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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다양한 방식은 불멸성을, 관조에서 절정에 이르는 순수사유는 영원성을 전제한다.
-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에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불멸한다'는 것과 '영원하다'는 것을 동의어로 사용한다. 그러나 유럽의 철학적•예술적 전통에서 이 두 어휘는 조금 다른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불멸한다는 것은 그것이 시간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대로 영원하다는 것은 그것이 시간의 바깥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 그리고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을 분석하는 것에서 이 두 목표 사이의 차이를 발견한다.
불멸은 활동적 삶(vita activa)의 목표이다. 그것은 정치적인 과정에서의 명예와 성공을 통해 시간 속에서의 영속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누군가 비록 육체적으로는 죽음을 맞이했다 할지라도, 그가 세속의 시간 속에서 기억되고 있는 한 그는 불멸하는 명예를 잃어버리지 않은 것이다.
대조적으로, 영원은 관조적 삶(vita contemplativa)의 목표가 되는 것이다. 영원성은 시간 속에서의 영속이 아니라 시간의 바깥에 놓여 있는 것이다. 현세적인 모든 것들이 무너지고 마침내 불멸하는 것들마저도 끝을 맞아한 뒤에도, 영원한 것은 이제와 함께 처음과 같이 남으리라. 천지의 창조에서 최후의 심판에 이르는 서양의 시간 이해에서 세속성은 언제나 동시에 시간성을 의미했다. 그러므로 영원성은 세속 속에서는 달성될 수 없는 것이며, 세속의 문제와는 무관한 것으로 여겨졌다.
우리가 예술가가 예술을 통해 불멸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그의 이름이 현세 속에서 결코 잊히지 않고 기억되리라는 찬사다. 이를테면 소포클레스의 비극이 불멸하는 인류의 고전이라는 평가 역시 이런 맥락 아래에 있다. 세속의 세계가 끝나기 전까지, 소포클레스의 작품들은 언제까지나 다시 읽히고 다른 예술가들의 지침이 되어줄 것이다.
예술을 통한 영원은 그런 방식으로는 달성될 수 없다. 서양예술의 이념이 시간 속에서 혹은 순간 속에서 영원을 구현하는 것에 있다고 한다면, 예술은 애초부터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을 약속하는 가상인 셈이다. 시간 바깥에 있는 것을 시간 속에서 표현해야만 한다는 낭만적 아이러니가 언제나 영원성에 대한 추구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 그래서 예술은 영원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덧없는 것이다. 예술작품은 우리에게 영원한 것에 대한 인상을 남기려 하지만, 그런 인상은 한밤중에 번개가 칠 때 우리 눈 앞에 남는 잔상처럼 덧없이 사라져버리고는 만다.
-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에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불멸한다'는 것과 '영원하다'는 것을 동의어로 사용한다. 그러나 유럽의 철학적•예술적 전통에서 이 두 어휘는 조금 다른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불멸한다는 것은 그것이 시간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대로 영원하다는 것은 그것이 시간의 바깥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 그리고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을 분석하는 것에서 이 두 목표 사이의 차이를 발견한다.
불멸은 활동적 삶(vita activa)의 목표이다. 그것은 정치적인 과정에서의 명예와 성공을 통해 시간 속에서의 영속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누군가 비록 육체적으로는 죽음을 맞이했다 할지라도, 그가 세속의 시간 속에서 기억되고 있는 한 그는 불멸하는 명예를 잃어버리지 않은 것이다.
대조적으로, 영원은 관조적 삶(vita contemplativa)의 목표가 되는 것이다. 영원성은 시간 속에서의 영속이 아니라 시간의 바깥에 놓여 있는 것이다. 현세적인 모든 것들이 무너지고 마침내 불멸하는 것들마저도 끝을 맞아한 뒤에도, 영원한 것은 이제와 함께 처음과 같이 남으리라. 천지의 창조에서 최후의 심판에 이르는 서양의 시간 이해에서 세속성은 언제나 동시에 시간성을 의미했다. 그러므로 영원성은 세속 속에서는 달성될 수 없는 것이며, 세속의 문제와는 무관한 것으로 여겨졌다.
우리가 예술가가 예술을 통해 불멸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그의 이름이 현세 속에서 결코 잊히지 않고 기억되리라는 찬사다. 이를테면 소포클레스의 비극이 불멸하는 인류의 고전이라는 평가 역시 이런 맥락 아래에 있다. 세속의 세계가 끝나기 전까지, 소포클레스의 작품들은 언제까지나 다시 읽히고 다른 예술가들의 지침이 되어줄 것이다.
예술을 통한 영원은 그런 방식으로는 달성될 수 없다. 서양예술의 이념이 시간 속에서 혹은 순간 속에서 영원을 구현하는 것에 있다고 한다면, 예술은 애초부터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을 약속하는 가상인 셈이다. 시간 바깥에 있는 것을 시간 속에서 표현해야만 한다는 낭만적 아이러니가 언제나 영원성에 대한 추구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 그래서 예술은 영원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덧없는 것이다. 예술작품은 우리에게 영원한 것에 대한 인상을 남기려 하지만, 그런 인상은 한밤중에 번개가 칠 때 우리 눈 앞에 남는 잔상처럼 덧없이 사라져버리고는 만다.
불멸은 인간 - 예술의 영역이고, 영원은 신의 영역 이런건가? 잘읽었음. 한나아렌트 찍먹해보고싶어지네 ㅈㄴ어렵다던데
글 자주써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