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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슨 스콧 카드의 소설 <엔더의 게임>은 그저 특이한 설정이 빛을 발하는 밀리터리 SF로 읽을 수도 있겠지만, <사자의 대변인>과 <제노사이드>까지 엔더의 인생을 모두 다룬 3부작의 연관관계에서 더 크게 생각해 보면 [성장] - [(자기도 모르는 사이) 죄를 지음] - [속죄의 노력] - [구원]으로 이어지는 지극히 종교적인 작품이기도 합니다.

종교적인 관점에서 독실한 종교인들이 오랜 세월 딜레마로 생각해 온 테마가 있습니다.
"인간이 살기 위해 동물을 죽여 먹는 것이 과연 진정으로 죄를 짓는 것이 되는가, 아닌가"라는 것이죠.
불교의 윤회사상이나 기독교 쪽에서도 채식주의자들은 건강 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이유를 들어 육식을 꺼리고 있는데, 이는 모두 인간이 오래 전부터 고기를 먹으면서 마음 속으로 느껴 온 양심의 가책과 의구심에 기반합니다.
이를 확대하면 "내가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남을 해치는 것이 정당한가"라는 쪽으로 번질 수 있는 문제이고, 종교적인 가르침은 "모두가 함께 살 길을 찾아야 하고, 남을 되도록 해치지 않도록 애써야 한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합니다.
애당초 정답이 나올 수 없지만, 인간 본연에 공격성이 잠재된 이유이기 때문에 종교에서는 버릴 수 없는 테마이기도 합니다.
    
주인공 엔더는 자신(인간)이 살기 위해 버거를 멸망시켰고, 이는 "인간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지은 죄" - '원죄'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갑자기 "학살자 엔더"라고 과도한 비난을 뒤집어 씌우는 대목에서 분명히 위화감이 크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죠.
시리즈 전체의 큰 관점에서 작품 설정 상 엔더가 원죄를 짓고 비난받으며 괴로워하는 부분이 꼭 필요했다고 하더라도,  책을 읽으면서 이 부분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는 것은 분명히 작가가 설명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작가의 에러죠 - 제대로라면 독자가 몰입하면서도 이 부분이 확실히 와 닿았어야만 합니다.
버거를 물리쳐 인류를 구한 영웅이이지만 "학살자 엔더"로 규정되어 인류 역사상 가장 나쁜 놈으로 매도당하는 것은, 기독교에서의 "인류의 구원자이지만, 인간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왕따를 당한 예수"의 모습을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이후 <사자의 대변인>에서 엔더가 세상을 떠난 다른 사람의 삶을 변호하는 "사자의 대변인"으로 활동하는 것은, 타인의 영혼을 마지막까지 돕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자신도 용서받기 위해 노력하는 "속죄 행위"에 해당하고, <제노사이드>에서 결국 "행복한 가정"과 "마음의 안정"을 얻고 "버거 여왕의 부활"까지 이루며 삶을 마감함으로써,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원죄]를 저지른 인간이 [오랜 속죄]끝에 [진정한 구원]을 얻는 "종교적인 여정"을 완성합니다.
이처럼 올슨 스콧 카드는 본래 신학을 전공하였던 독실한 기독교인이자 전도사로 활동했던 사람답게, 오랜 세월 고민해 온 인간의 [원죄 - 속죄 - 구원]의 과정을 3부작으로 다루는 '종교적인 SF 시리즈'를 쓰고자 했고, 그것이 바로 <엔더의 게임>, <사자의 대변인>, <제노사이드>으로 이어지는 엔더 위긴 시리즈 3부작입니다.
분명 <엔더의 게임>과 <사자의 대변인> 사이의 연결고리인 "학살자 엔더"로 매도당하는 대목은 설득력이 부족하고, 이는 작가가 완벽하게 자신이 다루고자 하는 대상을 잘 설명해 내지 못한 것이므로... 작품이 안고 있는 한계입니다.
    
본래 작가는 <사자의 대변인>을 쓰려고 했는데, 여기서 원죄를 가진 사람의 속죄를 다루려다보니 애당초 어째서 그렇게 거대한 고뇌와 업을 짊어진 원죄를 지었는가를 설명할 필요가 있어서 <엔더의 게임>을 쓰게 되었죠.
그런데 <엔더의 게임>의 초점이 "원죄 대한 고뇌"  없이 "특이하고 박력있는 밀리터리 SF"로 가버린 겁니다.
주객이 전도된 것이고, 전체 구조를 생각한다면 작가의 역량 부족이거나 명백한 설정 오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더의 게임>은 그 자체만으로도 호평이 이어지면서 대성공을 거둔 것이 문제라면 문제죠.
      
<엔더의 게임> 3부작을 하나의 작품으로 묶어서 전체적인 관점에서 흐름을 살펴보면, 토마스 만이 그레고리우스 교황의 전설을 테마로 쓴 <선택된 인간>과 스토리 흐름이 매우 유사합니다.
종교 소설의 전형적인 구성 "죄 지음(또는 원죄)" > "속죄" > "구원"으로 이어지는 형태로 되어 있죠.
문제는 작가가 처음 구상한 게 전체 스토리 중 몸뚱아리에 해당하는 "속죄"데 대한 부분이었는데, 나중에 앞머리가 필요해서 "죄 지음(원죄)"에 대한 이야기를 쓴 것이 너무 튀다보니... 독자가 이를 일관된 흐름으로 받아들이기에 맵핑이 안되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죠.
전체 3부작을 모두 읽어 보면 그 대목에서 위화감이 너무 큽니다.
    
사족으로...
개인적으로 3부 <제노사이드> 이후의 속편들은 재미 유무를 떠나서 앙꼬없는 찐빵으로 생각합니다.
작가가 오래 고민해 왔고 정말로 말하고 싶어 했던 근본적인 테마 - 종교적 딜레마와 속죄와 구원의 과정이 오리지날 엔더 시리즈 3부작으로 완결되고, 나머지 속편들에는 그러한 성찰이 없거든요.
그냥 돈벌이 하려고 쓴 속편으로 밖에는 생각되지 않고, 작품 속에 영혼이 없으므로 큰 가치를 부여하기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