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개인주의와 아노미의 요람인 도시들은 16세기만 해도 시골만큼이나 공동체와 집단을 중시했고, 주민 모두의 도덕적 안녕을 책임지는 성스러운 공동체임을 자처했다. 시민적 인문주의 정신에 물든 츠빙글리와 마르틴 부처의 신학이 고독한 수도승 마르틴 루터의 신학보다 도시민들에게 더 어필한 이유를 공동체의 이런 성격으로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근대 초기 사람들은 남편, 아내, 자식, 장인, 도제, 이웃, 길드원, 동료 교구민으로서 서로에게 크게 의존했다. 그들이 천국 역시 함께 가기를 원했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닐 것이다.
여기서도 우리는 종교개혁이라는 격변이 중세 후기 종교 문화의 결을 잘라내기보다 이어갔음을 확인할 수 있다.
(중략)
어떤 공동체든 판가름할 수 있는 시금석은 공동체 주변부의 빈곤한 구성원들을 대하는 태도일 것이다. 일찍이 그리스도가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너희 곁에 있다”라고 경고하긴 했지만, 종교개혁기는 빈자들과 나머지 공동체의 관계를 재규정하고 그들을 구제할 실질적 해결책을 고안하는 문제에서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다. 개념으로서의 가난과 구원 드라마의 참여자로서의 가난한 사람들은 중세 가톨릭 문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가난은 성스러운 것이었고, 사도들의 유산이었으며, 가난한 사람들은 비록 이번 생에는 고통받을지언정 다음 생에는 그리스도의 총애와 보상을 받을 터였다. 교회는 걸식하거나 탁발하는 수사들이라는 형태로 가난을 제도화했고, 그들은 설교에서 부자들의 자선 부족을 질타했다. ‘자선(charity)’은 오늘날처럼 단순히 불우한 이들을 향한 이타심을 뜻했던 것이 아니라, 모든 동반자에게 하느님의 호의를 돌려주는, 사회관계가 바로잡힌 상태를 뜻했다. 빈자들에게 적선하는 것은 자애로운 행위, 결국 기부자 본인이 구원받는 데 도움이 되는 선행이었다. 빈자들에게도 이번 생과 다음 생에서 기부자들의 안녕을 위해 기도할 자선 의무가 있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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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근대 초기의 공동체 문화 이해를 돕기 의해 발췌했음.
이런 문화는 서양에 아직 흔적(?) 같은건 남아있는데, 예를들자면 아래 사례가 있겠음.
몇 해 전에 오랜 친구인 예수회 사제 오스발트 폰 넬브로이닝Oswald von Nell-Breuning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평생에 걸쳐 이론과 실천으로 그리스도교 사회론을 옹호한 스승이었고, 몇 안 되는 노동조합 전문가 중 한 사람이었으며, 신학자로서 공동 결정권을 얻기 위해 노력한 투사였다. 100세 생일을 맞은 그가 소감을 멋지게 말하며 이렇게 덧붙였었다.
나는 큰 희망을 품고 마지막 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때가 오면 내가 그동안 돕기 위해 애썼던 많은 노동자들이 내 옆에서 기도하며 지켜 주기 바랍니다.
-《예수》, Klaus Berger 지음, 전헌호 번역
그리고 책은 아니고 디씨글이고 서양이 아니라 조선 이야기지만 아래 링크도 참고하면 좋을듯:
책 이야기:
피터 마셜의 "종교개혁" 추천한다. 좋은 책임.
그렇다면 개인주의는 위험한 허상일까?
개인주의는 자유주의처럼 다의적이지 않나. 그래서 뭐라 말하기 꺼려짐.....
ㅇㅇ 나도 뭐 상세히 알고 말한 건 아니고, 본문에서 말하는 내용이 하나의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이 생각하고 행동함에 있어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언제나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이야기로 이해되어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런 태도들이 있어왔고 그럼으로써 사회가 지탱되었던 건데 현대에 들어오면서 경제인으로 대표되는 온전히 개인적일 수 있고 개인적이어야 한다는 태도가 등장하여 세계를 조금씩 갉아먹고 있다는 이미지가 나는 떠올라버려서... 그걸 개인주의라는 말로 표현해 봤던 것... 나 또한 그렇기 때문에 공동체를 시야에서 떨어뜨리지 않는 태도와, 선의를 기반으로 한 생각과 행동들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요즘 슬슬 하는 중이라, 글쓴이가 종종 쓰는 공화주의라는 신념체계도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