이 무아와 윤회에 관해서 아직도 확실한 답을 내리지 못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