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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 > - 린이한 (비채) 허유영 옮김
성폭력 피해자가 유서처럼 남기고 떠났다고 알려진 실화 바탕의 소설이다.
문장이 예상외로 아름답다. 이렇게 문장과 묘사력이 매력적인 소설은 정말 오랜만이다.
대만인들의 생활상 또한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어딘가 한국 문학 작품을 읽는 느낌이다. 책의 분위기나 묘사, 중년 문학 선생과 어린 소녀와의 관계 등 이 모든 얘기들이 자꾸만 바다 건너 대만의 얘기가 아닌 우리나라의 얘기처럼 느껴진다.
성폭력에 대한 묘사는 은유적이면서 동시에 노골성을 띄어 소름이 돋는다. 피해자와 가해자를 번갈아 묘사하는 게 적절해 보인다. 감정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소녀를 노리는 성범죄자의 소름끼치는 모습을 잘 표현했다. 정말 묘사력이 남다른 소설이다. 동양의 롤리타라고 할 수 있겠다.
각 과목별 선생들의 대화도 눈길을 끈다. 그들도 결국 성욕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남자들이다. 대만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도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사제 간의 부적절한 관계들이 남몰래 넘쳐난다. 예술 계열, 특히 문학과 관련된 업계에선 빈번한 일이다. 내 주위에도 사제 간의 부적절한 관계로 문제가 생긴 경우를 여러 번 봤다. 절대 남의 일이 아니다.
아이러니한 건, 여학생들 중에도 적극적으로 연상의 성인 남성을 바라며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다.
대만의 가족 관계나 결혼, 연애 문제들도 소설에 자주 등장한다. 한국과 크게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 ‘인생’을 감상하는 장면에서 하나 얘기하자면, 중국 영화는(대만이든 홍콩이든 중화권을 다 포함시켜서) 어딘가 퇴화된 느낌이다. ‘인생’ 같은 명작 영화가 예전에 제작됐는데 지금 중국 영화 시장은 몸집만 커졌지 질적으로 하락했다. 중화권의 소프트 파워도 마음만 먹으면 아시아를 쌈 싸먹을 텐데 그놈의 중국몽이 뭐라고.
한편 이런 생각도 든다. 이런 명작들이 중화권에서 쏟아져 나오지 않는 건, 마오의 문화대혁명과 시진핑의 중국몽 덕분이 아닐까. 한국이나 일본은 넘볼 수 없는 잠재력을 그들은 갖고 있다. 그러니 문화대혁명을 한 번만 더 일으키자. 한국 문화 산업이 중국과 일본의 틈에서 살아남으려면 문화대혁명이 필요하다. 고추 안 씻는 마오가 그립다. (??)
다시 책으로 돌아가자면, 리궈화가 두 소녀에게 접근하는 것도 꽤나 자연스럽다. 사제 간의 로맨스로 포장된 성폭력 묘사로는 이 작품이 최고인 것 같다. 문학 선생답게 자신의 언어적 재능을 살려 어린 소녀를 구슬리다니. 내 눈에는 추악한 사기꾼의 악마 같은 혓바닥 놀음으로 보여 소름이 끼친다. 전형적이고 상투적일 수 있지만 리얼하다.
첸이웨이에게 폭행당하며 자신을 빼앗긴 이원은 작품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까. 뭔가 세대를 초월해 악이 대물림되는 느낌이다. 이원은 수동적인 여성상을 상징하는 걸까. 세대가 달라도 바뀌지 않는 여성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비슷한 주제라도 한국 문학과 질적으로 다르다. 이참에 한 번 외쳐보고 싶다. 타이완 넘버원! 82년생 김지영 따위와는 급이 다른 소설이다.
중화권에 나이 어린 여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여러 문인들이 언급되는데, 비단 중국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어쩌면 폭력을 예술로 포장하는 건 문인들이 가장 잘 저지르는 악행일지도 모른다.
리궈화는 이미 오래 전부터 어린 여학생들을 노렸다. 역시 초범이 아니다.
성에 대한 금기가 성범죄자에겐 방패가 되고 피해자에겐 족쇄가 되는 듯하다. 나도 살면서 느낀 거지만 여성들은 자신을 지도해주고 사랑해주는 대상을 갈구한다. 특히 사제 관계에서 그런 감정이 싹트는 경우를 종종 봤다. 이를 이용하는 남자들이 꽤 있어 보인다.
사랑을 불륜으로 포장하는 건, 관점에 따라 예술이거나 죄악이 될 수 있다. 허나 많은 예술가들, 특히 문학인들은 이를 어떻게든 포장하려고 애를 쓴다. 난 그 사실이 역겹다. 내가 아는 사례만 해도 여럿인지라 절대 소설 속 이야기로만 전해지지 않는다.
팡쓰치의 혼란스러움이 글을 통해 전달된다. 자기 스스로 파괴되지 않으려 스스로를 사랑이라고 속이는 걸지도 모른다.
작품 전반에 죽음의 그림자가 느껴진다. 저자의 자살은 소설로 이미 예고된 걸지도 모른다.
분량 문제로 2편에서 계속.
짤 무슨 그림인가오 - dc App
백진스키의 그림. 제목은 모르겠다. 내가 알기론 백진스키는 그림에 제목을 붙이지 않는 걸로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