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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줄 요약
쥐 : 아직도 안본 만알못은 지금 당장 보면 용서해주겠다.
아돌프에게 고한다 : 데즈카의 이름값은 하지만 이름값만 한다.
팔레스타인 : 좋은 다큐일진 모르겠지만 좋은 만화라곤 생각하진 않는다.
서열을 좋아하는 친구들을 위해 : 쥐>>아돌프에게 고한다 >팔레스타인
만화로서는 전무후무하게 퓰리처상을 받은, 아트 슈피겔만의 '쥐'부터 얘기해보자.
이 만화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분 지을 수 있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아버지의 얘기를 자신이 만화로 그린 것,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현재의 일상.
물론 만화의 주된 소재는 2차대전 전~홀로코스트까지의 아버지의 회상이라 볼 수 있겠으나, 만화를 그리는 아트 슈피겔만의 상황의 시점 역시 중요하며 이 두 부분들이 서로의 내용을 훨씬 더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
예를 들어보자. 아버지는 분명 홀로코스트의 피해자였으며 비극을 겪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아버지에게 일어난 비극을 안타까워하며 이런 일을 일어나게 한 인종차별적 사회와 가치관에 분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를 모시고 집으로 가는데 (아마 이 만화에서 가장 유명한)이런 장면이 나타난다.
우리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인종차별적 사고를 가진 홀로코스트 생존자를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하는가? 생존자의 아들인 작가는 어떻게 행동해야하는가? 두 시점 덕분에 이 만화는 대답하기 힘든 질문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던지게 된다.
위 상황과 반대로 현재의 아버지를 변호하는 과거의 경험도 존재한다. 이 아버지는 시도때도 없이 별것도 아닌 나무성냥이나 옷걸이 같은거로 아들을 귀찮게한다. 그런데 그의 과거는 어떠한가? 아버지는 굶주리는 와중에도 빵 한쪽, 담요 한장을 아껴가며 살았으며 그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을 한 아버지의 쪼잔함을 탓할 수 있는가? 하지만 반대로 이런 경험들이 현재 아버지의 민폐를 정당화시키는가?
이 만화가 대단한 또 다른 이유는 이런 질문들을 던지며 균형있는 관점을 잡는 듯한 이 만화가 지극히 개인적이라는 것이다. '히틀러와 홀로코스트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아버지의 신혼, 현재의 이야기, 아들과의 갈등, 아들 본인의 생각들이 만화의 구석구석을 차지하고 있으며 빠져나올 수 없는 이야기를 그리는데 일조한다.
또한 홀로코스트를 그리는데도 (내 기억속에서는) 히틀러의 얼굴은 전혀 등장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아버지 자신의 개인적인 회상과 그것을 그리는 아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이야기보다 홀로코스트를 사실적이고 그 비극을 명확히 그려낸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다'라는 주장은 만화에서도 사실인 것일까?
마지막으로 이 만화는 '만화'로서 훌륭하다. 스콧 맥클라우드의 '만화의 이해'에 따르면 아트 슈피겔만은 그 누구보다도 실험적이며 도전적이었던 만화가라 한다. 중간에 등장하는 '지옥 행성의 죄수'를 보더라도 그러해보인다. 그리고 이 '쥐'는 전형적인 만화의 형식을 따름에도 불구하고, 만화적 연출과 표현을 유감없이 보여주며 만화 이외의 형식을 생각하기 힘들게 만든다. 홀로코스트에서 유대인을 쥐로 나치를 고양이로 그리는 것보다 더 명확하고 간결하게 표현할 방법이 있을까?
그렇기에 '쥐'는 위대하다란 말이 과장이 아닐 것이다. '쥐'는 유일무이하며 읽을 가치가 분명한 작품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사실 이 글 전체를 '쥐'만 다루더라도 모자랄 것이겠지만 제목을 저렇게 지었으니 다른 작품으로 넘어가보자.
그리고 아직 안읽은 새낀 당장 주문해라
아! 데즈카 오사무 아시는구나! '일본 만화의 신' '쇼와 최고의 지식인'이란 상당히 부담스러운 수식어가 띠지를 장식하고 있는 작품 '아돌프에게 고한다'.
이 만화의 사건들은 세명의 아돌프와 한명의 일본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아돌프 히틀러, 일본 고베에 사는 유대인 아돌프와 나치 고위직의 아들 아돌프, 그리고 독일에서 동생의 죽음 때문에 이 셋에 얽히게 된 일본인 기자 도게.
히틀러가 유대인이었단 설을 사실로 가정하며 히틀러가 유대인이란 증거때문에 이 인물들이 얽힘과 동시에 2차 대전이라는 전체주의의 시대를 조명하는 것이 이 만화의 내용이라 할 수 있겠다. 서프라이즈가 좋아할법한 내용이지만, 애들 동화를 그려도 기본은 먹고 들어가는 데즈카 오사무인데 이런 내용을 못살릴까? '오컬트 연구부'를 그리는 만신이 아니라 진짜 오리지널 만신이다. 낮지 않은 수위와 자극적인 소재, 만신 특유의 시대 고찰로 만신은 자신의 이름값을 해낸다.
하지만 결말부를 보고나면 이 만화가 과연 그 이름값 이상의 작품인지는 잘 모르겠다. 데즈카 오사무는 2차 대전, 홀로코스트 등의 비극을 팔레스타인 분쟁으로 연결지으려는 시도를 하는데, 그 시도 자체는 훌륭할 수 있겠지만 과연 만화속 인물들의 드라마에 잘 어울렸거나 설득력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려는 말, 보여주려는 장면, 실제 역사와의 일치를 위해 포기한 개연성과 플롯의 치밀함이 그만한 가치가 있었을까? 적어도 포기한 것들이 좀 신경쓰이는건 어쩔 수 없겠다.
조 사코의 '팔레스타인'. 조 사코가 팔레스타인의 '인티파다' 후에 팔레스타인에서 몇개월동안 체류하며 겪은 일들을 그린 만화다. 앞의 두 만화에서는 피해자의 포지션이었던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이란 깃발 아래 뭉쳐 팔레스타인인들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정보량으로는 앞의 두 만화를 다 합쳐도 이 만화에 미치지 못할 정도로 압도적인 정보를 전달하며(어쩌면 본인이 팔레스타인 분쟁에 아는것이 없어서 일 수 있겠다), 본인이 체류하면서 경험한 일들과 팔레스타인인들의 목격/경험담이기에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물론 911이라는 대 사건 이전(90년대 초)의 작품이기에 현재의 상황을 아는데는 불충분하겠으나, 이 분쟁에 아는 것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 만화만으로도 새로운 사실들을 상당히 많이 알게 될 것이다.
본인은 이 만화를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는데, 3달이 넘게 걸렸다. 처음 빌려서 1달, 연장해서 1달, 반납하고 다시 빌려서 1달. 물론 빌려놓고 안보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겠지만, 그래도 한번 잡은 책은 어느정도는 기본적으로 읽는다고 생각하는데 이정도 걸렸다. 그 이유는 단순한데, 재미가 없다.
이 만화는 몰랐던 것들, 들리지 않았고 보이지 않았던 이야기, 거리에 흐르는 피를 보여준다. 그런데 만화를 보는게 이런 이유였던가? 적어도 난 아니다.
어째서 이 만화는 '만화'여야했을까? 작가는 현장을 담기 위해 수없이 사진을 찍고 이야기들을 녹음한다. 왜 그 사진들과 음성을 직접 들으면 안되는 것인가? 이 만화를 읽으면서 느낀 만화적 재미는 작가가 우스꽝스럽게 그린 본인의 캐리커처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만약 작가가 카메라를 항시 녹화하면서 다녔고 만화를 그리는 대신 카메라 영상을 편집했다면, 난 이 얘기들이 훨씬 더 재밌었을 것이고 몰입할 수 있었을거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만화'라는 매체를 선택하여 이 얘기를 한 이유를 찾지 못하였다.
그래서 더 아쉬웠다. 만약 이것이 영상이었다면, 혹은 만화적으로 좀 더 재밌었다면, 이 흥미로운 내용이 좀 더 잘 전달되었을텐데.
다시한번 요약
3줄 요약
쥐 : 아직도 안본 만알못은 지금 당장 보면 용서해주겠다.
아돌프에게 고한다 : 데즈카의 이름값은 하지만 이름값만 한다.
팔레스타인 : 좋은 다큐일진 모르겠지만 좋은 만화라곤 생각하진 않는다.
서열을 좋아하는 친구들을 위해 : 쥐>>아돌프에게 고한다 >팔레스타인
사실 '쥐'부분 쓰다가 귀찮아져서 나머지는 대충 씀. 그래도 쥐는 꼭 봐라 제발
진짜 쥐 흑형 부분은 너무 웃겼음
웃기기도 한데 진짜 많은 생각이 들더라
실제로 현실의 많은 소수자 집단들이 저런 딜레마를 안고 살아감...
쥐 장바구니에 담았습니다
만잘알
당장에 흑인들만 해도 동양인 차별 오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