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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실프>와는 달리 번역서의 제목은 책에 대한 상당한 정보를 던져준다. '형사 실프'니 아마도 추리소설에 들어갈 테고, '평행 우주'라고 하니 또 양자역학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양자역학을 유사과학스러운 사변으로 사용하는 작가들은 참 많다. 가장 먼저 생각난 건 SF소설인 <쿼런틴>인데, 이 글과도 통하는 바가 어느 정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쿼런틴>을 읽고 이게 무슨 헛소리야, 하고 생각한 사람은 이 책 역시 넘기면 된다. 대신, 엄격한 과학적 수식 대신 루이스, 흄, 맥타가르트 같은 양반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있던 사람이라면 이 글 역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양자역학의 남용에 경기를 일으키는 독자가 이미 나가 떨어졌을 거라고 믿고 이야기를 소개해보겠다. 두 천재 물리학자가 있는데, 갈등으로 헤어지고 난 뒤 한 명, 제바스티안은 다중세계 이론을 믿는 다소 대중 친화적인 교수가 되고, 다른 한 명, 오스카는 대통합 이론을 증명하고자 하는 순수 물리학자로 남는다. 전자는 이미 물리계의 첨단에선 멀어진 상태로 가정을 꾸리고 있고, 후자는 그런 상대의 쇠락이 그리 반갑지 않다. 이따금 만나 함께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할 때마다 서로의 친분은 그대로지만 이론적인 부분에선 늘 갈등을 빚는다. 그리고 이 갈등이 소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원인이 되고, 모든 사변이 그것의 변주로 등장한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제바스티안은 오스카와 함께 참여한 TV쇼에서 다중세계 이론을 지지할 이유로 실존주의와 자유의지를 이야기한다. 모든 것이 다 결정되어 있는 숙명론적인 유물관으론 우리에게 선택의 자유가 있다는 걸 도저히 보일 수 없다. 그러나 다중세계 이론을 지지한다면. 각 선택으로 우리는 다른 세계를 선택하며 분명 그 세계 안에서는 인과적으로 이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지만, 수많은 가능한 세계 중 하나를 선택한 것이 주체인 인간이기에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이다. 오스카는 (만약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세계 외에는 우리에겐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에-상호작용이 불가능한 수많은 세계의 존재를 대체 어떻게 검증할 것인가?-형이상학적 사변이자 아주 뻔한 변명이라고 한다. 나는 하지 않는 선택지를 고를 수 있었지만, 한다는 선택지를 골랐다. 마약을 끊을 수 있었지만, 끊지 않았다. 퍽이나.



이 이야기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사건으로 변주되고, 그 과정에서 제바스티안은 당시 오스카가 이야기한 것을 생각하게 된다. 역으로, 이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 실프는 제바스티안의 생각을 다시 원래 그의 것으로 돌리고자 하고 오스카에게 자신의 말로 하여금 진실을 알려주도록 한다.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삼가겠다. 비록 추리 소설의 기준으로 보면 좀 맥빠지는 구석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추리 소설은 추리 소설이니 말이다.



다만 1차, 2차 거름망을 통과한 사람조차도 이겨내야 할 마지막 관문이 있는데, 옮긴이의 후기에도 나오듯 이 글은 너무나, 괴상한 은유가 많다. 수많은 묘사로부터 괴상한 은유가 이어지고 거기에서 사변으로 이어지다가 사건이 벌어지는데, 그냥 읽고 있으면 어디부터가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고 어디까지가 비유적 표현인지, 아니면 약간 머리가 맛이 간 인물의 헛소리스러운 말인지 구분하기가 힘들다. 작가가 '독일' '법조인'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사실 이런 난이도를 미리 예상했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문장 자체는 오히려 만연체가 아니라 뚝, 뚝 잘 끊어지는 수준이라 읽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