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스릴러물을 볼 때마다 이게 추리/미스테리 장르랑은 묘하게 다르다고 느끼는 게 있어.
바로 "경계"의 존재야. 무슨 경계냐고? 일상과 비일상을 구분짓는 경계 말이야.
스릴러물의 주인공들은 자발적으로 사건을 일으키고 욕망을 추구하고 그렇다기 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사건에 휘말리게 되면서, 그 안에서 능동적으로 움직이면서 사건을 해결하는 경우인 것 같더라고. 뭐 대부분이 그렇지 않더라도, "휘말린" 케이스에 해당하는 스토리들은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가 상당히 요긴한 감상 포인트가 된다고 생각해.
호러 장르도 어떻게 보면 앞서 언급한 스릴러와 비슷하다고 생각해. 둘 다 "일상"을 언급하고, "비일상"이 "일상"을 침범하는 형식이 나타나니까. 그 경계가 어떻게 무너지고, 무너진 경계에 대해 인물들이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감상 포인트인 것이지. 모든 스릴러/호러 장르 작품들이 이런 걸 감상 포인트로 내세우는 건 아닐 테지만, 사실 두 장르 특성상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를 다루는 건 필연적이라고 봐.
아, 일상과 비일상의 정의부터 내려야 되겠구나. 이건 그냥 내가 생각하고 정리한 거라, 이 정의에 반박하고 싶어도 일단 글을 볼 마음이 있다면 참고 봐주길 바라.
일상은 변하지 않는 거야. 혹은 정착된 것. 반복되는 것. 우리가 매일 같이 겪는 일들이 일상이지. 아침에 일어나기(아침에 일어나는 게 비일상이라면 미안), 택배 기다리기, 밥 먹고 이빨 닦기 등등...... 하지 않았을 때 허전한 느낌이 들거나, 혹은 습관적으로 하게 되는 것들. 우리의 대부분은 일상으로 가득 차 있다고 보면 돼. 독갤을 예로 들면 떡밥들이 일정 주기로 계속 돌고 도는 게 일상이라고 볼 수 있는 거지.
반대로 비일상은 변하는 것, 조금 특별한 것, 어떤 사건들을 말해. 예를 들면 코로나 시국도 비일상에 속하고, 독갤에 어떤 이벤트가 열린다면 그것도 비일상으로 볼 수 있겠지? 아니면 정말 새로운 떡밥이 나타나든지. 보니까 여기 리뷰 만화 올라오기 시작한 것도 처음엔 비일상으로 볼 수 있겠지.
일상은 지속적이고 반복적이고 순환적이지만, 비일상은 그렇지 않아. 한시적이고, 휘발성이 강해. 때문에 비일상은 필연적으로 두 가지 길이 남아. 일상으로 편입되거나, 혹은 그냥 사라지거나. 이 두 길을 선택하는 건 때때로 우리 자신이 될 수 있지만, 우리가 원한다고 그렇게 되는 게 아닐 때도 있어. 코로나 시국을 봐. 명백히 비일상이었던 코로나가 결국 일상으로 편입해버렸잖아.
사라지는 경우는 그냥 '한때의 추억' 정도로 남거나, 그마저도 아니게 되는 경우인데, 일상으로 편입되는 경우는 경우가 좀 달라. 모든 비일상이 긍정적으로 일상에 편입되지 않지. 당장 앞서 예시를 든 코로나 시국만 해도 긍정적이라 볼 수 없잖아. 비일상이 일상으로 편입되는 과정엔 일상의 붕괴가 필연적으로 잇따라 와. 비일상이 일상으로 녹아들기 위해선, 그만큼의 일상이 붕괴돼야 한다는 거지. 그래야 정착하고, 순환하고, 반복될 수 있으니까.
어떤 비일상은 아주 사소한 것만 변화시켜.
1. 유튜브에서 정말 괜찮은 밴드를 찾아서 듣게 됐어(비일상)
2. 계속 듣고 싶어서 계속 그걸 들어(일상의 편입)
3. 그걸 듣게 되면서 다른 걸 못 듣게 되거나, 혹은 그만큼 시간을 더 소모하게 돼(일상의 붕괴)
이렇게 구조화시켜 볼 수 있는 거지. 생각보다 엄청 사소하지? 근데 이걸 코로나로 적용시켜볼까?
1. 코로나 사태가 터졌어(비일상)
2. 사회적 거리두기로 밖에 나가지 못하게 되고, 도서관도 닫혀버렸어(일상의 편입)
3. 그로 인해 도서관에 가 책을 읽는 게 낙이었던 독붕이는 침통에 빠지면서 집에서 얌전히 책만 읽게 돼(일상의 붕괴)
독갤이라서 책 관련으로 예시를 들었지만, 코로나가 붕괴시킨 일상은 이것보다 훨씬 크지. 그만큼 큰 비일상인 것이고, 그만큼 컸기에 붕괴되는 일상도 많은 거야.
우리 인간은 관성의 동물이기 때문에,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일상이 위협을 받게 되면 불안해하거나 불편해하는 경향이 있어. 그걸 넘어서서 일상이 붕괴가 되면 여러 반응이 나오게 돼. 비일상이 일상으로 편입되고, 거기에 천천히 적응하기까지 다양한 감정이 오갈 수 있겠지. 누군가는 공포만을 느낄 수 있고, 누군가는 기쁨이 넘칠 수도 있고. 어떤 비일상이냐, 어떤 일상이 붕괴하느냐에 따라서 정말 다양한 반응이 나올 거야.
그래서 대부분은 일상과 비일상 사이에 경계를 나눠. 독갤을 다시 예로 들자면, 누군가에겐 독갤이 비일상일 수도 있어. 일상을 살다가 가끔씩 독갤에 놀러오는 거지. 혹은 정반대로 독갤이 일상인데... 이건 너무 슬픈 예시니 그만두자. 어쨌건 이걸 읽는 너희들이나 나나 어떤 비일상을 겪었을 때 모두 일상으로 편입되지 않잖아? 처음 듣는 노래가 아무리 좋은 노래여도, 내가 귀찮아 하거나, 그냥 어쩌다 찾은 노래로 넘겨버리면 비일상은 일상으로 편입되지 못하는 거지. 그게 바로 일상과 비일상을 나누는 경계야. 앞선 예시에선 "흥미"가 그 경계 역할을 담당하는 거지.
끔찍한 살인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걸 뉴스로 접해듣는 우리는 그 사건에 공감하거나, 혹은 자기 일인것처럼 분노할 수 있어도, 피해자가 자신의 일상과 관련된 사람이 아니라면 다음날 일상을 다시 살아가. 이때엔 "자신의 지인"이라는 조건이 경계 역할을 담당한다고 볼 수 있겠지? 만약 이 경계가 모호하고 불분명하다면 제정신으로 살 수가 없을 거야. 일상이 비일상이 되고, 비일상이 일상이 돼 버리면 온갖 망상과 불안에 시달려야 될 테니까.
그럼 스릴러물 얘기로 돌아와볼까? 스릴러물에선 초반부에 늘 그렇듯 주인공의 "일상"을 비치는 경우가 많아. 주인공은 대충 이러이러한 집에 살고, 이러이러한 가족과 살고 있고, 어떤 직업에, 무슨 성격에 어쩌고저쩌고 쏼라쏼라. 이걸 길게 설명하던, 압축해서 보여주던, 중요한 건 "일상"이 존재한다는 걸 확인시켜주는 것이지.
그런 다음 늦던 빠르던 "비일상"이 침범해와. 무슨 일이 터지는 거지. 애석하게도 주인공은 주인공이기 때문에 원하던 원치 않던 이 비일상으로부터 저항할 수가 없이 휘말리게 돼. 여기서 곧바로 비일상이 일상에 침범하면서 경계가 무너질 수 있고, 아니면 주인공이 사건에 관여는 하지만 일상을 여전히 유지할 수 있지. 경계를 통해서 말이야. 누군가는 가족을 통해, 누군가는 담배나 마약을 통해, 누군가는 집 같은 특정 공간을 통해 일상에서 비일상으로, 비일상에서 일상으로 전환할 수 있어.
하지만 재밌는 소설이라면, "비일상"을 담당하는 사건이 점점 격화되기 시작할수록, 주인공의 일상과 비일상을 구분짓는 "경계"가 흔들리게 돼. 가족이 위협받거나, 집이 테러 당하거나, 본인에게 협박 편지가 날아들 수 있겠지? 아니면 어디서 평범하게 물건 사다가 습격을 받을 수도 있고 말이야. 그렇게 경계가 차츰 흔들리게 되면, 일상과 비일상의 구분이 모호해지게 되면, 그 인물의 심경엔 변화가 일어나. 보통 스릴러물에 치밀한 인간심리가 드러난다고 하면, 이 경계가 무너지기 시작한 때, 혹은 완전히 무너진 때가 될 거야.
그렇게 비일상이 일상에 강제로 편입되면서 일어나는 충돌, 붕괴는 사건이 해결돼도 잔재가 남을 수 있고, 혹은 살짝만 변한 채로 돌아올 수도 있어. 개인적으로 그런 비일상의 강제 편입으로 인한 일상과의 충돌, 붕괴 끝에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남는 편이 좋더라고. 이혼을 하게 된다든지, 자식에게 버려진다든지...... 혹은 미쳐버리거나.
그런데 추리/미스테리물은 스릴러물에 비해서 이런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가 좀 빈약한 느낌이긴 해. 장르 명칭에서부터 차이가 조금씩 있긴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스릴러와 추리를 구분짓는 요소 중 하나가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라고 생각해. 스릴러는 크든 작든 이 경계를 반드시 다루는 것 같거든.
근데 꼭 스릴러물에서만 나오는 건 아냐. 스릴러물은 비일상의 침범이 '부정적인' 영향으로 다가오는 거라면, 흔히 말하는 성장소설 같은 걸 보면 비일상이 '긍정적인' 영향으로 다가오기도 하잖아.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도 따지자면 비일상이 긍정적인 영향을..... 줬지? 물론 다른 비일상이 큰 상처를 주기도 했다만은.
모든 문학이 일상/비일상의 경계를 흐리고 무너뜨리는 거도 아니고. 그냥 그 간극을 짚어낼 뿐인 것도 있으니까. 개인적으로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이 일상/비일상의 경계를 무너뜨리지 않고, 그 간극만 잘 짚었다고 생각되더라.
반대로 철저하게 무너뜨리는 경우는 러브크래프트...를 손꼽을 수 있겠지. 일상을 살던 인물들이 '코스믹 호러'라는 비일상을 통해 철저하게 망가지니까. 김승옥이나 러브크래프트나 스릴러물이 아니란 점에서 나름 스릴러물을 넘어선 작품 감상의 한가지 관전 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싶네.
사실 책을 읽는 건 한 권 한 권이 비일상이라고 생각해. 그 내용이 전부 다르잖아. 똑같은 책을 다시 읽는 것도, 같은 비일상이 아니라 다른 비일상이라고 생각해. 읽는 '나'가 다르니까 말이지. 그런 비일상을 비일상으로 남겨두고 사라지게 두느냐, 아니면 일상으로 편입시키느냐(그 과정에서 일상과의 충돌과 붕괴는 어쩔 수 없는 과정이고)는 그 책장을 덮은 독자의 손에 달린 것이겠지?
난 되도록 내가 읽은 책들은 전부 내 일상으로 편입시키고 싶어. 그러고 싶지 않은 책들도 있긴 하지만...... 반면교사라도 삼아서 내 자신의 일상을 좀 더 멋지게 만들고 싶다고 생각해.
독갤러의 독붕이들의 일상도 책 한 권의 비일상을 통해서 더 발전하길 소망할게. 읽어줘서 고마워.
재밌게읽음 - dc App
꺼마워
잘 쓴거 같은데 비추 수 왜저럼ㅋㅋ - dc App
나도 몰라ㅋㅋㅋ 머 아니꼬왔나 보지
비추는 비문학감상글이나 이런 비전문가의 철학적인 뻘글에 많이 박히더라고... 아는체하는 느낌이 드나봐
ㅇㅎ디씨 성향 생각하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닌데ㅋㅋ 직접 받아보니까 좀 생소하긴 하네
일상의 파괴는 시나리오나 플롯 작법에서 물리도록 나오는 얘기임. 오쓰카 에이지나 제임스 스콧 벨 작법서에서도 이런 식으로 사건에 '휘말리는' 주인공에 대해 분석하는데, 이 둘이 갈라지는 지점도 이 글에서 말하는 추리 미스터리(의뢰-대행물)와 호러 스릴러(물리적,상징적 죽음)의 차이에 잘 들어맞음
https://m.dcinside.com/board/fantasy_new/4853507
일상의 파괴는 알고 있던 거긴 한데, 사실 삶의 성찰적 의미로까지 확대시켜서 생각하느라 그런 쪽 얘기는 쫌 뺐음
좋은 글 링크 ㄳㄳ
물론 오쓰카 에이지도 스콧 벨이 말하는 '돌이킬 수 없는 관문'이 존재한다고 보는데, 그가 가장 자주 분석의 도구로 삼는 우바카와 설화에서 가면을 벗는 단계에 해당하는 장면처럼 정체를 숨기고 능력을 얻은 사람이 능력을 잃거나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장면, 시달소의 엔딩처럼 비일상이 새로운 일상으로 변화하는 과정에 주목한다는 게 다름
그렇고만. 나는 돌이킬 수 없는 관문으로 보기보단 비일상이 일상을 파괴하고 새로운 일상으로 자리잡는 과정으로 생각했단 점에서 오스카 에이지 쪽에 가깝겠구만
오쓰카 에이지의 애국소년론도 일본의 성장소설을 통해 허구적인 비일상이 일상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분석한 사례인데 그 구조주의적 도식성은 둘째치고 몬가 이런 아이디어와 통하는 지점(가짜든 진짜든 비일상을 통과한 나는 과거의 나와는 다르다는 것)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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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마워 - dc App
재밌게 읽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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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분석입니다 선생님 콘 - dc App
ㅎㅎ꺼마워 - dc App
글 개잘쓰노 ㅋㅋ
ㅋㅋㅋㅋ꺼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