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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여니가 뽑은 예쁜 사랑시 > - (황매)



전인권의 박정희 평전을 읽다가 갑자기 도서관이 그리워졌고, 도서관에서 아무 시집이나 꺼내 읽고 싶었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휴관이 연장되면서 나는 내 책장에 꽂힌 시집으로 만족해야 했고,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귀여니가 뽑은 예쁜 사랑시였다.

제목 그대로, 귀여니가 좋아할 수준의 담백한 사랑시들이 각 시인별로 수록되어 있다. 의외로 좋은 시들도 많이 수록되어서 만족스러웠다. 허나 귀여니의 시 감상은 읽지 않았다. 나는 귀여니의 감상 따위에는 솔직히 말해서 관심이 없었다. 시집의 절반 분량이 귀여니의 감상 얘기라서 시집의 가치는 가격에 비해 뭔가 살짝 부족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문득, 일본 아이돌 덕질에 대한 애정이 서서히 식어가며 자연스레 덕질을 끊으려고 했는데 이 시집을 감상하며 내가 사랑했던 그녀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리워졌다.

내가 몇 년 동안 느낀 사랑이란 감정은, 아이돌 덕질을 통해 느낀 것뿐이었다. 이제 그랬던 내 모습을 슬슬 정리하려는 찰나, 다시 메말랐던 가슴이 불타오르고 말았다.

나는 죽기 전에 탈덕할 수 있을까?

개인적인 문제 때문에 요 며칠 동안 여러모로 힘들었는데, 이 시집을 읽고 예전의 내 모습을 되찾은 느낌이었다. 과연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잘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나는 진심으로 그녀들을 좋아했던 걸까. 사실 의문이 든다. 자아가 비대한 뼛속까지 오타쿠 기질이 있던 나는 일본 아이돌 덕질을 통해 나 자신을 포장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 같다.

결국, 그녀들을 진심으로 사랑한 게 아니라, 그녀들을 사랑하는 나 자신의 모습에 도취되었던 나르시시즘이 아니었을까 싶다.

내 자아는, 언제부터인가 덕질로 유지되고 있었다.

이제 덕질에 대한 열정이 식으니 나는 빈껍데기만 남은 기분이었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까.

리카짱, 모에큥, 그리고 내 기억 속에서 스쳐 지나간 수많은 아이돌 소녀들. 나는 이제 그녀들에게로 돌아갈 수 없는 걸까.

내 사랑은 거짓이었고, 비대한 자아의 합리화에 불과했을 뿐일까?

다시 시집 얘기로 돌아가자면, 수록된 시들 중에 끌리는 게 너무 많아 하나하나 추천해주기엔 그 분량이 적지 않다. 거를 시가 의외로 별로 없다. 고작 시 따위가, 귀여니가 뽑았다는 시 따위가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그 중에서 가장 강렬했던 시는 이경림의 밤길이다. 분량도 짧다. 전문을 수록해 본다.



맞은편에서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그대 눈빛이

너무 환하다


중앙선이 보이질 않는다





내 인생 최고의 시 정호승의 철길에 앉아처럼, 이대로 죽어도 좋다는 느낌이 이 시에서도 전해졌다. 내 사랑에 중앙선은 보이지 않았다. 눈이 멀어버린 것처럼, 귀가 멀어버린 것처럼, 이대로 죽어도 좋다는 생각으로 누군가를 사랑했다.

예전에도 말한 적이 있겠지만, 다시 얘기해야겠다. 내가 감상문을 쓰는 이유. 사실 그 원인은 내 기억력 문제 때문이었다. 기억력이 좋지 않아 책에 대한 너무나도 많은 기억들이 내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그래서 나는 잊더라도 그때의 내 감정과 감상을 기록으로나마 남기고 싶었다.

그런데 너는 잊지 못한다. 잊고 싶은데 다시 떠오른다. 잊으려고 덕질도 자제했는데, 왜 잊고 싶은 존재는 잊을 수 없는 걸까. AKB48 관련 커뮤 활동들도 그만뒀는데 다시 또 미련을 갖게 만드는 걸까.

잊고 싶지 않은 건 잊어버리게 되고, 잊고 싶은 건 잊지 못하게 되는 내 기억력이 원망스럽다.




분량 문제로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