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1세의 통치에서부터 제임스 1세까지의 문화 부흥을 일명 영국 르네상스라 부르며 널리 연구되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이 시기 산문이나 시, 비평 등이 본격적으로 영문학에서 발달하기 시작했지만, 무엇보다도 두드러진 점은 '연극'의 발전이었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슈퍼스타는 역시 영문학을 넘어, 서양 문학의 영원한 아이콘 윌리엄 셰익스피어다.
하지만 사람들이란 여간 간사한 동물이 아닐 수가 없다.
자신보다 잘난 인간을 시기하는게 사람의 본성인 탓인지, 셰익스피어는 오늘날까지도 학자들은 무시하는 가짜 작가설에 시달리곤 한다.
하지만 이는 그냥 셰익스피어가 잘.나.가.니.까 나온 개소리들에 불과하므로 무시해도 좋다.
사실 셰익스피어가 아니라 XXX이 썼다! 란 주장들은 대개, 자기 가문 사람을 주장하거나, 자기 머리론 이해 안 되니까 아무튼 아님! 이라고 주장하는 게 대다수니까.
당장 셰익스피어-다른 작가설이 주장하는 내용들을 살펴보면, 셰익스피어 뿐만 아니라, 이 시기 거의 모든 영국 극작가들에게 다 해당된다.
아니,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많은 작품을 남겨요? - 응, 셰익스피어보다 더 많이 쓴 극작가들도 많고, 애당초 그때는 협업 많이 했어~
아니, 셰익스피어의 삶 자체가 너무 불완전하잖아, 알려진 게 없는데, 사실 없는 사람 아님? - 응, 언제 태어났거나 죽었는지도 기록 안 된 극작가들이 더 많아, 셰익스피어라서 그나마 자료가 많은 거야~
아니, 셰익스피어 생전에 제대로 출판도 안 했던데, 다른 작가 아님? - 응, 그때 공연만 되고, 출판은 커녕 대본도 안 남아서, 제목만 알려진 작품들도 많고, 작가가 누구인지 안 알려진 작품도 많아~ 셰익스피어라서 사후에 전집이라도 출간된 거야~
애당초 셰익스피어 그거 초졸 학1력 딸리는 놈 아님? 그런 놈이 어떻게 걸작들을 쓰냐, 다른 지식인이 분명하다! - 응, 그때 극작가들 중에 대학 나온 놈 거의 없고, 셰익스피어도 나름 배운 편이였어~ 네가 못 쓰는 거지, 셰익스피어가 못 쓰는 게 아니야~
물론 당시 지식인이나 귀족 누군가가 셰익스피어란 대역을 내세워서 작품활동을 했다는 음모론의 상당히 그럴싸한 점은 하나 있다.
귀족 나으리가 굳이 대역을 내세워서 당시 연극을 무대에 올렸다는게 그럴싸하게 느껴질 정도로, 당시에 극작가로서 살아가는 것은 극한직업 그 자체였으니까.
영국 르네상스 자체는 서민에서부터 왕까지, 극장에 모여서 다 함께 공연을 즐기는 모두의 축제였다.
소설이 중산층이 탄생하고 나서야 발달하는 것과 달리, 연극은 애당초 서민들도 널리 즐길 수 있는 전유물이었으니까.
당시 런던 기준 싼 표값의 경우 보통 1펜스를 받았는데, 그 당시 물가 기준으로도 빵 한 덩어리 값이었다.
비싼 경우 몇 배를 더 받기도 하였지만, 어찌되었든 잠깐의 문화생활을 즐기기 위해서 못 낼 돈은 아니었다.
물론 런던에 사는 평민들이 정말로 서민이냐, 정말 가난한 서민들은 못 보지 않냐,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보세요, 애당초 문화는 배 안 고픈 사람들이 즐기며 발달해요.
정말 배고프고 가난한 사람들은 그 시간에 일해야해요.
그리고 극장 자체가 런던 중심이긴 했지만, 순회 공연도 많아서 어쨌든 많은 이들이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수많은 극장과 극단들에 희곡을 공급해야하는 극작가들은 행복하지 못했다.
툭하면 빚에 시달렸기 때문에 감옥에 갇히는 경우는 빈번했다.
왜냐면 애당초 벌이 자체가 박봉에 가까웠다.
자기 소유의 극단이 없으면 말 그대로 극본만 써주는 기계가 되어선, 극본을 넘겨주고 약간의 돈을 받는 것에 불과했다.
그 후에 이 대본 자체는 극단 소유가 되었고, 극작가는 거기에 어떠한 영향력도, 심지어 출판도 할 수 없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자연스럽게, 먹고 살기 위하여 박봉인 대본 쓰기를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개 해야했기에 다작이 많을 수밖에 없었고,
자연스럽게 빨리 대본을 건네주고 돈을 받기 위하여 서로서로 협업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간혹 라이벌 극단과 얽히면 뚜까맞으므로, 이것도 서로서로 사람 봐가면서 해야했지만.
셰익스피어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장, 셰익스피어의 작품들 상당수는 협업이거나, 셰익스피어 사후 다른 극작가가 무대에 올리면서 다른 대사를 삽입한 것이 오늘날 판본에 전해지면서 협업 없는 협업이 된 경우도 있다. (대표적 예: 맥베스)
간혹 운 좋게도 귀족이나 부유한 후원자를 만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때에도 줄타기가 무척이나 중요했다.
후원자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들지 않으면, 귀족이 언리미티드 빠워로 감옥에 가거나, 혹은 후원자가 정치 싸움에서 나가리 될 경우, 같이 나가리되기도 하였다.
거기에, 당연히 이 시기엔 검열이나 허가 제도가 존재했고,
혹시라도 조금이라도 불순해보이는 사상이 연극에서 발견될 경우, 극작가들은 물을 통하여 답을 저절로 배우게 되었다.
또한 돈 때문에 허가 없이 무대에 연극을 올렸다가, 역시 정부의 무서운 매질과 감금을 당하는 이들도 부지기수였다.
"캬, 성공적인 은퇴 후 고향에서 악덕 지주로 성공하게 된 와따시 초럭키~!"
그런 점에서 이 시기에도 슈퍼스타였던 셰익스피어는 은퇴 후, 고향으로 내려가 악덕지주가 되어 사람들을 고리대금으로 괴롭히며 평온한 시골라이프를 살았다는 점에서 성공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극장에서 술을 파는 경우가 많은데, 이 시기야 당연히 말할 것도 없다.
극장 안 뿐만 아니라, 주변에도 주점은 바글바글했다.
그리고 이 주점엔 무대를 마친 극단원들이나 극작가들이 술을 마시며 취하는 경우가 빈번했고, 패싸움은 더더욱 빈번했다.
술 마시면 누구나 개가 되겠지만, 이때는 16세기란 점을 명심하자.
오늘날에야 개가 되도, 얌전할지 모르지만, 이 시기 술 취한 개들은 갑자기 품 속에 숨겨둔 단검을 꺼내들고 달려들었다.
셰익스피어 다음가는 영국 희극의 2인자 벤 존슨의 경우, 주점에서 시비가 붙어서, 결투 끝에 상대 배우를 죽인 혐의로 투옥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벤 존슨의 경우는 그나마 운이 좋을지도 모른다.
셰익스피어가 성공하기 전에 영국 극장의 1인자였던 크리스토퍼 말로우의 경우, 높으신 분 밑에서 일하며 스파이로 활동을 하기도 했는데,
술집에서 동료 스파이와 술 취한 채 결투했다가 1593년, 29살의 나이로 그대로 죽었다.
<파우스투스 박사>나 <탬벌레인 대왕> 등을 남긴 천재 극작가의 허망한 최후였다.
"히에로니모는 다시 미쳤다"
이 1593년에 일어난 말로우의 암살 사건은 오늘날까지도 여러 음모론과 연구 대상이 되기도 하는데,
말로우의 암살 직후, 뜬금없이 말로우의 체포 명령이 떨어져서 그렇다.
거기에 덩달아, 말로우와 연줄이 있던, 극작가 토마스 키드까지 잡혀가면서 오늘날까지도 많은 연구자들의 연구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토마스 키드는 <스페인 비극> 등의 셰익스피어에게까지 큰 영향을 주는 잔혹극을 쓴 당시 대가 중 하나였는데,
신성모독이나 기타 이교도 혐의로, 말로우와 엮어서 붙잡히고, 고문받아 풀려난 직후 고문 후유증으로 1594년에 죽는다.
아무튼 이런 극한직업 극작가들이 갈아넣어지면서, 제임스 1세까지 영국 르네상스 극장은 붐을 맞이한다.
"쟌넨~"
그러나 이전부터 청교도들은 문란한 극장과 연극의 폐지를 주장해왔고, 끝내 1642년 런던 극장 폐쇄령으로 사실상 막을 내린다.
거기에, 몇 년 후 찰스 1세가 처형당하고 청교도 MAX 올리버 크롬웰이 집권하면서 더더욱 탄압되며 끝장났다.
"서민과 같이 볼 수 없다."
물론 찰스 2세가 집권하자, 이러한 폐쇄령 자체는 다시 풀리고 극장 문은 열리지만,
영국 르네상스 붐은 이미 끝난 상황이었다.
거기에 더하여, 당시 높으신 귀족들은 서민들과 함께 보는 대형극장을 혐오하면서, 일명 소수의 귀족들이 좁은 공간에서 관람하는 '실내극'이 발달하기 시작하며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다.
"어딜 보시는 겁니까, 그건 제 잔상입니다."
그리고 시대가 흐를 수록, 셰익스피어 같은 슈퍼스타를 제외하고선, 많은 영국 르네상스 작가들이 잊혀졌다.
토마스 키드의 경우는 18세기 말에 와서야 그런 사람도 있었구나! 하면서 존재가 밝혀졌고, 19세기 말이 되어서야 조금씩 연구될 정도로.
그러나 T.S. 엘리엇 같은 영국 르네상스 드라마 빠돌이 모더니스트들 덕분에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이 복권되었고
영미 모더니즘에도 영향을 끼치고, 부조리극 형성에도 영향을 끼치고, 또 영문과 학생들을 괴롭힌다.
모더니스트의 기묘한 모험
- 20세기 최고 시인 예이츠의 환상록과 자서전 읽으쉴?
- <율리시스>는 어떻게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책이 되었는가?
- 위대한 피츠제럴드 (1), (2)
- 토끼공듀의 삶
- 만델스탐의 노래
- 악어들의 거리
- 독일인이 오리라
-머피를 기다리며 (1) 잃어버린 아버지를 찾아서 (2) 계승하는 중입니다 (3) 계속한다, 계속할 수 없다, 계속해야만 한다
-저주받은 상징주의자들 (0) 저주받은 시인들 (1) 세계는 한 권의 책을 위해
모더니스트의 선조들
셰익스피어는 초럭키했네
협업도 협업이지만 거의 다 원전이 있는 이야기들이기도 해서 그런 것고 있지...요즘 코로나 때문에 극장들 다 문 닫는 거 생각하면 셰익스피어의 글로브 극장이 생각나는 고시야
shakespeare in love가 진짜 그 시대 고증 잘 해놨음 재미도 챙기면서
정보가 솔깃한데 근데 짤 존나 기괴하다
"서민과 같이 볼 수 없다." 윗짤 대체 뭐지;
저런 매절계약이 태반이었던 게 저 당시에는 당연한 거였나? 아니면 유독 희곡 쪽이 박한 거였나?
저작권 개념이 미개해서 그런 건가 했는데 걍 중산층 갈아마시는 거였구나 만약 귀족이 주로 했다면 인세 꼬박꼬박 줬겠지?
선생님 넘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혹시 한국 모더니즘 편도 ㅇ연재할 생각 없으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