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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



제목과 부제("존재하게 되는 것의 해악")만 보더라도 이 책이 문제작으로 꼽힐 걸 알 수 있다. 이 책이 매우 정교한 논리로 반출생주의를 입증하고 있다는 평을 듣지 않았다면 아마 굳이 읽지 않았으리라. 실제로 읽어본 결과, 저자가 너무나 반직관적인 결론들을 어디 흠 잡기 힘든 논증으로 밀어붙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논증한 첫 전제, "태어나는 것은 너무나 큰 해악이다"로부터 다양한 주제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는 것까지도. (이것은 우리가 모두 자살해야 한다는 주장과는 다른데, 왜냐면 이 경우에는 존재를 지속하기 위한 가치를 따로 따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 필요한 논증은 저자의 논증보다 훨씬 더 강력한 조건을 요구한다.) 이 주장에 대해 실천적으로 동의하진 않지만, 이론적으로 반대해야 할 이유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간단히 그 근본 주장과 논증을 요약해보자. 저자는 태어나는 것의 해악을 보이기 위해 직관적인 전제와 도식을 활용하는데, X라는 임의의 존재에 대해서 그가 존재하는 가능세계와 존재하지 않는 가능세계를 대조시키는 것이다. X는 자신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고통을 겪을 수도 있고, 쾌락을 겪을 수도 있다.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와 각 두 경우를 대응시켰을 때, 고통을 겪지 않은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쾌락을 겪지 않은 것은, 딱히 나쁜 일까지는 아니다. 이 고통과 쾌락의 비대칭성이 그의 논거의 핵심을 차지한다.




전자가 왜 좋은 일인가? 그에 대한 판단은 기형아를 낳지 않고 낙태했다는 판단에 대해 그르지 않다고 보는 것으로부터 알 수 있다. 어떤 고통을 해결하는 방법이 쭉, 쭉, 연장되어, 그 끝에는 결국 이 아기가 애초에 태어나지 않는 게 유일한 해답이었다는 결론을 내린다고 생각해보자. 그 결론이 아이가 아직 태내에 있을 때 나왔다면, 낙태를 결정한 부모가 도덕적으로 옳은 판단을 내렸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수많은 낙태 반대주의자(더 정확하게는, Pro-Life 주장자) 역시 이 점에서조차 아니다, 낙태는 그럼에도 삶을 죽인 악행이다, 라고 하지는 않는다.




허나 후자는 당연하다. 좋은 일을 겪을 때 감상적으로 "A 역시 우리와 함께 이걸 겪을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말할 순 있지만, 거기에 그 이상의 의미가 붙진 않는다. 아무도 아직 태어나지 않은 수많은 생명이 겪지 못한 행복에 대해 슬퍼하진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자위용 휴지에 붙어나온 수많은 정자들이 겪지 못한 쾌락에 대해 1분 간 묵념의 시간을 가지자. 쾌락의 부재는 그 쾌락을 겪는 주체가 없을 경우 아무런 의미가 없다. 고통의 부재가 그렇지 않은 것과는 별개로 말이다.




또한 이와 별개로 저자는 세 논거를 토대로 같은 주장을 논증하는데, "일정 수준 이상의 고통은 비가역적이라 아무리 많은 쾌락이 있더라도 이를 보상할 수 없다"와 "해악을 증가시키는 선택은, 쾌락을 증가시키는 선택이 의무적이진 않은 것과는 달리, 의무적이다", 그리고 "실제 삶은 그 일정 수준 이상의 고통을 겪을 확률이 매우 높다"라는 것이다. 매일마다 모든 손톱과 발톱을 뽑히는 대신 돈을 얼마를 받겠냐고 질문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애초에 그 선택지를 거부할 것이다. 두 번째 논거는 도덕철학에서 아주 근본적인 공리다. 전체적 해악의 증가는 어떤 경우에도 불허된다. 세 번째 논거는 현실적 통계들을 토대로 제시되는데, 이 지구에는 아직도 너무나 열악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자체를 부정하진 않을 것이다.




이러한 논증을 바탕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의 해악"을 입증한 그는 아이를 어째서 낳지 말아야 하는지, 낙태가 어째서 오히려 권장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언젠가 다가올 멸종을 어떻게 점진적으로 가속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이 요약이 책을 정신 나간 헛소리로 보이게 만들 것을 알기에 약간의 변명 삼아 조금의 예시를 들자면, 멸종에 대한 이야기는 이런 식이다. SF 영화 <소일렌트 그린>에 나오는 것처럼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끔찍한 삶을 사는 것보다는, 더 적은 사람들이 살기 좋은 현실을 사는 것이 훨씬 낫다. 여기에 저자의 주장이 곁들여지면, 따라서 같은 연쇄법을 통하여 0명의 사람들이 고통의 부재를 겪는 것이 낫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 책은 물론 지극히 반직관적인 결론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도덕철학에 관심이 있거나, 출생에 대한 규범적 논쟁(예를 들어, 낙태)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또한 법적 지식이 있다면 조금 더 이 책을 잘 이해할 수 있을 텐데, 왜냐면 본인은 그 부족으로 인하여 4장을 반도 소화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조금 더 주석이 달려 있었다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P.S. 읽으면서 보니 이 책의 저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교수다. 태어나면서 갖는 원죄에 대해 좀 더 밀접하게 생각해볼 만했다고 여기는 건 아무래도 아파르트헤이트에 의한 편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