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ㅎㅇ 아는 지인한테서 여기가 나랑 잘 맞을 것 같다고 해서 추천 받아서 놀러와봄. 근데 그냥 그렇다고 하기엔 좀 심심해서 예전에 쓴 인간실격 리뷰 첨부함. 원본 링크는 아래 있는데 그냥 그 아래에 내가 말투 고쳐 쓴 거로 봐도 됨ㅇㅇ


https://blog.naver.com/wngus2358/221592215627



viewimage.php?id=3fb8d122ecdc3f&no=24b0d769e1d32ca73ded80fa11d028310c0dd27a92083f8186361ad12cebc0caa31edb47bab28db78a02655ca65b24471a03a2fce1c77e292701e1f7979adc0d95

요건 내가 읽은 책 인증



누군가는 비틀려있다.


비틀린 자들은 어느 것도 당연하지 않다.


너무나 당연해서 의심조차 안하는 것을 의심한다.


그래서 괴로워한다.



한줄 요약


날 때부터 비틀린 자는 어떤 삶을 살 수밖에 없는가


-


*스포가 많으니 스포 싫으면 뒤로 가줘ㅎㅎ


누군가에겐 인생 작품이라고도 하고, 누군가에겐 다시 보지 말자고도 하고. 나는 두 가지 대척점에 있는 리뷰 두 개를 보면서 이 작품에 흥미를 느꼈어. 도대체 어떤 소설이면(이미 리뷰를 볼 대로 봤지만) 이 소설에 대한 평이 그렇게 갈리는 걸까?


하지만 읽고 나서 깨달았지. 이 소설은 비틀린 자를 위한 헌정소설이라는 걸. 비틀린 자가 아니면 공감은커녕 이해도 안 될 내용과 문단, 그리고 문장으로 가득 찼다는 걸. 물론 이 소설을 인생작으로 삼은 모두가 비틀린 자는 아닐 거야. 하지만 정신 똑바로 차리고 보면 이 소설의 주인공은 우리로선 살 수 없는 삶을 살고 있어. 일단 얼굴부터 잘생겼잖아.......


주인공, 요조는 비틀린 인간이야. 책의 표현으로는 죄인, 광인, 그리고 폐인이라고 소개하지만, 내 표현으로는 요조는 비틀린 인간이야. 요조는 인간의 '당연함'들을 의심해. 자연적으로 학습돼 당연하게 느껴져온 모든 것들을 의심했기에 요조는 요조의 타인처럼 '당연하게' 넘기지 못했고.


그래서 두려워했어. 요조는 일생 내도록 사람을 두려워했어. 자신의 속내가 들키는 것, 자신의 연기가 들키는 것을 무엇보다도 무서워했지. 그리고 관념적인 것들을 가만히 놔두지 못했어. 읽는 나로선 요조가 정말로 '이해하기 싫어서' 받아들이지 못하고 의심한 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친분, 우정, 사랑...... 그 모든 걸 의심하고 두려워했으며,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자신을 '연기'해가며 타인을 속여왔어. 그렇기에 요조는 연기의 무게를 지워줄 술을 좋아했고, 성매매도 거리낌 없이 했지. 요조의 친구가 아니었다면 요조는 매춘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애당초 요조에겐 도덕이란 관념조차 의심스러운 것이었기에, 언젠간 하고야 말 거라고 생각해.


요조는 연기를 하면서 서슴없이 거짓말을 해. 때로는 못했다고도 말하지만, 사실 요조의 궁극적인 '목적'에 있어서 거짓말은 서슴없이 나올 수 있으면서도, 나와선 안 되는 것이었지. 그렇다면 요조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일까? 바로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거야. 해는 물리적인 것도, 정신적인 것도 포함.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한 요조는 자신을 끊임없이 속이고, 희생시켜가면서 타인의 기대와 만족을 충족시킨 거야.


물론 후반부에 가선 그마저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요조를 볼 수 있어. 지극히 수동적으로 살아온 인간인 요조는 결국 타의의 기대에 스스로 무너진 것이지. 불과 20대의 창창한 시절에 말이야.



이 소설은 매우 짧지만, 할 얘기를 매우 많이 만들어낸다고 생각해. 요조가 비틀린 인간으로서 충실하게 살아오면서도, 동시에 지극히 수동적으로 살아왔기 때문이야. 요조가 스스로의 의지를 내보인 적은 작품에서도 손을 꼽을 정도로 적어. 그것은 자신이 비틀린 자라는 인식과 함께, 비틀린 자의 숙명처럼 존재하는 만물, 만념에 대한 의심이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정말 그럴까? 나는 요조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해. 요조는 스스로를 인간으로부터 실격시키기 위해 발버둥쳤고, 보란듯이 성공했다-라고.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면, 요조는 작중에서 단 한 번이라도 무언가를 확인하기 위한 행동을 하지 않았거든. 아버지의 생각도, 친구의 의도도, 아내의 사랑도, 그 어느 것도 말이야. 의심을 하고, 심지어는 스스로 확신까지 하면서도 실제로 확인하지 않았어.


그저 움츠리고 침묵하고 가만히 있음으로써, 것보라는 듯이 독백해. 그리고 도망쳐. 요조의 일생 내도록 그래. 답답한 것은 둘째치고, 그런 주제에 자신의 신세와 자신의 처지에 대한 한탄만 계속 해. 개선할 의지를 보였는가? 의지는 둘째치고 자신이 의심한 것을 확인했는가? 전혀 아니야. 요조는 그저 자신의 생각에 빠졌을 뿐이야. 자신의 생각만을 진리라고 생각하고 있어. 타인의 모든 대답은 의심하고 답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의 질문과 답만은 진리라고 생각해.


그런 요조가 인간으로서 실격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지. 정해진 결말. 요조는 스스로를 인간으로서 실격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결과적으로 성공했어. 행복한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요조는 동정되어선 안 된다는 거야. 요조의 사정을 모르는 요조의 주변 사람들이야 둘째 쳐도, 우리는 요조를 동정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 요조는 성공한 인생이야. 비틀린 자의 성공이지. 오히려 그를 위해 박수를 쳐줘야 해. 물론 요조는 그마저도 의심하겠지만.



요조는 스스로를 부끄러움이 많은 생애를 보내 왔습니다-라고 표현했어. 요조는 정말로 자신의 생애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꼈겠지만, 나는 그마저도 요조가 자기 자신을 향한 기만이라고 느껴져. 행복조차도 의심하고 겁 먹는 그를 위해 어느 누가 무얼 해줄 수 있겠냐는 말이야? 자기 자신밖에 존재하지 않는 요조의 세상에 누가 발을 들여놓을 수 있겠어? 들여놓으려 하면 의심하고 겁 먹고 도망쳐서 사라지고 마는데.


이런 요조를 다자이 오사무는 액자식 구성으로, 그리고 반점을 활용한 구어체로 훌륭하게 표현했어. 다자이 오사무가 아니었다면 요조를 이렇게까지 표현해내지 못했을 거야. 분명 요조가 스스로를 표현한 것처럼 '이해 못할 광인'으로만 남았겠지. 하지만 다자이 오사무였기에 요조는 '이해 되는 비틀린 인간'으로 남게 됐어. 그런 점에선 요조는 다자이 오사무에게 평생에 이르도록 감사 인사를 해도 모자를 거야.(하지만 요조는 그런 다자이 오사무에게 일말의 감사도 못 느끼겠지)


내가 별점을 3개 반을 준 이유는 간단해. 짧고 굵고 상당히 생각할 만한 내용이었고, 그 내용에 걸맞는 문체와 문장이었지만, 난 이 내용과 의도와 목적에 전혀 공감을 표하지 못했기 때문이야. 적어도 요조가 요시코의 사랑을 확인하려 했어도, 수면제에 대해 물어보기라도 했어도 긍정적으로 봤을지도 몰라. 하지만 요조는 그러지 않았지. 자신을 사랑해주는 여자조차 의심하고 도망쳤어. 내가 요조를 싫어했으면 했지, 좋아할 일은 절대 없을 거야.


한편으로, 3개 반씩이나 준 것은 이것이 비틀린 자들을 위한 헌정소설이기 때문이야. 나는 비틀린 자들을 만나오고 겪어온 사람이지만, 비틀리지 않았기에 이 소설에 끝내 공감은커녕 이해하지도 못했어. 하지만 비틀린 자들이라면 다르겠지. 비틀린 자들이라면, 혹은 그런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의 가치를 좀 더 알아볼 거야. 그래서 3개 반씩이나 준 거고.



짧아. 그리고 굵어. 읽어서 나쁠 것 없어. 공감하고 이해하지 못해도, 요조 같은 비틀린 사람들은 우리 주변에 있을지도 몰라. 크게 웃는 사람은 오랫동안 운 사람이라는 말도 있잖아. 우리 사이에 존재할 그 비틀린 누군가를 조금이라도 이해해보기 위해 이 책을 읽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