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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독후감은 거의 처음 써보는 거라 많이 서투릅니다 양해해주세요



 그레고르 잠자는 집안의 경제를 책임지던 외판사원입니다. 새벽 다섯 시 기차에 올라야 했던 그는 늦잠을 자버렸고, 벌레가 되었습니다.

 카프카의 책 <변신>은 어느 날 갑자기 벌레로 변한 청년 그레고르 잠자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스스로가 고달픈 생활을 하고 있었음에도 자신이 가족들을 부양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자부심을 느끼며 살았습니다. 여동생을 음악 학교에 보낼 계획을 세우고 있었을 정도로 그는 가족들에게 헌신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벌레가 되어버린 그는 자신의 말을 알아들을 수도, 가까이 다가오려고도 하지 않는 가족들에게서 근근히 먹을 것을 받아먹으며 비참하게 살게 됩니다.

 그레고르가 돈을 벌어오던 동안은 그의 가치가 가족들에게 인정받았고 사회에서 구성원으로 대접받았지만, 그가 벌레로 변하자 사람들은 카드 뒤집듯 태도를 바꿔버립니다. 어머니는 기겁하고, 아버지는 지팡이를 흔들어 그를 방 안으로 내몰았으며, 그의 지배인은 그에게서 도망칩니다. 처음엔 순전히 벌레가 된 그의 모습 때문이었지만, 날이 갈수록 그를 대하는 가족들의 시선은 싸늘해집니다. 심지어 그에게 의지하며 경제적으로 무능했던 그의 가족들은 자신들이 살 길을 찾기 위해 분주해집니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 가족들을 걱정했지만, 그의 생각과는 다르게 가족들은 그를 필요로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 그가 죽고 난 후의 가족들의 모습은 희망적이기까지 합니다. 아무 쓸모가 없어진 순간 물질만능의 사회에서 벌레가 되어버린 그의 모습이, 불안한 미래를 안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과 닮아 보였습니다.

 그레고르는 벌레가 된 후 줄곧 자신의 방에 갇혀 있습니다. 가족들은 벌레가 된 자신의 모습을 고려해 그가 인간이던 시절 사용하던 가구들을 방에서 꺼내게 되는데, 그는 자신이 만든, 스스로의 인간성을 상징하는 마지막 보루인 자신의 액자에 매달립니다. 가족들은 인간성을 지키려는 벌레, 그들의 눈에는 그저 벽에 달라붙는 흉측한 해충으로 보이는 그것의 모습에 기겁하고, 마침내 그레고르의 여동생은 그레고르를 저것이라고 부르며 그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가족들은 사랑 속에 그를 낳았겠지만, 결국 그는 가족들의 멸시 속에 죽게 되었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그의 등에 박힌 사과를 아무도 빼주려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 사과는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던진 사과들 중 한 알이었는데, 나중에 사과가 박힌 상처가 악화되어 그가 죽는 원인이 됩니다. 그저 다가가서 빼주기만 하면 될 것을, 그의 가족들은 아무도 그의 근처에 가려 하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에게 무엇보다 필요했던 건 관심과 사랑이었거늘, 그의 관계는 참으로 일방적이었습니다.

 <변신>이 쓰인 시기, 1910년대 유럽에서는 초기 자본주의가 발달되었지만 그만큼 노동자 계급의 취급은 매우 박했습니다. 자본가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노동자들은 최소한의 대우도 받지 못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레고르도, 자신의 모습이 벌레로 변해버렸건만, 그저 열차를 놓친 것과 다음 열차가 오는 시간에 대해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 스스로도 자신이 그저 돈 벌어오는 일벌레에 불과하다는 걸 알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네요. 참 여러모로 불쌍하기 짝이 없어 보였습니다.

 또한 당시 유럽에서는 19세기 말부터 드레퓌스 사건 등으로 반유대주의가 크게 대두했습니다. 카프카 또한 유대 인이었습니다. 비록 그는 유대 인들의 풍습을 버리고 서유럽 문화에 동화된 경우였으나, 이러한 사회 풍조는 그가 사회로부터 소외감을 느끼는 데 일조했을 것입니다. 벌레 그레고르가 당시 유럽 사회에서 벌레취급을 받던 유대 인들의 상황에 어느정도 겹쳐지는 것 같았습니다. 또한 카프카 본인의 특이한 출신도 이 소설에 묘사된 소외감에 영향을 끼쳤던 것 같습니다. 카프카는 유대 인이었지만, 체코 지역 사람이면서 독일어를 사용했거든요. 헷갈리는 상황이 그에게 많은 생각을 안겨주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벌레를 가리키는 해석들, 사회에서 소외되고, 능력없기 때문에 버림받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는 벌레껍질 속에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는 점점 벌레의 모습에 적응합니다. 썩은 음식을 먹지만 감격하고, 벽과 천장을 기어다니면서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심지어 역설적이게도 그는 벌레의 몸 속에서 인간적인 면모마저 생기게 됩니다. 여동생이 바이올린을 켜고 있을 때 음악이 그를 이토록 사로잡는데, 그가 한 마리 동물이란 말인가?’라는 문구와 함께 여동생의 연주에 감동해 문지방을 넘는 장면이 그걸 보여줍니다. 이 장면을 다시 한번 되뇌이면서 저는, 오히려 벌레의 몸에서 비로소 인간성을 갖추게 될 만큼 인간들이 더 비인간적으로 살아가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도면 괜찮습니까???? 솔직하게 개선점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