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만들어낸 체제가 마침내는 스스로 인간을 통제한다는부분이지..
사람들은 스스로를 통제하기 위해서 시스템을 만들어내는데, 그게 일정 수준 이상으로 커지면 우리의 통제권을 벗어남
충분히 커진 권력기관은 어떤 개인의 통제도 받지 않음. 오히려 개인을 통제하지.

소설 속에선 결국 빅브라더가 누군지 끝까지 나오지 않음.
사실 빅브라더는 실제론 존재하지 않는 가공의 인물이거나, 오세아니아 초창기에만 존재했었던 인물일 가능성이 높지. 골드스타인도 마찬가지고.

골드스타인은 동물농장에서도 등장함. 스노볼은 나폴레옹에게 쫓겨난 뒤에 직접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음. 그러나 나폴레옹에 의해 끊임없이 언급되지. 농장의 평화를 위협하는 스노볼같은 반역자가 살아있다면 농장 동물들은 한시도 안심할수 없는거지. 불평등이나 부조리에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스노볼' 한마디에 정리돼버림.

즉 체제는 어떤 상징과 역할, 관계들을 만들어서 구성원을 통제하는데, 그 상징이나 역할들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것일 가능성이 높음. 스노볼은 쫓겨난 이후 어디서 굶어죽었는지도 모르는 상태고, 빅브라더나 골드스타인은 정황상 만들어낸것이 거의 확실한 일종의 심볼이지. 중요한건 그것들이 물리적으론 실재하지 않지만 사회구성원들의 마음속에는 실재한다는것임. 구성원들은 상징을 떠올리고 스스로를 감시, 통제하니까.




가장 무서운점은 이부분임. 인간이 체제에 통제당하는데 정작 우리가 만든 그 체제를 통제하는 사람은 없다는거. 자기 부모가 반역자인것같다고 밀고하는 아이들. 자신의 아이에게 밀고당한 파슨스. 주인공, 줄리아, 사전 편찬하던 동료. 피해자는 있고 가해자는 없는 사회가 되는것임. 오브라이언은 가해자인가? 단기적으로 보면 그럴수도 있음. 하지만 오브라이언 역시 체제에 반항할수는 없음. 당의 비밀을 알고있고, 빅브라더가 허구일수도 있다는것도 알고 있으나, 그 역시 당에 복종해야만 함. 이 사회에 영원한 가해자나 영원한 피해자는 존재하지 않음. 당이란 괴물에게 언젠가는 잡아먹힐 먹잇감들만 있을뿐임. 파슨스가 그렇게 충성했음에도 하룻밤의 실수로 죽었듯, 오브라이언도 언젠간 자기가 남에게 했던것처럼 숙청되는 운명을 맞이할거. 물론 오브라이언을 숙청한 인물도 똑같이 언젠간 숙청당할거고.

이쯤되면 가장 무서운것은 (잔혹함이나 야만성, 폭력성따위를 지닌) 개인의로써의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집단성과, 인간이 만들어낸 자기감시의 시스템이라는걸 알수 있음. 어떤 고위급 인사도 체제를 통제할수 없음. 압제자도 존재하지 않음. 그들도 살아남기 위해서 당에 충성할뿐이지. 열심히 일할수록, 개인에대한 당의 통제력도 강력해짐.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지지.


결론적으로 말해서
오웰이 전체주의와 소련 공산주의에서 느꼈던 공포는
단순한 개인에대한 전체의 탄압같은게 아니었던것같음
예를들어 노예제도도 소수에대한 다수의 탄압이지만
(물론 끔찍하고 잔혹한 역사지만) 1984에서 묘사하는것처럼 다가오진 않음. 다른 의미로 비인간적일지언정.

내가 느낀바론, 1984에서 경고하는 공포는 사회의 허구성임.
오세아니아는 허구로 가득차 있는 사회임.
나라의 상징과 주적인 빅 브라더, 골드스타인부터 허구고
부서명도 모조리 역설, 허구임.
진리부는 진리를 표방하지만 거짓만을 만들어냄.
애정부는 증오와 감시를 만들어내지.
그럼에도 그것들은 허구의 상징을 내세우고 허구로 구성된 체계 내에서 인간들을 허위스럽게 살도록 함.
윈스턴은 무엇때문에 불만을 느끼는가? 그의 삶이 허위로 가득차 있기때문임. 실제론 숙청당했지만 증발로 표현되는 동료들, 실제론 존재함에도 삭제되는 역사들, 실제론 명백하게 진실임에도 부정되는 사실들, 2분간 증오, 이중사고...
모든게 허위허구.
실제의 욕구, 실제의 사실, 실제의 삶은 텔레스크린이 감시하지 않는곳에서만 존재할수 있음. 심지어 사람들조차 믿을수 없어. 가장 가까운 동료는 커녕, 자식조차 감시자가 되니까. 멍청하리만치 열심히 당에 충성했음에도 숙청된 파슨스의 삶은 얼마나 허위스럽나. 어쩌면 파슨스도, 윈스턴같은 불만을 마음에 품고 살았을수도 있음.(그게 아니라면 왜 그런 잠꼬대를 했을까?) 그럼에도 살아남기 위해서, 가족, 특히 자식을 위해서 그는 기꺼이 멍청이가 되었다. 라고 볼수도 있지. 물론 그 삶의 결말은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자식의 밀고임. 허위의 삶을 감내하면서까지 지켜내고자 했던 소중한것들은 이미 허위에 잠식 돼 있음. 자식에게 밀고당했단 사실을 안 파슨스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난 삶을 후회했을까? 아니면 정말로 마침내 당에 세뇌되어 딸을 자랑스러워 했을까? 최후의 순간까지 파슨스의 삶은 허위였음.


윈스턴이 가장 두려워했던건, 그런 허위로 가득 찬 삶을 강요하는 허위적 체제 아니었을지. 그런 체제를 만들고 유지하는 상급 당원들조차 허위의 삶을 살지. 오세아니아 사횐 시작도 끝도 없는 아이러니와 허위의 무한루프에 빠져있음.
윈스턴이 거부하고자 했던건 그 모든 허위였을것임.
그래서 사상통제를 당하지 않는 노동자들과 대화해보고싶었던거고(물론 그들은 다른 형태의 허위에 지배당하고 있었고), 줄리아와 진짜 사랑과 섹스를 나누고싶었던것임.


결국 윈스턴은 인간성을 말살당하고 빅브라더를 사랑한다는 말을 하게 됨. 이것은 윈스턴의 본심이 아니고 고문으로 만들어진 거짓자백임. 자백이 윈스턴 자신의 진심이라고 믿고싶어질만큼 끔찍한 고문으로 만들어진.
당도, 오브라이언도, 윈스턴의 고백이 진정한 그의 진심은 아니라는걸 알고 있음. 윈스턴은 이미 예전의 윈스턴이 아니고, 고문으로 개조된 당의 로봇이니까. 그럼에도 오브라이언은 당이 성공적으로 윈스턴을 개심시켰다고 생각함.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이중사고가 있으니까. 아이러니 그 자체임.
반대되는 두 사실을 동시에 믿을수 있다는 강령이야말로 오세아니아 사회의 허위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치지.




실제로 현실에서 공산주의와 전체주의가 보이는 허위성은 소설속의 오세아니아에 못지 않다. 동무라고 말하지만 전혀 동무가 아니고, 평등을 내세우지만 전혀 평등하지 않음. 우리가 본능적으로 전체주의사회를 두려워하는것은, 압제와 차별, 폭력에대한 공포때문이 아님.
그것들이 완전히 허위적이기때문에 두려워하는거.
일제시대에, 일본은 한국인을 핍박하고 착취했지만, 진실은 날조되지 않았음.
적어도 사람들은 자신들이 착취당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고, 삶은 고통스러울지언정 허위적이진 않았음. 그러나 전체주의 사회의 삶은 허위적임. 우리가 수많은 문제 속에서 살면서도 자유사회에 남고자 하는것은 이 사회가 전체주의 사회보단 진실되다고 느끼기때문일거야. 날조된 평화 속에서 사는것보단, 차라리 난장판일지언정 날것 그대로인 삶이 낫다는거지.
오웰이 느낀, 그리고 경고하려 한 진정한 공포는
진실을 볼 자유조차 부정해버리는(그리고 부정했다는 사실조차 날조해버리는) 사회의 허위성
그고 그런 허위성을 만드는 사회체제 자체의 생명력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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