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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월 12일은 기독교 종파에서 제일 중요시 하는 날인 부활절이다. 그래서 이를 기념하고자 루터의 95개 논제를 읽었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개혁교회의 표어를 세우게 된 시발점아며{개혁된 교회는 언제나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다섯 솔라(Sola Scriptura, Solus Christus, Sola Gratia, Sola Fide, Soli Deo Gloria- 오직 성경, 오직 그리스도,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하나님께 영광)를 제창한 마르틴 루터의 책인 95개 논제만큼 적당한 책이 없다 생각했다.
그래서 작년 10월에 나온 최주훈 역의 마르틴 루터 95개 논제를 사서 읽었다.
읽고나서 든 생각은 총 두가지였다.
1. 생각보다 전투적이지 않고, 오히려 토론을 유도하는 글이다.
2. 이 책의 서평은 논제 그 자체보단 그 당시 상황과 루터란 인물에 대해 말하는 것이 좋겠다
이에 따라 세가지 단락을 나눠서 써봤다.
루터란 인물에 대하여
라테란 5차공의회와 면죄와 면죄부란 무슨 의미인지
95개논제에 대한 몇가지 얘기
이렇게 세가지 단락으로 나눠봤다.
그럼 루터란 인물에 대해 먼저 간략하게 써보고자 한다. 그런데 루터란 인물의 생애보다는, 루터 이전과 동시대의 종교개혁자들과 루터를 비교하는게 좋을 듯 하다. 그래서 세가지 인물과 비교해보고자 한다.
위클리프, 츠빙글리, 칼벵이다
위클리프: 영국의 종교개혁가로 루터이전의 개혁가로 성경번역을 하였으며, 세속군주보다 교황의 권위가 낮다 주장했으며, 카톨릭의 성찬식의 이론인 화체설을 부정하였다. 또한 그는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이단판정을 받고 부관참시를 당했다
츠빙글리: 스위스의 종교개혁가로, 루터와 동시대의 인물이며 종교개혁가중 가장 유명하고, 개혁교회에 많은 영향을 끼친 신학자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된 말씀임을 말하며, 성경의 권위보다 높은 건 어떤 것도 없다 주장하였다. 또한 성만찬을 상징적으로 해석하였다. 또한 츠빙글리는 스위스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용병업 반대, 숙박업 반대등을 주장하였으며, 이를 반대하며 로마카톨릭과 연합한 세력과의 전쟁에서 목숨을 잃었다
칼뱅: 프랑스 출신이지만 위그노 박해로(애초에 위그노가 프랑스의 칼뱅주의자를 뜻하는 말이다) 스위스로 건너가게 된 인물이다. 칼뱅은 신학의 체계성을 시도하였으며, 예정론이라는 난해하면서도 널리 알려진 구원관을 정립하였다. 또한 개혁 신학을 완성하였으며 에큐메니컬 운동(교회 일치운동)을 하였다.
세 인물에 대해 간략하게 써보았으니, 루터에 대해서도 간단히 써보도록 하겠다
루터는 독일의 종교개혁가로 95개조 논제를 통해 로마 카톨릭의 여러 부분들에 반기를 들었으며, 종교개혁의 시초를 마련하였다. 또한 쯔빙글리의 성만찬 이론을 거부하며 공재설을 말하였다. 또한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하였다. 또한 루터는 문학사, 문학석사의 학위를 가지고 있었고 법학을 하려 법대 박사과정에 진학하였지만 신학의 소명을 받아서 수도원에 입회하고, 신학박사가 되었다. 즉 루터에게는 면죄부에 대해 고발하고, 로마 교황에 대한 고발은 신학박사로서의 소명에 따른 일이었다.
이렇게 보면 루터가 다른 종교개혁가들과 그다지 차이가 없어 보이긴 한다. 하지만 루터는 앞의 종교개혁가들에 비하면 교회개혁의 열망은 크게 없었다. 이는 루터가 농민개혁을 그다지 지지하지 않는 모습에서도 알 수 있다. 또한 루터와 로마 카톨릭의 차이는 거의 없다는 비판이 있다.
이유는 두가지다.
1. 로마 카톨릭의 예식을 그대로 수용하였다.
2. 츠빙글리의 성만찬 논란과 관련해서 나오는 비판이다.
예식의 경우는 루터의 케릭터가 강하게 드러나는 면이다. 그는 창의적인 면 보다는 해석적인 면에 강했기에, 또한 감성적인 면에 호소하는 면이 짙으며 주저하는 모습을 많이 보였다. 그렇기에 로마 카톨릭의 예식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을까 라고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루터는 분명히 로마카톨릭의 스콜라주의 신학을 분명히 비판하였으며 루터는 성만찬에 있어서, 빵이 어떻게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하는가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닌, 신앙에 의하여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현존하는 하나님의 은총을 체험하는 것이 성찬이라 말한 것이다. 로마카톨릭과는 분명히 다른 지점이다.
루터에 대해 대략적으로 써봤으니 95개조 논제의 이해를 위한 두가지 중요한 내용을 말해보고자 한다. 바로 라테란 5차 공의회와 면죄와 면죄부에 대해서다.
먼저 라테란 5차 공의회를 먼저 말해보고자 한다
공의회는 주교들이 모여서 카톨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회의라 할수있다. 총 21번이 열렸으며, 그중 초기의 일곱 공의회는 동로마 황제가 소집하였다. 하지만 우리가 바라봐야 할 공의회는 이후의 14번의 공의회다 특히 카톨릭이 인정하는 공의회 횟수를 주목할만 하다.
1300년에 걸쳐서 총 14번이 열렸다. 이는 교회가 사회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공의회다 라고 해석할 수도 있는 숫자다. 최종원 교수의 말을 인용하고자 한다
대략 1백년전에 한번 꼴로 열린 이 가톨릭 공의회는 중세부터 근현대까지 서유럽에서 마주친 심각한 현실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대응을 보여줍니다. 이 공의회의 역사는 교회와 사회의 상호작용의 기록 그 자체입니다.,(공의회와 사회사-복음과 상황 338호)
이처럼 공의회는 상당히 중요한 회의였다. 그런데 이 공의회를 마치고 몇 달 뒤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이 공의회는 사회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공의회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라테란 5차 공의회 결과를 말하자면 상당히 처참했다. 교회개혁은 커녕 이탈리아 반도의 지배권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급급한 교황들이 연 공의회다 보니 교회개혁을 막기위해 그저 압박적 조치들(책의 인쇄 전 주교의 허가가 있어야 함)만 있었을 뿐 시대의 흐름은 읽지 못하였으며, 결국 종교개혁은 일어났다. 최종원 교수는 이 공의회를 종교개혁의 출발점으로 보는 관점에 대해 말하기도 하였다.
사면증 즉 면죄부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원래는 사면증이란 표현이 옳지만 모두에게는 면죄부란 단어가 더 유명하므로 면죄부란 용어를 사용하도록 하겠다)
여기서 말할 면죄부와 뒤에서 언급할 면죄부는 아예 결이 다르다. 자세한건 뒤에서 말하고, 면죄부 자체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하겠다
죄사함 즉 대사란 상당히 오래된 개념이다, 초대교회에서부터 있었다. 하지만 신자가 죄를 범하고 고해신부에게 죄 고합니다 라고 단순하게 끝나는 문제가 아니었다. 5세기까지는 죄를 고한 뒤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의 고행과 고난을 통해서 이 죄를 사함받아야 했다.
6세기에 들어서 고해신부의 재량으로 고난을 일상생활속의 신심행위와 자선행위로 대체를 하였으며 10세기에 이르러선 교황들은 사면받는 이에게 수도원과 성당에 대한 재정적 후원을 조건으로 사면을 부여하였다. 그리고 12세기에 들어서 대사의 개념이 구체적으로 잡혔으며 이에 따른 교회의 수입이 증가하였다. 그리고 13세기에는 대사증 즉 면죄부가 남용되기 시작한다.
거기다가 이 대사증은, 앞서 말했듯, 남용되기 시작하면서 신학적으로 정리되지 못하였고, 교회는 이 대사증에 대해 공식적인 답변을 내놓지 못하였다.
95개조 논제를 이해하기 위해선 공의회의 개념과 대사란 어떤 의미며, 이에 따른 면죄부란 어떤 의미인가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가 필요하기에 간단히 적어보았다.
그럼 이제 95개 논제에 대한 몇 가지 얘기와 루터가 문제시 삼은 그 시대 면죄부의 문제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95개 논제는 싸우기 위한 전투적인 문서가 아니다. 대학 사회에서 토론을 위해 준비된 논제이며, 완성된 교리의 설명이나 반박문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진지한 물음이다. 그리하여 수사학적 구조를 따라 논제들이 구성되어 있다.
95개논제 자체는 굉장히 유명하다. 당연하다 세계사 교과서에서도 95개 논제가 나온다. 하지만 정작 읽은 사람은 정말 드물다. 실제로 한국 개신교인중 95개 논제를 읽은 일반 평신도들은 정말 몇 안될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논제가 라틴어로 써 있다. 더 어이없는 사실은 논제에 대한 해설조차 라틴어로 썼다
라틴어는 그 시대에서도 지식인들만 쓰던 언어다. 이 언어를 다룰줄 아는 사람도 몇 없었다, 거기다 이를 독일어로 번역한 사람은 루터 본인이 아니라 뉘른베르크의 카스파츠 뉘첼이 번역했다 알려져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독일 전역에 이 95개 논제는 널리 퍼졌으며, 루터 본인은 단 2주만에 전 독일에서 이 논제가 읽혔다고 과장해서 표현할 정도였다. 분명한건 선례가 없는 상당한 일이긴 하였다.
또한 95개 논제가 실제로 뉘른베르크 성체교회 정문에 개시되었냐 도 수수께끼다
1961년 카톨릭 역사가인 에르빈 이절로는 이 사실이 신화와 가깝다고 단언하였고 반세기동안 이는 정설로 굳어졌다. 그런데 2018년 얘기가 뒤집어졌다. 뷔르츠부르크 대학의 벤야민 하셀호른과 미크로 구트야는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였는데, 루터가 성체교회 정문에 95개 논제를 개시한 것은 사회의 통념 즉 공리나 다름없었기에 언급조차 불필요했단 이론이다.
또한 루터는 마그데부르크와 마인츠 교회의 대주교인 알브레히트경에게 보낸 서신에 사인을 Luther라 하였다. 이는 그전의 이름이 Luder라는 것을 따져보면 논제개시의 역사성은 충분히 논증된단 것이다.
그리고 이 논란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이렇게 95개 논제는 내용도 라틴어로 써져있으며, 개시한 곳 조차 신화냐 아니냐를 놓고 싸우는 참으로 재밌는 문서임을 알 수 있다.
그럼 루터가 문제시 삼은 그 시대 면죄부의 문제에 대해 말해보겠다
그 시대 면죄부는 지금까지 발행했던 면죄부와 차원이 달랐다.
1. 먼저 이 면죄부를 발행하기 위해 앞전 면죄부들의 효력을 전부 정지했다.
이건 1511년 종교개혁 6년전일때에, 이것에 대한 불만이 제국의회에 문서로 접수될 정도였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그렇다.
내가 면죄부를 사서 죄의 값을 치렀다, 그런데 면죄부를 재발급 하면서 이전의 사면을 무효화시킨다면, 이전의 사면과 지금의 사면은 효력이 다른가에 대한 의구심이 들것이다.
2. 또한 면죄부의 값이 그렇게 싸지 않았다. 귀족들에겐 23굴덴, 가장 낮은 단계인 어린이들 0.5굴덴이었다. 루터중앙교회의 최주훈 목사의 말에 따르면 1굴덴은 백만원에 육박했다. 즉 사면증의 값은 귀족들에겐 2300만원, 어린이들에겐 50만원이었다. 실로 엄청난 금액이다
(어찌보면 타당한? 금액이다. 중세 교회의 건축 및 전쟁등의 비용을 사면증으로 충당해야 했으므로 이 비용은 어찌보면 타당하다. 거기다가 교회는 고리대금업 같은 금융업을 하지 않았다. 교회의 돈벌이 수단이 사면증 뺴면 없었다.)
3. 앞서 말했듯 면죄부가 신학적으로도 정리가 되질 않았다. 루터는 56조에서 이를 언급한다
교황이 발행하는 면죄부는 '교회의 보화'라는 교설을 근거로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교회 안에서 충분히 논의 된 적도, 알려진 적도 없다
4차 라테란 공의회에선 면죄부의 남용에 대하여 경고하였지만 이를 무시하고 교황인 레오10세는 면죄부를 판매하도록 하는데, 루터가 살았던 독일에선 좀더 어이없는 상황을 교황과 대주교가 연출한다.
4. 독일내에서의 면죄부의 판매는 교황과 알브레히트 대교주의 야합에 의한 결과다.
일단 교회법상으로 두 교구의 대주교 겸직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알브레히트는 마인츠와 마르데부르크의 대주교를 겸직하였다. 이는 레오10세가 베드로 성당을 건축하기 위하여 알브레히트 대주교에게 1만굴덴을 받았으며, 이에 대한 대가로 교구내에 면죄부의 판매를 허가하였다. 애초에 판매부터 불법적으로 이뤄진 것이다.
5. 면죄부의 효력이 너무나도 대단했다.
이 면죄부는 기존 면죄부와 효력이 너무나도 차별화됐다. 그만큼 사면의 효과가 엄청났다. 어느정도였냐면 루터가 있던 사역지인 뉘른베르크는 면죄부의 판매를 못했다.(이 이유도 웃긴다. 루터가 있던 곳은 작센지역이었는데, 작센의 선제후는 성유물을 어마어마한양을 가지고있었다. 그리고 이를 둘러보게 하는 관람료가 상당한 수입이 됐다. 그렇기에 작센지역에선 면죄부 판매를 금지했다.)
그런데 면죄부를 사겠다고 엘베강을 건너서가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면죄부를 구매하는 사람들이 늘었고 이에 루터는 면죄부 지침서를 구하여 이를 분석하였는데 이 면죄부는 상상도 못할 효력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돈을 더 내면 특별 면죄부를 구입하였는데 이것의 특권은 더더욱 대단했다.
일반 면죄부와 특별 면죄부에 담긴 '은총'에 대해 써보도록 하겠다
일반 면죄부: 이 사면증에 담긴 첫 번쨰 은총은 모든 죄의 완벽한 사함이다. 이보다 더 큰 은총은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총을 잃고 죄로 가득 찬 인간이 온전한 사면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며, 이것을 통해 한 번 더 하나님의 은총을 누릴 수 있게 된다. 더욱이 우리는 이 증서를 통해 하나님의 엄위하심을 모독한 죄로 연옥에서 치러야 할 모든 벌을 사면받고, 연옥의 고통은 지워진다.
특별 면죄부: 전략, 이제껏 발행된 적이 없던 특권에 관한 것이다. 특별증서는 교황청이 발행하는 공적 문서로서, 교황의 특권을 나눠준단 보증이 담겨 있다. 그 특권 중에는 고해자가 고해신부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이것을 통해 자신이 속한 교구에서 받아야 할 징계를 피할 수 있었다)와 증서의 소유자가 지명한 고해사제가 고해자의 모든 죄를 용서할 수 있도록 만드는 권리가 포함되어 있었다
일반 면죄부의 효과를 간단히 말하면 예수를 돈주고 사는 수준이며, 특별 면죄부의 효과는 교황의 권리를 돈으로 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일반 성도인 나도 어이가 없는데 신학박사로서 소명을 받은 루터의 마음은 더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루터는 자신의 소명에 따라서 펜을 들었고 이 95개조 논제를 쓸 수 밖에 없었다.
이제 보통같으면 95개 논제에 대해 좀더 본격적으로 소개하고, 이에 대해 써야하겠지만, 이 글은 앞서 말했듯 토론을 위해 준비된 논제이다. 내 능력으론 이를 따로 소개하고 편집할 능력이 없으므로 생략하겠다. 이 글을 보시고 흥미가 있으신 분들은 구매해주시면 감사하겠다
마치도록 하겠다.
95개조 논제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면서, 부활절을 기념하여 이보다 읽기 좋은 책은 없다 생각했다
이 책은 세계사적으로도 중요한 기점을 마련한 책이다. 궁금하신 분들은 한번 봤음 좋겠다.
어지러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다. 평안한 하루가 되기 바라는 바이다.
독갤의 보배 추
아이고 감사
나도 개신교 신자라서 잼께 읽었음 ㄱㅅㄱㅅ
그럼 신자버전으로 읽을텨?? 마지막 부분을 예수를 돈으로 산다를 퉁치고 몇마디를 더 얹혔거든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bokeum&no=1305&page=1
참고하시길
ㅇㅇ 잘 읽었어 진짜 면죄부 얘기는 어이가 없다 못해서 썩을 대로 썩었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었음ㅋㅋㅋ 세계사 시간에선 95개조 반박문이라고 배웠었는데 논제였다는 건 이참에 알게 됐네
원제가 95개 테제로 되어있으니 한글제목인 논제가 맞는 단어라고 나도 생각함
감사
좋은 글 감사합니당
읽어줘서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