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죽음의 부정》을 읽고 관심이 생겨 이 책을 읽게 됐다. 요즘 주로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과 아서왕 전설, 그리스 신화 등 영웅에 관한 글들을 읽고 있었는데 이 책에 손이 간 것도 자연스러운 수순이 아니었을까 싶다.
책은 200페이지밖에 되지 않고 서문, 각 영웅에 관한 전설(혹은 신화)의 요약, 결론으로 구성도 간단하다. 예수, 헤라클레스, 트리스트람, 오이디푸스, 길가메시 등 총 15명의 영웅의 이야기를 분석했는데, 각각이 아주 짧게 축약되어 실려 해당 전설의 내용을 자세히 알기는, 혹은 재미있게 읽기는 힘들다. 그리고 각주가 각 장의 끝에 실려 있다. 예를 들면 73 ~ 97페이지의 각주가 98, 99페이지에, 6 ~ 22페이지의 각주는 23 ~ 25페이지에 있는(검색해보니 ‘요주’라고 하나보다. 처음 알았다) 식인데, 읽으면서 동시에 찾아보기가 꽤 불편하다.
읽기 어려운 책은 절대 아니지만 군데군데 이해가 잘 안되거나 헷갈리는 부분들이 있었다. 이건 내 지식의 부족이 문제라고 생각된다. 아무래도 내가 심리학에 아무런 베이스도 없으니 쉽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프로이트, 융의 심리학이 ‘인용’되는 책들은 좀 읽었지만 그들의 이론이 정리된 것은 읽어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나는 껍질만 먹어보고 수박 맛을 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동안 느낀 바로 왠지 프로이트의 이론에서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가 중심이 된다고 느껴졌는데, 나는 이 부분이 가장 이해하기 힘들다. 존속살인과 근친상간이라는 모티브가 유아기적 정신세계에서 보편적인 판타지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아이가 성장하며 독립적인 인간이 되려 하고 그 과정에서 아버지라는 보호자-과거에는 신처럼 보였던 사람-를 뛰어넘는다는, 그의 보호 혹은 억압을 극복하고 홀로 선다는 해석으로 ‘아버지를 죽인다’라는 컨셉은 설명도 이해도 가능하지만 그 후에 어머니와 결합하는 것, 그 모든 것이 어머니를 향한 성욕에서 비롯된다는 말은 어떻게 봐도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할 생각도 들지 않는다. 어째서 프로이트에게는 모든 것이 성욕때문인 것인가?
랑크 역시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인간 해석의 핵심 도구로 보는 것 같은데, 그것이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라는 생각은 나만 하는 것이 아닌가 보다. 서론에서 그는 기존의 신화 해석자들이 오이디푸스 이야기의 이런 부분을 천체에 투사해서 근친상간과 존속살인이라는 비도덕적 모티브에의 거부감과 혐오감을 씻어내려 했다고 말한다.
“⋯. 예를 들어 불쾌하기만 한 오이디푸스 전설에 대한 해석이 그러하다.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한다. 그리고 늙어 눈이 먼 채 죽는다. 이는 다음과 같이 상징적으로 풀이된다. 오이디푸스는 어둠의 박해자를 살해하는 태양의 영웅이다. 어머니와 어스름이 깔릴 때 동침하며 그녀의 무릎에서 새벽에 그가 태어난다. 그리고 해가 질 즈음 눈이 먼 채 죽는다.”
확실히 한결 편하게 다가오는 해석이다. 하지만 랑크는 이것이 신화의 창조가 인간의 정신활동에서 비롯되었음을 주장하는 해석 방법을, 랑크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방법의 적용을 막는다고, 그리고 그런 모티브들에 대한 혐오감은 “실제 이런 관계가 어렴풋이 느껴지는 고통스런 깨달음에 대한 반작용일 뿐”이라고 한다. ‘듣고 싶지 않은 진실’이지만, 인간 정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물론 난 여전히 불편하다.
그렇다고 그의 해석이 전부 불편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책에 실린 15개의 전설에 거의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영웅의 탄생에 대한 예언, 유기되는 아기, 그를 데려와 키우는 천한 신분의 부모 등의 상징에 대한 해석과 그것이 기본적으로 어린 아이들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투영이라는 이야기는 확실히 흥미로운 것이었다.
요즘 관심이 많은 분야라 재미있게 읽었다. 심리학 서적도 읽어볼까 싶은데, 신화를 해석하는 심리학적 접근은 재밌지만 과연 심리학 자체의 이야기를 읽어도 재밌게 다가올지는 의심이 든다. 다만 랑크의 책은 더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내에 번역된 책이 단 두 권뿐이고, 나머지 한 권은 도서관 희망비치도서 신청에서 5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거절당해 안타깝다. 작년에 신청을 했어야 했다...
나도 죽부에서 엄청 찬사하길래 검색해봤는데 나온 책이 2권이라서 실망했음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