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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다 읽은 기념으로 방구석 문예가의 뇌피셜을 싸질러본다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는 아래와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




저자는 처음에는 <꽃은 피었다.>라고 적었고

그 다음에는 담배 한갑을 비우며 골몰하다가
<꽃이 피었다.> 라고 적었다고 한다.

장고 끝에 그는 이 문장을 첫문장으로 선택했고, 출가한 자식마냥 내놓게 됐다.



그는 <꽃이 피었다>를 "사실의 세계를 진술한 언어"라고 했고, 반대로 <꽃은 피었다>를 "정서의 세계를 진술한 언어라고 밝혔다.  

그리고 선택한 문장이 <꽃이 피었다>인 것처럼, 그는 사실 쪽을 지향했다.



두 문장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조사 "이"와 "은"의 사소한 차이이지만 작가가 고민했던 것처럼 두 문장의 뉘앙스가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꽃이 피었다>에서 사용된 조사는 주격조사 "이"이다.
<꽃은 피었다>에서 사용된 조사는 보조사 "은"인데, 두 문장을 비교해보노라면 "이" 쪽이 좀 더 능동적, 주체적으로 행위를 했다는 느낌이 들고, "은"의 경우에는 수동적, 피동적인 느낌이 들었다.
(어디까지나 문알못의 사견입니다)



그렇다면 좀 더 능동적인 뉘앙스를 가진 <꽃이 피었다>라는 문장을 작가는 어째서 "사실"의 세계를 진술했다고 한 것일까?

필자는 문장의 앞에 호응하는 "버려진 섬"과 연결해서 이해했는데. 그가 생각하는 사실의 세계는 자연의 순환, 필연적인 질서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라 풀이했다.

섬은 나라를 뒤흔든 전란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버려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섬에는 여전히 꽃이 피고 있다. 사람과 관계없이 꽃은 수십, 수백, 수천년을 그 섬에서 피고 지고 떨어지기를 반복했으리라.

인간과 관계없이 혹은 인간 본인들도 포함하여, 세상은 주체적으로 순환하고 세상의 질서에 따라 제 각각의 위치에 돌아온 것이다. 누군가가 시킨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능동적으로.

칼의 노래 뿐만 아니라, 소설 남한산성에서도 비슷한 구절이 나온다.

<겨울이 깊었으니, 봄이 멀지 않을 겁입니다. 모진 겨울을 견뎌낸 것들이 그 봄을 맞을 테지요>라든가 마지막에 가서 아무일도 없었다는 양 민들레꽃이 피고, 백성들이 일상을 되찾은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순환하고 자연의 질서에 따라 작동하는 세계는 누군가의 주관과 정념이 끼어들 틈이 없는 지극히 당연하고 객관적인 사실이라서 작가가 선택한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한다.



존나 중구난방이네 ㅅ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