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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된 형식(예술작품)과 경험을 구성하는 것(일상의 사건, 행위 고통 등)의 연속성을 회복해야한다는 입장을 실험을 통해 받아드린다면, 놀라운 하나의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예술작품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선, 우리가 보통 미적인것으로 간주하지 않는 경험의 평범한 힘과 그 조건들을 살펴봐야한다. 우리는 우회로를 통해 예술이론에 도달해야한다. 이론이란 이해, 통찰력과 관련된 것이지 경탄이라는 감정분출과 관련된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꽃을 볼때 그 꽃에 대해 이론적으로 전혀 몰라도 색과 형태, 향기만으로 우리는 꽃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꽃의 개화를 이해하려면, 꽃의 성장을 좌우하는 토양, 공기, 수분, 햇빛 등의 것을 알아야한다.
모두가 위대한 예술작품이라고 말하는 파르테논 신전은 어떤 개인이 경험 할 때만 미적인 지위를 가진다. 만약 어떤 사람이 개인적인 향유를 버리고 그 건축물에 대해 커다란 이론을 형성하고자 한다면, 그는 자신이 보고 있던 신전에서 눈을 돌려 파르테논을 만든 아테네 시민들을 봐야할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신전을 예술작품이 아니라 아테네 시민들이 기념물로 만든 그 경험을 봐야한다는 것이다. 주의할 것은 아테네 시민들을 욕구를 가진 한 인간으로 바라봐야 하고 사회학자처럼 자신의 목적과 관련된 소재를 찾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사회학자처럼 소재를 찾는 것을 검증이라 생각하면 안 된다. 파르테논에서 구체화된 미적 경험을 이론화 하고자 하는 사람은 그 시대 사람들(파르테논의 제작자나 신전에 만족을 느낀 시민)과 오늘날의 우리들 사이의 공통점을 생각해야한다.
내가 잘못이해한 내용, 오타, 번역말투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질문도 받습니다. 전 글에 멍청하게 소제목 안써서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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