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확실히 밝히고 가자면, 나도 글 읽는 건 좋아함. 다만 내게 있어서 글이라는 것의 존재이유는 읽고 해석하고 거기서 내게 유용한 정보를 추려내야 하는 것들임.
만약 내가 책을 읽는다면, 읽기 전에 내가 왜 그 책을 읽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답, 즉 독서의 목표가 있어야 하며,
그 목표를 이해하기 위해서 책을 차근차근 들여다 보며 그 전개를 무작정 따라가기 보단, 각 장의 핵심이 되는 내용들을 추려내어 핵심 정보들을 정리하고,
그걸 위주로 공부하며 나머지 심화 논의를 흡수한 뒤, 그 뒤에 그것이 존재하게 된 배경과 글쓴이에 대한 개인적 탐구까지 이루는, 말 그대로 속독과 빠르고 효율적이며 정확한 이해를 추구함.
그런데 당연하게도 소설 읽기에는 이런 방법이 잘 안 먹히더라고... 나는 소설 속 주인공들을 보면 그 주인공에 이입하기 보단, "내가 왜 널 이해해야 하지?" 하는 질문부터 던지거든. 항상...
그래서인지 나는 시구가 더 좋더라. 시구도 강렬하고 웅변적이며, 호소하거나 고함치는 듯한 것들. 좀 다른 예시지만 니체의 전집이나 맑스의 공산당 선언 같은 거 읽으면 피가 끓어오르고 그러잖아? 심지어 군가 같은 것도 좋아함. 그런 것에는 마음이 움직여. 보통 시는 소설에 비해서 간결하고, 폭발적이고, 함축적이니까.
그런데 소설은... 내겐 템포가 너무 길어. 소설은 서사가 있는데, 그 서사를 이해하려고 할 때 마다 내 저런 태도가 몰입을 방해한다. 인물들에 대한 설명, 서사를 위해서 지어져야 하는 전개, 그리고 몰입하기 위한 나의 노력 등등... 이런 소설의 요소들이 내게는 '비효율적'으로 느껴지는 거지.
2시간의 이미지 나열은 즐겁지만, 2시간의 텍스트 나열은 내게 공격성을 심어준다고.
아 물론 이게 포함 안 되는 야설 같은 거 읽는 건 엄청 좋아함ㅋㅋㅋ 야설이야 나야 주인공이나 둘 다 꼴려있으니 이입하기 쉽고, 처음부터 장르나 태그에 따라 고르니 성격을 이해하기도 쉬우며, 박기 위해선 뭐든지 한다는 감정선까지 일치하니 야설 읽는 건 즐겁고 재밌음. 그리고 전개도 전부 박는 걸 향해 나가니까 작품의 목표도 직관적이고 명확해서...
암튼 내 주변인들에게도 많은 조언을 듣긴 했지만, 독붕이들의 의견도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임. ㅎ 좋은 답변 기다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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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보르헤스는 내 지인에게서 추천받은 사람이기도 했어. 그리고 좋은 조언 고마워. 그 느낌 뭔지 잘 알 것 같아. 나도 고전들 읽다가 내가 했던 막연한 생각들이 정리되는 게 좋거든.
대충 넘기면서 읽으면 이미지처럼 떠오름 - dc App
딴얘긴데 시는 그럼 마야코프스키 좋아할 것 같네. 나도 소설은... 점점 안 읽혀. 요즘 내가 소설을 읽는다면 그 이유는 특정 시대의 사회상을 좀더 생생하게 이야기체로 읽고 싶을 때? 역사의 보완물로써. 이전에는 소설 속 인물 자체의 개성, 정신세계 이런 거에 끌려서 읽었던 것 같네.
서사나 배경같은 추상성만 보지 말고 문장 자체가 그려내는 이미지를 생각하며 읽으셈. 그런 이미지들이 어떤 모습을 취하고 있는지, 만일 문장이 알려준 정보만을 바탕으로 한다면 어떤 풍경이 펼쳐지는지 등등
분석은 당연 지루하지 일단 작가의 감정을 따라가면서 1회독하셈 이후에 분석해도 늦지 않음
가끔은 글을 잘 쓰는 재능이 문학성보다 언어의 물질성에 들리는 능력일 때가 있다. <죄와 벌>을 읽고 인본주의를 도출해 내는 아이는 사회학자나 철학자가 되며 작가가 되려 하지 않지만, 플로베르의 풍텐블로 숲의 묘사에 매료되는 아이는 작가가 되거나 작가가 되려 한다. - 황석영 모든 덧글들이 제 관점을 대변하고 있군요. 학문 전공자보다는 독서가들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