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성 특성 오성 지성 감성 감관 소질 특질 특징 성질 실체 본질 본성 실존 현존 존재 이성 발생 인지 인식 지각 직관 판단 인상 형상.. 등등
오늘 깨달았습니다. 맞나요? ㅅㅂ... 전 책읽기를 포기하렵니다.
댓글 27
사실상 그 책에서 정의하는 내용대로 이해할수밖에 없지 철학이란게 어느정도 언어원자론적이고 항상 해체와 재구성을 반복하는 작업이니까. 단어를 우리가 알고 있는 일상의 의미대로 혹은 다른 책에서 사용한 의미대로만 이해해서는 책을 이해할수 없는거지.
ㅅㅅㄴ(stand188)2016-08-05 21:56:00
읽으면서 구별하면 안돼요?
익명(39.112)2016-08-05 23:58:00
좀 알려줘요?
오블론스키(77.180)2016-08-06 09:47:00
1. 일반적으로 감성은 감각에, 이성과 오성은 다른 것에 근거합니다. 오성의 다른 번역어로는 지성이 있습니다. 오성과 이성, 즉 이성과 지성은 보통 하나가 다른 하나의 상위의 개념입니다. 그러니까 이성이란 개념을 최고 인식의 원리로 삼는 철학자는 오성 개념을 그 아래에 두고요, 오성 개념을 최고 인식의 원리로 삼는 철학자는 이성을 그 아래에 두죠. 그런데 엎치락뒤치락 하다가 칸트 이후에 이성이 오성(지성)보다 상위의 개념으로 인정되고, 그 용례도 굳어집니다. 칸트의 용례에서 지성이란 과학이나 기술이나 하는 것처럼 어떤 분명한 대상들에 관한 규칙성을 발견하고 적용하는 능력을 가리키고요, 이성이란 대충 말하면 이념이라는 특수한 대상들을 다루는 보다 상위의 인식 원리입니다.
오블론스키(77.180)2016-08-06 09:52:00
그러니까 칸트에 따르면 이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 인식의 구조에 관해 철학적으로 탐구할 수 있습니다. 지성을 통해서는 그런 탐구를 할 수 없습니다.
오블론스키(77.180)2016-08-06 09:52:00
2. 직관은 칸트에게서는 감성을 통해 감각이 의식되는 방식이지만, 이것도 마찬가지로 항상 하나의 능력에 한정되지는 않습니다. 단 '곧바로 우리 의식에 주어진다' 라는 느슨한 뜻은 있습니다. 다른 어떤 매개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우리 의식에 주어지는 것의 내용을 우리는 직관이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가령 인상이 직관된다는 뜻은, 우리가 어떤 대상을 볼 때 그것의 감각적인 속성들을 곧바로 받아들인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뭐 여기서 속성이란 말은 크기 무게 형태 색깔 등등 외적인 것을 말하고, 철학자마다 이걸 1차/2차속성으로 다시 구분하기도 합니다.
오블론스키(77.180)2016-08-06 09:55:00
그리고 인상이란 말은 가령 영국 경험론에서 말하는 외적 대상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감각자료의 내용을 뜻하구요. '의식' 은 이 감성과 이성의 영역을 두루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감각적인 것이 직관된다고 해서 그것이 철학적으로는 무의식적인게 아닙니다. 우리의 일상용어로 그건 무의식적으로 알아차린다,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만 철학에서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지향하지 않았다' 라고 말하지 의식하지 않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철학에서는 우리 사고에 들어온 모든 내용이 기본적으로 의식한 것입니다.
오블론스키(77.180)2016-08-06 09:58:00
3. 감관 .. 이런 건 쩌리 단어기 때문에 앞서 말한 감성이나 이런 중심 개념을 잘 따라가면 됩니다. 그리고 특성, 특질, 소질 같은 말은 대체로 일상적 개념을 확장하거나 축소시키는 수준이지 딱히 특수한 철학적 단어가 아닙니다. 인지라는 말은 굉장히 애매한 말인데 이것도 현대 철학으로 오지 않는 이상 기본적으로 쩌리 단어라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쩌리 단어란 말은 더 중심 개념인 인식, 의식, 지각, 파악, 이런 단어들을 한 철학 체계 내에서 파악하면, 설사 그 단어가 등장하더라도 알아서 해석이 될 만한 그런 단어란 말입니다. 대부분의 철학을 이해하는 데 중요 단어가 아닙니다.
오블론스키(77.180)2016-08-06 10:01:00
4. 형상은 오래된 단어 eidos 에서 유래된 것일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1) 어떤 대상의 본질이 이미 우리에게 주어져 있으며, (2) 그러한 주어짐이 관념적이면서 보편적이며, (3) 그 관념의 세계가 실재한다는 생각을 할 때, 그런 철학자들이 형상이란 용어를 열심히 사용합니다. 이런 용어를 많이 사용하면 기본적으로 이데아론의 수용이거나 그 변주라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철학자에 따라 "관념"idea란 단어로 같은 뜻을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뭐 후썰 같은 철학자는 휠레hyle 이런 단어를 쓰기도 합니다.
오블론스키(77.180)2016-08-06 10:04:00
5. 실체와 본질은 기본적으로는 어떤 대상의 진짜를 말한다는 점에서 일치합니다. 그런데 그 진짜가 어떤 측면의 진짜냐고 할 때 그 다뤄지는 맥락과 층위에 따라 적절한 단어를 선택하는 것이죠. 아무튼 어떤 존재/존재자의 '진짜' 가 실체거나 본질이거나 실재라면, 그 반대편에 가상이나 실존이나 현존이나 모사나 개별 대상이나 이런 것이 있겠죠. 아 다른 건 본질이란 건 기본적으로 개별 대상이 속한 종이나 류가 그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으로 지닌 어떤 것을 뜻합니다. 실체란 개별 대상 하나하나에 대해서도 따질 수 있고요.
오블론스키(77.180)2016-08-06 10:08:00
6. 실존과 현존도 별로 안 어렵습니다. 실존이란 단어는 어떤 대상에 쓰일 때는 인간 전체에게 주어지는 어떤 대상의 일면성이나, 어떤 인간의 조건을 통해 개별 인간에게 주어지는 어떤 대상의 일면성을 뜻할 때 쓰입니다. 인간에게 쓰일 때는 인간의 조건을 통해 개별 인간에게 주어지는 세계들의 일면성, 다양성 고유성을 뜻할 때 쓰입니다. 현존이란 말은 실존보다 좀 더 좁게, 어떤 대상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양상을 말합니다. 지금-특정한 순간에 나타나는presence 대상의 상태에 대해 말하는 것을 대상의 현존에 대해 말한다고 합니다.
오블론스키(77.180)2016-08-06 10:12:00
7. 인제 거의 다 했네요. 발생이란 보통 전통 철학에서 상정하는 어떤 세계의 보편적인 질서, 인간 정신 구조의 보편성, 혹은 신학적 전제, 이런 것을 당연시 하지 않은 채로, 인간에 대한 모든 것을 기본적으로 인간의 자연사natural history에 대한 고찰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는 입장에서, 인간 정신의 구조든, 우리에게 주어진 세계의 구조든, 파악하는 입장입니다. 근데 이 단어는 보통 현상학에서밖에 잘 안 쓰이던데요. 그 이유는.. 관념론 전통의 다른 철학에서는 이런 문제가 애초 제기되지도 않았고, 다른 한편으로 초월론적 관념론이나 신학같이 그 체계가 독단적인 것이 아니라면, 이런 단어를 따로 쓸 필요도 없기 떄문인 거 같네요.
오블론스키(77.180)2016-08-06 10:16:00
8. 지각이라는 것이 진짜 말하기가 어려운데.. '직관적인 인식' 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앞서 직관은 감각을 파악하는 원리로 감성의 방식이라고 했죠? 그리고 좁은 의미의 인식은 이성과 지성(오성)의 영역을 가리킵니다. 그러면 '직관적 인식'이란 뭐냐, 둘로 말할 수 있습니다. 먼저 감성과 이성의 이원론을 벗어날 때 그래서 지각이란 단어를 중심적으로 씁니다. 두 세계가 완전히 배타적이고 이원적이라면 '직관적인 인식' 혹은 그와 유사개념이 주목되기 어렵겠죠. 둘째로, 지각이란 단어를 애초에 좁은 의미의 인식, 지성과 이성의 질서에 포섭되는 걸로 씁니다.
오블론스키(77.180)2016-08-06 10:20:00
왜냐하면 관념론이나 합리론 전통에서는, 직관적 인식이라는 게 지식이면, 이게 지성/이성보다 발생적으로 더 앞설 게 아니겠어요? 경험론과 합리론-관념론의 대립은 지식의 근거의 토대가 어디에서 출발하냐는 건데, 직관적 인식이 있다고 하면 감각에 좀 더 의미를 두는 경험론에 가까워질테니깐, 반대 철학을 전개하는 입장에서는 지각이란 단어를 직관적 인식이라는 의미보다 다른 용례로 쓰겠죠. 애초에 그 단어를 중심단어로 쓰지도 않을 테고요 (실제로 관념론-합리론 전통에서 지각이란 쩌리단어에 불과하죠. 메를로 퐁티에게서는 그렇지 않습니다만..퐁티가 인식론적으로 관념론자인지 경험론자인지 이건 정말 어렵습니다.) 아무튼 뭐 그 정도.
오블론스키(77.180)2016-08-06 10:22:00
9. 철학에 너무 환상을 가지지 마세요. 물론 철학은 고귀한 정신을 가진 것도 많고 굉장히 체계적입니다. 근데 그러면서 굉장히 오늘날 관점에서 교조적이고 보수적입니다. 지성사로서 철학사를 볼 때, 철학의 역사란 앞선 철학자들이 쓴 개념들을 계속 이어가면서 부수는, 그런 게임입니다. 전통적인 철학자들은 이 게임을 통해 인간과 세계에 관한 보편적인 진리에 다다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내기물을 갖고 철학을 하는 것이 의미 있고 가장 상위의 지성적 활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블론스키(77.180)2016-08-06 10:25:00
하지만 정말 그런가요? 저는 과학 등장 이후에도 여전히 철학의 역할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이 전통적인 게임의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많이 의미가 있나요? 질문자는 당연히 모르죠 원래 철학책들을 안 읽었으니까. 근데 철학이라는 게임이 그런 것이었다는 겁니다. 질문자는 철학이란 영역에서 자기가 보려고 하는 부분에 대해서 볼 수 있고 철학자들이 그걸 찾으려고 했다고 생각하시겠죠? 그런데 앞서 말한 저런 게임에 몰두한 사람들의 글에 오늘날의 시각에서 뭐 아주 대단한 게 있을까요?
오블론스키(77.180)2016-08-06 10:26:00
있다고 믿으면 좀 더 철학책을 기초부터 진지하게 읽으시길 바랍니다. 칸트를 읽기 위해 최소한 데카르트, 스피노자, 로크, 흄 정도는 읽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렇지 않다고 생각되면 철학책을 좀 더 마음대로 읽으세요. 가령 어차피 이렇게 저렇게 자기만의 유토피아적인 꿈꾸기라고 생각하면, 느낌 안 오는 거 읽지 마시고, 오는 것을 열심히 읽으세요. 그리고 현실의 사회적인 변화를 원하면서 고전을 읽으시려면 순수철학 대신 근대의 정치 이론과 애덤 스미스-존 스튜어트 밀 등의 고전경제학을 먼저 읽으시고요. 아니면 차라리 다윈,굴드,도킨스,데넷,루스를 읽는게 나을 겁니다.
오블론스키(77.180)2016-08-06 10:29:00
물론 철학자들도 나름대로 고귀한 생각도 많이 하고 노력도 했죠. 근데 기본적으로 그들이 사고를 위해 활용할 수 있는 도구가 주로 사변밖에 없었고, 그 방법에 같혀 있었다는 겁니다. 그 방법을 여전히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근본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더 진지하게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저는 그게 아니라서 인제 더 이상 진지하게 읽지 않는답니다. 저는 칸트 따위보다 철학사의 개쩌리라는 윌리엄 제임스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의 <실용주의>같은 책을.. 아무튼 도움이 됐길.
오블론스키(77.180)2016-08-06 10:32:00
와 오블론스키님 그걸 다 설명해주시다니 정말 대단하시네요.
그런데 님이 마지막에 주장하신건 고전철학들이, 예를 들어 플라톤이나 칸트같은 사람들의 철학들이 읽을 가치가 없다고 말하신건가요?
입문자(121.184)2016-08-06 13:20:00
와... 이건 복사해 놓고 두고두고 읽어봐야겠네요. 사실 이런 답변을 기대하고 썼던 글은 아니었는데 로또 맞은 기분...
철알못(efu604)2016-08-06 14:40:00
가 나타났다!
독갤의 현자(218.37)2016-08-06 15:23:00
헐
게르마늄(trsty)2016-08-06 15:34:00
입문자 // 제 얘기는 사변 철학이라는 것이 당대에 가장 높은 것을 생각하기 위한 최선의/유일한/단독적인 고안물이었다는 겁니다. 물론 현대에도 여전히 사변의 역할이 있을 수 있죠.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보다 다양한 정보들, 다양한 지적 도구들이 있습니다. 이 탐구들의 경험적, 사회적, 생리적, 물리적인 결과를 받아들이면서 여전히 겸손하게 사변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전통적인 사변 철학이 당시에 다른 지적 도구들을 크게 신뢰할 수 없었거나, 스콜라적인 경향을 가진 학자들의 영향으로 (종교의 이성적 정당화라는 목적을 전제로 한) 경험적 탐구의 결과들을 과소평가했기 때문에 굉장히 많은 것을 전제해야 했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오블론스키(77.180)2016-08-06 17:35:00
따라서 저는 칸트가 그 말을 어떤 의미에서 썼던 간에 그와 별로도, 오늘날 우리가 칸트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은 "철학함"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칸트의 작업의 가치를 조명하는 연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의가 있지만, 그 체계를 그대로 받아들여 철학을 한다는 건 너무 넌센스입니다. 현대의 칸트 연구자는 훌륭한 사람들이지만, 칸트 내에서 연구를 할 때 그 사람 자신이 철학을 한다고 생각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연구자로서 사회의 지적 측면에 기여하며 학자로서 효용을 다하고 있는 것이지, 철학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사회적 효용 없고 직업적이지 않더라도 개인적으로 철학 하는 게 더 끌리고요.
오블론스키(77.180)2016-08-06 17:37:00
(물론 당연히 둘이 모순적이지 않습니다. 연구자로서의 자신의 역할과 역량을 겸손하게 받아들여서, 학자로서는 철저히 좁은 의미의 연구만 수행하면서 일단 개인적으로 자기 철학함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제가 말한 건 누구의 철학이란 (1) 특정한 인식 관심을 (2) 제한된 지적 정보의 제한된 문화적 지평 하에서 (3) 완결성 있고 집요하게 추구한 결과물이고 (4) 그 결과로서 보편성을 갖는 것이지,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물론 철학이란 굉장히 폐쇄적 체계여서 내가 알고 싶은 것만 알기 위해서도 유명한 철학자의 철학을 꽤 잘 알아야 합니다. 제 말은 그럼에도 철학의 가치와 역량이란 사람에게마다 축구보다 더 둥글다는 겁니다.
오블론스키(77.180)2016-08-06 17:41:00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황규홍(219.250)2016-08-07 14:37:00
어떤 글을 읽다가 모르는 용어가 나오면 찾아서 공부하면 됩니다. 그때그때. 옛날에는 두꺼운 사전을 들고 골머리를 썩여야 했지만, 지금은 참 좋은 시대라, 스마트폰을 눌러 검색하면 다 나옵니다. 생소한 용어들에 그다지 부담 가질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검색하고, 생각하고, 기억하세요. 그게 쌓이면 소위 '유식한 사람'이 되는 거겠죠.
사실상 그 책에서 정의하는 내용대로 이해할수밖에 없지 철학이란게 어느정도 언어원자론적이고 항상 해체와 재구성을 반복하는 작업이니까. 단어를 우리가 알고 있는 일상의 의미대로 혹은 다른 책에서 사용한 의미대로만 이해해서는 책을 이해할수 없는거지.
읽으면서 구별하면 안돼요?
좀 알려줘요?
1. 일반적으로 감성은 감각에, 이성과 오성은 다른 것에 근거합니다. 오성의 다른 번역어로는 지성이 있습니다. 오성과 이성, 즉 이성과 지성은 보통 하나가 다른 하나의 상위의 개념입니다. 그러니까 이성이란 개념을 최고 인식의 원리로 삼는 철학자는 오성 개념을 그 아래에 두고요, 오성 개념을 최고 인식의 원리로 삼는 철학자는 이성을 그 아래에 두죠. 그런데 엎치락뒤치락 하다가 칸트 이후에 이성이 오성(지성)보다 상위의 개념으로 인정되고, 그 용례도 굳어집니다. 칸트의 용례에서 지성이란 과학이나 기술이나 하는 것처럼 어떤 분명한 대상들에 관한 규칙성을 발견하고 적용하는 능력을 가리키고요, 이성이란 대충 말하면 이념이라는 특수한 대상들을 다루는 보다 상위의 인식 원리입니다.
그러니까 칸트에 따르면 이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 인식의 구조에 관해 철학적으로 탐구할 수 있습니다. 지성을 통해서는 그런 탐구를 할 수 없습니다.
2. 직관은 칸트에게서는 감성을 통해 감각이 의식되는 방식이지만, 이것도 마찬가지로 항상 하나의 능력에 한정되지는 않습니다. 단 '곧바로 우리 의식에 주어진다' 라는 느슨한 뜻은 있습니다. 다른 어떤 매개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우리 의식에 주어지는 것의 내용을 우리는 직관이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가령 인상이 직관된다는 뜻은, 우리가 어떤 대상을 볼 때 그것의 감각적인 속성들을 곧바로 받아들인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뭐 여기서 속성이란 말은 크기 무게 형태 색깔 등등 외적인 것을 말하고, 철학자마다 이걸 1차/2차속성으로 다시 구분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인상이란 말은 가령 영국 경험론에서 말하는 외적 대상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감각자료의 내용을 뜻하구요. '의식' 은 이 감성과 이성의 영역을 두루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감각적인 것이 직관된다고 해서 그것이 철학적으로는 무의식적인게 아닙니다. 우리의 일상용어로 그건 무의식적으로 알아차린다,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만 철학에서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지향하지 않았다' 라고 말하지 의식하지 않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철학에서는 우리 사고에 들어온 모든 내용이 기본적으로 의식한 것입니다.
3. 감관 .. 이런 건 쩌리 단어기 때문에 앞서 말한 감성이나 이런 중심 개념을 잘 따라가면 됩니다. 그리고 특성, 특질, 소질 같은 말은 대체로 일상적 개념을 확장하거나 축소시키는 수준이지 딱히 특수한 철학적 단어가 아닙니다. 인지라는 말은 굉장히 애매한 말인데 이것도 현대 철학으로 오지 않는 이상 기본적으로 쩌리 단어라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쩌리 단어란 말은 더 중심 개념인 인식, 의식, 지각, 파악, 이런 단어들을 한 철학 체계 내에서 파악하면, 설사 그 단어가 등장하더라도 알아서 해석이 될 만한 그런 단어란 말입니다. 대부분의 철학을 이해하는 데 중요 단어가 아닙니다.
4. 형상은 오래된 단어 eidos 에서 유래된 것일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1) 어떤 대상의 본질이 이미 우리에게 주어져 있으며, (2) 그러한 주어짐이 관념적이면서 보편적이며, (3) 그 관념의 세계가 실재한다는 생각을 할 때, 그런 철학자들이 형상이란 용어를 열심히 사용합니다. 이런 용어를 많이 사용하면 기본적으로 이데아론의 수용이거나 그 변주라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철학자에 따라 "관념"idea란 단어로 같은 뜻을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뭐 후썰 같은 철학자는 휠레hyle 이런 단어를 쓰기도 합니다.
5. 실체와 본질은 기본적으로는 어떤 대상의 진짜를 말한다는 점에서 일치합니다. 그런데 그 진짜가 어떤 측면의 진짜냐고 할 때 그 다뤄지는 맥락과 층위에 따라 적절한 단어를 선택하는 것이죠. 아무튼 어떤 존재/존재자의 '진짜' 가 실체거나 본질이거나 실재라면, 그 반대편에 가상이나 실존이나 현존이나 모사나 개별 대상이나 이런 것이 있겠죠. 아 다른 건 본질이란 건 기본적으로 개별 대상이 속한 종이나 류가 그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으로 지닌 어떤 것을 뜻합니다. 실체란 개별 대상 하나하나에 대해서도 따질 수 있고요.
6. 실존과 현존도 별로 안 어렵습니다. 실존이란 단어는 어떤 대상에 쓰일 때는 인간 전체에게 주어지는 어떤 대상의 일면성이나, 어떤 인간의 조건을 통해 개별 인간에게 주어지는 어떤 대상의 일면성을 뜻할 때 쓰입니다. 인간에게 쓰일 때는 인간의 조건을 통해 개별 인간에게 주어지는 세계들의 일면성, 다양성 고유성을 뜻할 때 쓰입니다. 현존이란 말은 실존보다 좀 더 좁게, 어떤 대상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양상을 말합니다. 지금-특정한 순간에 나타나는presence 대상의 상태에 대해 말하는 것을 대상의 현존에 대해 말한다고 합니다.
7. 인제 거의 다 했네요. 발생이란 보통 전통 철학에서 상정하는 어떤 세계의 보편적인 질서, 인간 정신 구조의 보편성, 혹은 신학적 전제, 이런 것을 당연시 하지 않은 채로, 인간에 대한 모든 것을 기본적으로 인간의 자연사natural history에 대한 고찰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는 입장에서, 인간 정신의 구조든, 우리에게 주어진 세계의 구조든, 파악하는 입장입니다. 근데 이 단어는 보통 현상학에서밖에 잘 안 쓰이던데요. 그 이유는.. 관념론 전통의 다른 철학에서는 이런 문제가 애초 제기되지도 않았고, 다른 한편으로 초월론적 관념론이나 신학같이 그 체계가 독단적인 것이 아니라면, 이런 단어를 따로 쓸 필요도 없기 떄문인 거 같네요.
8. 지각이라는 것이 진짜 말하기가 어려운데.. '직관적인 인식' 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앞서 직관은 감각을 파악하는 원리로 감성의 방식이라고 했죠? 그리고 좁은 의미의 인식은 이성과 지성(오성)의 영역을 가리킵니다. 그러면 '직관적 인식'이란 뭐냐, 둘로 말할 수 있습니다. 먼저 감성과 이성의 이원론을 벗어날 때 그래서 지각이란 단어를 중심적으로 씁니다. 두 세계가 완전히 배타적이고 이원적이라면 '직관적인 인식' 혹은 그와 유사개념이 주목되기 어렵겠죠. 둘째로, 지각이란 단어를 애초에 좁은 의미의 인식, 지성과 이성의 질서에 포섭되는 걸로 씁니다.
왜냐하면 관념론이나 합리론 전통에서는, 직관적 인식이라는 게 지식이면, 이게 지성/이성보다 발생적으로 더 앞설 게 아니겠어요? 경험론과 합리론-관념론의 대립은 지식의 근거의 토대가 어디에서 출발하냐는 건데, 직관적 인식이 있다고 하면 감각에 좀 더 의미를 두는 경험론에 가까워질테니깐, 반대 철학을 전개하는 입장에서는 지각이란 단어를 직관적 인식이라는 의미보다 다른 용례로 쓰겠죠. 애초에 그 단어를 중심단어로 쓰지도 않을 테고요 (실제로 관념론-합리론 전통에서 지각이란 쩌리단어에 불과하죠. 메를로 퐁티에게서는 그렇지 않습니다만..퐁티가 인식론적으로 관념론자인지 경험론자인지 이건 정말 어렵습니다.) 아무튼 뭐 그 정도.
9. 철학에 너무 환상을 가지지 마세요. 물론 철학은 고귀한 정신을 가진 것도 많고 굉장히 체계적입니다. 근데 그러면서 굉장히 오늘날 관점에서 교조적이고 보수적입니다. 지성사로서 철학사를 볼 때, 철학의 역사란 앞선 철학자들이 쓴 개념들을 계속 이어가면서 부수는, 그런 게임입니다. 전통적인 철학자들은 이 게임을 통해 인간과 세계에 관한 보편적인 진리에 다다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내기물을 갖고 철학을 하는 것이 의미 있고 가장 상위의 지성적 활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요? 저는 과학 등장 이후에도 여전히 철학의 역할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이 전통적인 게임의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많이 의미가 있나요? 질문자는 당연히 모르죠 원래 철학책들을 안 읽었으니까. 근데 철학이라는 게임이 그런 것이었다는 겁니다. 질문자는 철학이란 영역에서 자기가 보려고 하는 부분에 대해서 볼 수 있고 철학자들이 그걸 찾으려고 했다고 생각하시겠죠? 그런데 앞서 말한 저런 게임에 몰두한 사람들의 글에 오늘날의 시각에서 뭐 아주 대단한 게 있을까요?
있다고 믿으면 좀 더 철학책을 기초부터 진지하게 읽으시길 바랍니다. 칸트를 읽기 위해 최소한 데카르트, 스피노자, 로크, 흄 정도는 읽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렇지 않다고 생각되면 철학책을 좀 더 마음대로 읽으세요. 가령 어차피 이렇게 저렇게 자기만의 유토피아적인 꿈꾸기라고 생각하면, 느낌 안 오는 거 읽지 마시고, 오는 것을 열심히 읽으세요. 그리고 현실의 사회적인 변화를 원하면서 고전을 읽으시려면 순수철학 대신 근대의 정치 이론과 애덤 스미스-존 스튜어트 밀 등의 고전경제학을 먼저 읽으시고요. 아니면 차라리 다윈,굴드,도킨스,데넷,루스를 읽는게 나을 겁니다.
물론 철학자들도 나름대로 고귀한 생각도 많이 하고 노력도 했죠. 근데 기본적으로 그들이 사고를 위해 활용할 수 있는 도구가 주로 사변밖에 없었고, 그 방법에 같혀 있었다는 겁니다. 그 방법을 여전히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근본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더 진지하게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저는 그게 아니라서 인제 더 이상 진지하게 읽지 않는답니다. 저는 칸트 따위보다 철학사의 개쩌리라는 윌리엄 제임스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의 <실용주의>같은 책을.. 아무튼 도움이 됐길.
와 오블론스키님 그걸 다 설명해주시다니 정말 대단하시네요. 그런데 님이 마지막에 주장하신건 고전철학들이, 예를 들어 플라톤이나 칸트같은 사람들의 철학들이 읽을 가치가 없다고 말하신건가요?
와... 이건 복사해 놓고 두고두고 읽어봐야겠네요. 사실 이런 답변을 기대하고 썼던 글은 아니었는데 로또 맞은 기분...
가 나타났다!
헐
입문자 // 제 얘기는 사변 철학이라는 것이 당대에 가장 높은 것을 생각하기 위한 최선의/유일한/단독적인 고안물이었다는 겁니다. 물론 현대에도 여전히 사변의 역할이 있을 수 있죠.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보다 다양한 정보들, 다양한 지적 도구들이 있습니다. 이 탐구들의 경험적, 사회적, 생리적, 물리적인 결과를 받아들이면서 여전히 겸손하게 사변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전통적인 사변 철학이 당시에 다른 지적 도구들을 크게 신뢰할 수 없었거나, 스콜라적인 경향을 가진 학자들의 영향으로 (종교의 이성적 정당화라는 목적을 전제로 한) 경험적 탐구의 결과들을 과소평가했기 때문에 굉장히 많은 것을 전제해야 했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따라서 저는 칸트가 그 말을 어떤 의미에서 썼던 간에 그와 별로도, 오늘날 우리가 칸트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은 "철학함"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칸트의 작업의 가치를 조명하는 연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의가 있지만, 그 체계를 그대로 받아들여 철학을 한다는 건 너무 넌센스입니다. 현대의 칸트 연구자는 훌륭한 사람들이지만, 칸트 내에서 연구를 할 때 그 사람 자신이 철학을 한다고 생각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연구자로서 사회의 지적 측면에 기여하며 학자로서 효용을 다하고 있는 것이지, 철학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사회적 효용 없고 직업적이지 않더라도 개인적으로 철학 하는 게 더 끌리고요.
(물론 당연히 둘이 모순적이지 않습니다. 연구자로서의 자신의 역할과 역량을 겸손하게 받아들여서, 학자로서는 철저히 좁은 의미의 연구만 수행하면서 일단 개인적으로 자기 철학함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제가 말한 건 누구의 철학이란 (1) 특정한 인식 관심을 (2) 제한된 지적 정보의 제한된 문화적 지평 하에서 (3) 완결성 있고 집요하게 추구한 결과물이고 (4) 그 결과로서 보편성을 갖는 것이지,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물론 철학이란 굉장히 폐쇄적 체계여서 내가 알고 싶은 것만 알기 위해서도 유명한 철학자의 철학을 꽤 잘 알아야 합니다. 제 말은 그럼에도 철학의 가치와 역량이란 사람에게마다 축구보다 더 둥글다는 겁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떤 글을 읽다가 모르는 용어가 나오면 찾아서 공부하면 됩니다. 그때그때. 옛날에는 두꺼운 사전을 들고 골머리를 썩여야 했지만, 지금은 참 좋은 시대라, 스마트폰을 눌러 검색하면 다 나옵니다. 생소한 용어들에 그다지 부담 가질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검색하고, 생각하고, 기억하세요. 그게 쌓이면 소위 '유식한 사람'이 되는 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