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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맞는 글이 따로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준 책이다. 이 책은 내게 맞지 않는다. 커트 보니것이 이 책이 묻히지 않고 많은 이들에게 알려질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고 들었는데, 확실히 보니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할 법한 블랙유머와 풍자가 가득하다. 일례로, 보니것의 유명작 <제5도살장>에서 새 울음소리("푸티윗!")로 끝나는 글을 써보고 싶었다고 하며 실제로 그렇게 끝나는 것처럼, <미국의> 역시 영문을 알 수 없는 '마요네즈'로 끝나는 글을 쓰고 싶었다는 말과 함께, 마지막 장을 마요네즈에 대한 편지로 끝낸다. 하지만 나는 보니것을 그리 좋아하진 않는다.



주제 역시 취향은 아니다. 나는 자연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하천을 잘라서 파는 비유를 보면서도 그 기발함에 감탄했을 뿐이지, 주장하는 바에는 별 감흥이 없었다. 그래, 우리는 파운드 단위로 모든 걸 잘라 팔고, 온 캠프장에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건가? 19세기의 시인들이 찬탄하던 미국의 자연환경이고, 소로가 월든에서 이야기하는 소박한 자연주의 삶이고, 정말로, 말도 안 되는 헛소리는 그만둬라. 우리는 좀 더 많은 자연적인 것들을 인공적인 것으로 대체해나가야 한다. 자연은 언제나 우리에게 친절하지 않았으니까.



다만 이 책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으리라 생각되는 글들이 생각나던 건 흥미로웠다. 개중 하나는 전에 읽었던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로, 모호한 단어를 글의 중심에 갖다두고 다양한 의미들을 연결시키는 방식이 아마 여기서 따온 게 아닐까 싶다. 그 이상의 감상은 없다. 부디 버로스의 <정키>는 좀 더 흥미롭게 읽히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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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길게 쓴 감상이지만, 사실 하는 말은 크게 달라진 게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