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을 보아도 알 수 있듯, 나는 나쓰메 소세키를 사랑한다. 그의 모든 소설을 읽었고, 도쿄에 있는 그의 기념관도 견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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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찍지 않지만 그의 얼굴이 새겨진 옛 1000엔도 가지고 있다. ( 마음만 먹으면 구하기 쉽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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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오늘 얘기하고 싶은 작가는 나쓰메 소세키가 아니다. 예전에 나는 소세키 만년의 작품 “점두록”에서 “군국주의”에 대한 소세키의 생각이 담긴 글을 읽고 있었다. 그 글을 다음과 같다. 

 

“이전에 “기싱”이 쓴 책을 읽어봤더니 “어렸을 때 학교에서 체조를 강요당한 것이 대단한 고통과 불쾌감을 주었다”는 내용이 자세히 서술되어 있었고 말미에 “만일 우리 영국에서 본인의 의사를 역행하면서까지 징병을 강요하게 되었다고 가정한다면 나는 어떤 심정이 될 것인가?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날리 없지만 그냥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참을 수 없다”고 첨가되어 있었다. “기싱”처럼 혼자 지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특별하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영국인에게 자유를 사랑하는 마음은 거의 제2의 천성으로 일반적으로 널리 퍼져 있으므로 강제 징병에 대한 혐오감은 누구라도 기싱에 뒤지지 않는다고 봐도 틀림없다. 그 영국에서 무리하게도 국민을 병적부에 올리려고 하는 시도에는 지대한 곤란함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곤란함을 무릅쓰고 새로운 의안이 제출되어 또한 그 의안이 과반수에 의해 통과되었다고 한다면 실제로 대단한 변화가 영국 국민의 머릿속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그리고 이 변화는 이미 독일이 정면으로 내세우고 있는 군국주의의 승리로 볼 수밖에 도리가 없다. 전쟁이 아직 해결되지 않는 동안 영국은 정신적으로 이미 독일에 패배했다고 평해도 좋을 정도인 것이다. “ 


 이 글은 1차 세계 대전 즈음의 글이라 나중에 일어나는 다음 세계 대전에서 본인의 국가가 군국주의에 치닫게 되어 그 재앙을 확인하지 못하고 위장병으로 이른 나이에 죽은 것이 본인에게는 다행이었다. ( 그래도 “명암”은 완성하고 죽지.. ) 그가 빨리 죽어서 “모리 오가이”와같은 과오가 없었기에 일본의 국민 작가 타이틀을 거머쥔 것이 아니냐는 말도 들린다. 아무튼 그런 사실을 이 글에서 중요하지 않다. 나는 글을 읽을 때 인물, 특히 “작가”의 이름이 나오면 무조건 검색을 하는 습관이 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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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기싱 ( George Robert Gissing ), 1857.11.22 ~ 1903.12.28 

 

영국 소설가 겸 수필가. 중류 이하 빈민 계층의 생활을 사실적으로 그려 유명하다.《신 삼류문인의 거리》,《유랑의 몸》에서 지식인 등이 그의 교양 때문에 자기가 속해 있는 빈민층에 안주하지 못하는 비극을 다룬 점에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에 대해서는 비관주의로 기울어 후기에 갈수록 고전적 교양의 세계를 동경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조지 기싱 [George Robert Gissing] (두산백과) 


나는 지식인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지식인을 동경한다. 솔직히 나는 내 명예와 내 지식으로 사람들에게 사랑받기를 원하는 한낱 인간일 뿐이니까. 내면의 성공따위는 더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기에 내가 기싱에 관심을 가진 것은 그가 “가난한 지식인”을 소재로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나 자신이 여태 남들에게 자랑할만큼 대단히 가난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가난때문에 슬픈 일이 더러 있었기 때문에 나에게 구미가 당기는 주제였던 것이다. 좀 더 찾아보니 “영국이 배출한 최고의 소설가”라는 “조지 오웰”의 찬양부터 “토마스 하디” 말고는 영국에서 주목할만한 자연주의 작가는 없다라고 말한 어느 교수의 무시까지 여러가지 평가를 받는 작가였다.  그의 작품 중 “헨리 라이크로프트의 내밀한 기록” ( The Private Papers of Henry Ryecroft )라는 작품이 영국 수필 문학의 고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당시 “에세이” 장르에 큰 관심이 있던 나는 얼마 후 그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바로 그 책에서 소세키가 읽은 부분을 찾아낼 수 있었다. 


“보아하니 누군가가 징병제도를 찬양하며 달콤한 목청을 높이고 있다. 우리는 오래간만에 한 번씩 평론지나 신문에서 이런 종류의 기사를 읽을 수 있을 뿐이지만, 대부분의 영국 사람들이 이런 기사를 읽으면 나만큼이나 지긋지긋하게 두려움과 역겨움을 느끼리라고 믿고 싶다. 징병제도가 영국에서는 있을 수 없다고 누가 감히 장담할 것인가? 도대체 생각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특권 민족이 서서히 애를 쓰며 억제해 온 인간의 야만적 힘에 대한 우리의 방비책이 얼마나 허술한가를 잘 알고 있다. 민주주의는 문명 세계의 모든 아름다운 희망에 대한 위협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군국주의를 근거로 한 군주 세력이 부자연스럽지 않게 민주주의와 결탁하여 부활하고 있다는 사실은 앞으로의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한다. 살육을 일삼는 군주가 대두하기만 하면 여러 민족들은 서로의 목을 쥐어뜯게 될 것이다. 만약 영국이 위기에 처한다면 영국인들은 싸울 것이다. 이런 극단적인 경우에는 별 도리가 없다. 그러나 당장 아무 위험이 없는데도 영국인들이 국민 개병제도라는 저주 아래 굴복해야 한다면 우리 섬나라 사람들의 삶은 얼마나 황량해질 것인가! 나는 영국인들이 신중함의 정도를 넘어서라도 인간됨의 자유만은 지킬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한 유식한 독일인이 언젠가 한번 나에게 자기의 군대 복무 시절 이야기를 하면서 그 기간이 한두 달만 더 길었더라면 자살을 해서라도 거기서 해방되려고 했을 거라고 했다. 나 자신의 용기로는 단 1년 동안도 버치지 못했을 것임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모욕감, 분노 및 혐오감 등이 나를 자극하여 거의 미칠 지경에 이르게 했을 것이다. 학창 시절에 우리는 1주일에 한 차례씩 운동장에서 ‘훈련’을 받곤 했다.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그 당시 자주 나를 아프게 하던 그 혹심한 비참함에 다시 몸이 떨린다. 그 기계적 훈련의 무의미한 과정 그 자체가 나에게는 거의 견딜 수 없었다. 나는 줄을 선다든지 신호에 따라 팔다리를 내민다든지 동작의 일치를 강요받으며 발을 탕탕 구르는 소리 따위가 싫었다. 개성의 상실이 나에게는 그저 창피한 일이었다. 그리고 내가 흔히 당했듯이 훈련하사관이 줄을 서고 있는 나에게 뭔가 서툴다는 지적을 하며 꾸지람을 할 때라든지 혹은 나를 “7번!”이라고 부를 때면, 나는 수치심과 분노로 불타곤 했다. 그럴 때면 나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 기계의 일부가 되었으며 내 이름도 ‘7번’이었다. 내 동료 학생이 열렬히 정력적으로 즐겁게 훈련을 받는 것을 볼 때마다 나는 놀라곤 했다. 나는 그런 소년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어찌하여 그와 나는 교련을 받는 느낌이 그처럼 다를까 의아해했다. 확실히 거의 모든 동료들은 교련을 즐기고 있었거나 아니면 어떤 경우에나 별 생각 없이 교련을 받고 있었다. 그들은 훈련하사관과 친하게 지냈으며, 더러는 ‘한계를 넘어서기’까지 하면서 그 하사관과 함께 쏘다녔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좌로, 우로! 좌로, 우로! 나는 그 어깨가 딱 벌어지고 얼굴이 험상궂으며 금속성 목소리를 가진 녀석을 미워했던 것만큼 사람을 미워해 본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가 나에게 하는 말을 나는 모조리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먼 곳에 그의 모습이 보이면 나는 돌아서서 도망치고는 했는데, 그에게 경례하는 의무를 회피하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나를 고통스럽게 하던 스 신경의 전율을 모면하자는 데 있었다. 일찍이 나에게 해를 끼친 사람이 있다면, 그 훈련하사관이 바르 그였다. 육체적, 정신적 피해였다. 내가 소년 시절부터 시달려 온 신경불안 증세의 일부 원인은 그 저주받을 교련 시간에 있었다고 나는 진심으로 믿는다. 그리고 내 성격에서 가장 말썽거리가 되는 격렬한 자존심도 그 원천이 바로 그 참혹했던 교련 시간에 있다고 장담한다. 물론 나에게 그런 성향은 처음부터 있었다. 그러나 그 성향은 마땅히 고쳐져야만 했고, 결코 교련 시간을 통해 악화되는 일은 없어야 했다.  좀 더 젊은 시절이었다면 학교의 연병장에서 나만이 예리한 고통을 당할 정도의 감수성을 지니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며 자랑스러워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동료 학생들도 나와 똑같은 반항심을 느꼈지만 그걸 억제하고 있었다고 확신한다. 철없는 소년처럼 교련을 즐기던 학생들도 장년기에 이르러서는 자기 자신들이나 동포들에게 병역이 부과되는 것을 환영할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라 믿는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영국인들이 열렬히 혹은 조심성 없이 징병제도를 받아들임으로써 외세에 의한 정복을 모면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정복당하고 피를 흘리는 것이 훨씬 더 나을지도 모른다. 물론 영국인들은 이런 견해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영국을 사랑하는 사람들 중에 이런 생각을 해 보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날이 다가온다면 그야말로 영국을 위해서는 불행한 일이 될 것이다.“ 


간결하고도 폐부를 찌르는 산문, 심약한 감수성, “한남”이라면 공감할 수 밖에 없는 주제에 나는 곧바로 매혹당했다. 위의 글 외에도 “헨리 라이크로프트의 내밀한 기록”에는 좋은 글들이 많다. ( 잊고 있었는데 "헨리 라이크로프트"는 "조지 기싱"의 분신이다. ) 반응이 좋다면 독갤에서 그의 글을 더 소개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조지 기싱”이 인용하면서 자신만큼 절절히 공감하는 사람은 없을거라던 문장을 소개하겠다. 

 

그동안 나는 한없이 안식을 찾아 헤매었지만, 책을 들고 한쪽 구석에 앉아 있을 때 말고는 안식은 없었다. (In omnibus requiem quaesivi, et nusquam inveni nisi in angulo cum libro) - 토마스 아 켐피스 ( Thomas a Kempis ), 1380년 ~ 1471, 독일의 수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