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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 교체에 따른 문장 간단 비교
알라딘에서 제공하는 미리보와 본인이 가지고 있는 구판 비교
어느게 낫냐는 의미 없지 않나 싶고
구판이된 김연경 번역은 민음사 세계문학으로 나온다 함
백치 도 곧 재번역본이 나올거라 하고 내년 2021년 도선생 200주년이라니 뭔가 이벤트가 예상 되니 기다려보는게 나을지도
원서 비교가 아니라면 무의미 하다는 의견 동감 함
라이트 독자입장에선 이런 단순 번역 비교도 재미 있다고 봄

도스토예프스키 열린책들 <<악령>> 번역자 교체에 따른 번역문장 간단 비교
구판 : 김연경 2009. 12 원본 1872
신판 : 박혜경 2020. 1 원본 1873

특이점 : 루가의 복음서 인용부분
        구판 8장 32~36절
        신판 8장 32~37절

추가된 37절 : 게르게사 근방에서 나온 사람들은 모두 몹시 겁을 집어먹고 예수께 떠나가 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배를 타고 떠나가셨다.

구판은 "마귀(악령)"으로 병기했으나 신판은 "악령" 단독 표기


신판 첫문장

지금까지 어떤 특별한 일도 없던 우리 도시에서 최근에 발생한 매우 이상한 사건들을 서술함에 있어서, 나는 나의 능력 부족 탓에 이야기를 약간 돌려, 다름 아닌 재능 있고 널리 존경받는 스쩨빤 뜨로피모비치 베르호벤스끼의 몇 가지 신변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해야겠다.

구판 첫문장

지금까지 그 무엇으로도 유별날 것 없는 우리 도시에서 최근에 일어난 아주 이상한 사건을 기술함에 있어서, 나는 나 자신의 무능력 탓에 약간 멀리서부터, 다름아니라 두루 존경받고 있으며 재능 있는 스쩨빤 뜨로피모비치 베르호벤스끼에 대한 몇 가지 전기적인 세부 사항에서부터 시작해야겠다.

신 P. 20
연구 업적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남은 20년 이상의 삶을 저 국민 시인의 표현대로 조국 앞에 〈질책의 화신〉으로 자리 잡고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질책의 화신으로
……………………
그대는 조국 앞에 섰노라
자유주의자 - 이상주의자여

그러나 국민 시인이 표현했던 그 인물은 비록 지루하더라도 자기가 원하기만 한다면 평생 동안 그러한 자세를 취할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사실 우리의 스쩨빤 뜨로피모비치는 이런 인물들과 비교했을 때 한낱 모방자에 불과했기에 그런 자세를 취하다 지치면 자주 옆으로 드러누워 버리곤 했다. 그러나 옆으로 드러누운 채로도 질책의 화신으로서의 태도는 견지했으니 그 점만은 정당하게 인정해 주어야 하며, 게다가 우리 현에서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구 23p
결과적으로 연구는 없었지만, 대신에 20년이 넘는 여생 동안에, 말하자면 민중 시인의 표현을 빌어, <질책의 화신>으로서 조국 앞에 서 있을 수는 있었다.

질책의 화신으로서
.........................................
너는 조국 앞에 섰구나,
자유주의자 – 이상주의자여.

그러나 민족 시인이 표현한 이 인물은 아마도 평생토록 이런 의미의 태도를 취할 자격을 지녔던 모양인데, 설사 그것이 지겹다 할지라도 그것을 원했다면 말이다. 우리의 스쩨빤 뜨로피모비치는 사실상 이런 인물들과 비교하자면 그저 흉내를 낸 사람에 지나지 않아서, 그러니까 좀 서 있다가 지치면 종종 옆으로 비스듬히 드러눕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비스듬히 누워 있는 자세로도 질책의 화신으로서의 성격은 보존되었으니, 이 점은 정당하게 평가해 주어야 하고, 더욱이 이런 시골 마을 지방에서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았던가.

신 P. 180~182
「그건 비열한 겁니다. 전부 기만입니다!」 그의 눈이 번뜩이기 시작했다. 「삶은 고통입니다, 삶은 공포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모든 것이 고통과 공포입니다. 지금 인간은 삶을 사랑합니다. 왜냐하면 고통과 공포를 사랑하기 때문이지요. 그런 식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삶은 현재 고통과 공포를 대가로 주어진 것이며, 이것이 바로 기만이라는 겁니다. 현재의 인간은 아직 진정한 인간이 아닙니다. 행복하고 당당한 새로운 인간이 나타날 것입니다. 살아 있건, 살아 있지 않건 상관없는 인간, 그들이 새로운 인간이 될 것입니다. 고통과 공포를 이겨 내는 인간, 그가 스스로 신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 신은 존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구 182p
「그건 비열합니다, 바로 거기에 모든 기만이 있는 겁니다!」 그의 눈이 번득였다. 「삶은 고통이고 삶은 공포며 인간은 불행합니다. 지금은 모든 것이 고통이고 공포입니다. 지금 인간은 고통과 공포를 사랑하기 때문에 삶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왔지요. 지금 삶은 고통과 공포의 대가로 주어진 것이며, 바로 여기에 모든 기만이 있는 겁니다. 지금 인간은 아직 그 인간이 아닙니다. 행복하고 오만한 새로운 인간이 나타날 겁니다. 고통과 공포를 극복하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이 신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그 신은 존재하지 않게 되는 거죠.」


P. 321~322
니꼴라이 프세볼로도비치는 기질상 공포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결투에서는 상대의 총구 앞에 냉정하게 서 있을 수도 있었고, 야수처럼 침착하게 상대를 겨누어 죽일 수도 있었다. 누군가에게 뺨을 맞으면 그는 결투를 신청할 것도 없이 그 자리에서 바로 자신을 모욕한 사람을 죽였을 것이다. 그는 바로 그런 인간이었으므로, 제정신을 잃는 법 없이 완전한 의식을 가지고 죽였을 것이다.

구 317p
나는 니꼴라이 프세볼로도비치가 공포라고는 전혀 모르는 그런 기질을 가진 사람이라는 점을 독자에게 다시금 상기시키고자 한다. 그는 결투를 하더라도 적수의 일발 앞에서 냉담하게 서 있을 수도 있으며, 그 자신이 정말 짐승 같을 정도로 평온하게 표적을 겨냥해서 죽여 버릴 수도 있었다. 만약 누군가가 그의 뺨을 때렸다면, 내 생각으로, 그는 결투를 신청하는 게 아니라 당장 그 자리에 모욕한 자를 죽였을 것이다. 그야말로 조금도 정신을 잃지 않은 채, 완전히 의식을 가진 상태에서 살인을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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