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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진보정치 진영에서 슈미트를 중요하게 원용하는 철학자를 찾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국 인문대에서 한창 유행 중인(대학을 떠난지 좀 지나서 아직까지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슬라보예 지젝과 조르주 아감벤이 대표적이고, 나 또한 비교문학 수업에서 아감벤을 읽으면서 슈미트의 이름을 접했다. 슈미트의 사유는 (최소한 인문대 내부에서는) 파스텔톤 자계서처럼 불티나게 팔리고 있고, 그를 원용하는 아감벤의 저술은 푸코의 정당한 후계자로서 인문대 학생들의 필독서가 되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우려하는 사람들 역시 적지 않다. 이제는 상투어구가 되어버린 니체의 말, 그러니까 우리가 심연을 들여다볼 때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리라는 말은 슈미트 읽기를 표현하기에 가장 적절하다. 어쨌거나 그는 자유주의 합리화의 과정에 맞서 독재를 옹호한 인물이고, 인간 외부에 있는 지상의 신을 택하느니 차라리 독재자를 택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다른 근대비판자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이유 또한 그것이다. 비판적•해석학적 정치학의 전통을 따르는 철학자라면 누구나 어느정도는 자유주의 정치학에 비판적이기 마련이지만, 근대와 정치적 자유주의를 단순히 비판하는 것을 넘어 그 대안으로 독재를 제시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를테면 <정치신학>(나는 그린비에서 출판된 단행본으로 읽었는데, 여기서는 이 단행본이 아니라 단행본 내부의 팸플릿 <정치신학>을 가리킨다)에서는 17~18세기의 형이상학적•신학적 정치철학이 19세기 이후 스피노자-헤겔 조류의 내재적 역사철학으로 대체되는 현상을 조명하는데, 이 조명만 놓고 보면 푸코가 <안전, 영토, 인구>에서 수행하는 영토화에 대한 조명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푸코가 단순히 근대국가의 자유주의적 권력 형성을 발견하고 비판할 뿐이라면, 슈미트는 그러한 내재성의 철학을 비판하는데서 더 나아가 근대국가의 체제 속에서 사라져버린 절대적 주권자의 지위를 회복시키려 한다.
다른 부분에서도 그 결은 크게 다르지 않다. 본 단행본의 첫번째 팸플릿에서 슈미트는 규범주의적 입장(법질서는 현실의 모든 측면을 고려할 수 있는 법적 규범들의 집합에서 온다는 입장)을 공격하며 질서는 정상상태가 아니라 예외상태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지적하는데, 이러한 규범적 입장의 한계를 비판하는 것은 베버가 현실을 무한한 종합으로 파악한 이래로 그렇게 특별할 것은 없는 관점이다. 그러나 슈미트가 한 발 더 나가는 지점은 인격주의에 대한 옹호인데, 그는 그렇게 근대적 체제의 추상성을 비판한 다음 곧바로 두 번째 팸플릿에서 주권의 구체적인 담지자이자 인격적 존재자인 주권자를 요구한다. 그렇게 슈미트의 정치적 구상 속에서 주권자는 한 명의 구체적인 인격으로서, 예외상태를 선포함으로써 질서를 수호하는 역할을 떠맡게 된다.
내가 슈미트를 읽으면서 놀라는 점은 해석학적 정치철학의 구상과 비판이, 주권자의 복권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만 제외하면 슈미트의 구상과 극도로 닮아 있다는 사실이다. 슈미트 또한 근대비판적 담론의 서자 중 하나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실제로는 그리 놀랄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으나, 어쨌거나 나는 니체의 저 상투화된 문구가 더는 상투어구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충격을 받았다. 내 정치철학적 지향점은 '지상의 신'에 대한 건설 계획으로서의 자유주의, 그에 대한 비판으로서의 비판적 정치철학(+공화주의적 담론), 그리고 여전히 그 현실비판적인 힘을 유효하게 간직하고 있는 듯한 사회주의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인데, 슈미트 같은 케이스를 보면 어쩌면 이러한 균형점이란 애초부터 환상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내게 슈미트는 자유주의와 비판적 정치철학 사이에 놓여 있는 거대한 심연의 표식으로 보인다.
어쨌거나 그런 의구심을 제외하면 슈미트 읽기 이후에도 내 입장에 큰 변화는 없다. 나는 윤리적인 측면에서는 키에르케고르의 신학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그걸 정치적인 측면으로 옮겨오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시큰둥한 입장인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자유주의자들의 낙인을 감수하면서까지 슈미트의 사유를 진지하게 원용할 가치가 있을까 싶은 게, 앞서 지적한 것처럼 그 비판의 격률 자체는 기존의 근대비판자들이랑 큰 차이가 있나 싶어서... 예외상태의 역설 같은 주제는 흥미롭긴 하지만 그런 흥미는 슈미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진지한 성찰의 결과라기보다는 낭만적 아이러니의 일종' 같이 느껴진다.
P.S. 그린비에서 나온 단행본 <정치신학>은 솔직히 추천은 못할 거 같다. 소책자로 나왔어도 충분할 분량인데 12,000원이나 받아먹는 거 실화냐.... 마이너한 인문 분야 번역서가 비쌀 수밖에 없는 건 인정하지만, 슈미트의 사유가 파스텔톤 자계서처럼 팔리고 있다는 비꼼을 괜히 쓴 게 아니다.
잘 읽었습니다
헌법 공부할때나 법철학 공부할때 슈미트적 견지가 궁금하긴한데 한번 볼까 싶긴허네
슈미트는 제 교수님이 어떤 저서에서건 한번은 다루고 가는 부분이었는데, 항상 그 대척점으로는 한나 아렌트를 세웠지요. 익숙한 인물이고 많은 영감 받았습니다 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