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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한동안 너무 정치철학 쪽의 저술들만 읽은 것 같아서, 최근에는 대학교 2학년 때까지 내 주된 관심사였던 분야 - 보다 '정통적인' 철학 - 를 돌이켜보고 있다. 그러다보니 철학사 책을 계속 뒤적거리게 되었고, 간단하게나마 내가 가진 세 권의 책에 대한 논평을 남기고 싶어졌다.
나는 러셀, 힐쉬베르거, 스텀프의 철학사를 갖고 있다. 전자의 두 권은 '서양철학사'라는 제목으로 나와 있고, 스텀프의 철학사는 '소크라테스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먼저 주지해두고 싶은 것은 힐쉬베르거/러셀의 작품과 스텀프의 작품은 그 성격이 상이하다는 사실이다. 전자의 두 작품은 객관적인 기술(이 개념 자체가 논쟁적이지만)이라기보다는 논평에 가깝다.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각기 철학자들의 철학에 대해 평가를 내리고 있는데, 당연하지만 이런 식의 논평이 완전히 공정할 수는 없다. 물론 그러한 논평의 형식 자체가 잘못이라 비난하기는 힘들다. 철학사를 되짚어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특정한 철학적 입장을 갖고 있을 것이고, 그런 입장에 따라 앞선 철학에 대한 (다소 시대착오적일 수도 있는) 평가를 내리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미 어느 정도의 철학사적 지식을 갖고 철학적 주관을 형성한 독자가 아니라면, 그런 평가에 적절한 거리를 두고 읽는 것은 어렵다. 즉 이제 막 철학사를 접하는 독자의 입장에서 힐쉬베르거와 러셀의 작품은 데마고기가 되어버릴 위험이 있다.
반대로 스텀프의 작품은 최대한 객관적이고 평이한 어조로 철학사를 쓰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 공정성이 진정한 공정성인지 아니면 공정성이라는 이름의 변명으로 도피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그것이 교과서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은 맞다고 믿는다. 따라서 철학사 입문자에게 힐쉬베르거와 러셀의 작품을 권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이런 불공정함에 대해 거리를 둘 수 없다면, 이해가 불충분한 상태에서 무작정 특정한 철학적 입장을 비난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러셀의 저작은 그 악명에 비해서는 비교적 공정한 편이다. 다시 말해 기본적인 내용과 맥락을 잡는데 있어서까지 큰 문제가 있는 작품은 아니다. 그러나 오래 전에 쓰인 만큼 최근의 문헌학적 연구 성과를 거의 반영하고 있지 못하며, 비교적 공정하다 해도 여전히 러셀 본인의 입장이 강하게 드러난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또한 제대로 된 '철학의 역사'라기보다는 각 철학자들의 철학을 나열해둔 쪽에 가깝다는 것 역시 약점이다. 철학자들끼리의 문헌학적 영향 관계나 철학사적 맥락에 대한 충실한 이해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를테면 그는 (자유주의자로 잘 알려진 그의 정치철학적 견해에도 불구하고) 마키아벨리를 호의적으로 평가하고 있기는 하지만, 마키아벨리즘의 시민적인 측면이 어째서 최초로 '근대적'인 것으로 여겨지는지에 대해서는 온당하게 평가하고 있지 못하다. 그는 근대철학이 스콜라철학을 극복하려 노력한 점을 높게평가하는 근대주의자이면서도, 정작 르네상스기 사상들의 근대적 측면을 포착하지는 못한다.
그의 논평이 갖는 강점은 오늘날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것으로 된 관점을 채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적어도 그가 일관되게 보여주는 분석철학적•경험주의적•자유주의적 관점은 제1세계의 교양계급 시민들에게는 의심하기 어려운 것이 되어 있다. 그리고 상식적인 관점이라는 것은 그의 강점이면서 동시에 약점이기도 하다. 이것은 상식이 되어버린 관점일 뿐 철학사에서 최종승리를 거둔 관점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그의 관점을 일관되게 과거의 철학자들에게 적용하며, 그래서 선험적 관념론과 같은 분야에 대해서는 극히 부당한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 분석철학계에서 칸트주의가 부활했다 다시 가라앉은 지금에 와서 보면, 그가 칸트를 비판하는 방식은 지나치게 20세기적이다.
힐쉬베르거의 작품은 내용 면에서는 가장 충실한데, 그것은 가장 방대한 분량 탓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비교적 최근의 문헌학적 연구까지 반영하는 탓이 더 큰 듯하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힐쉬베르거의 철학사는 교과서라기보다는 논평이 덧붙여진 리뷰 논문을 엮은 것에 가깝다. 문체와 구성의 측면에서도 애초에 교과서로 쓰이기를 바란 것 같진 않은데, 전체적으로 설명이 불친절한 부분이 많고 자기 완결적인 구성으로 되어 있지도 않다. 그는 독자들이 이미 서양철학의 담론에 익숙하리라는 전제를 두고 글을 쓴다. 대륙철학적 전통 하에서 철학을 배우는 사람이 이따금 펼쳐보기는 좋은 철학사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리 추천할만한 작품은 아니다.
그의 논평은 썩 공정하지도 않다. 예를 들어 그는 니체에 대해 '큰 소리로 건강에 대해 떠들'뿐인 병든 사상가이며, 창조를 말하면서도 어떤 구체적인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는 헛소리꾼이라 비난하는데, 그런 식의 비난을 니체 본인 또한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까진 알지 못한 듯하다. 니체는 자신이 병든 근대인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으며, 또한 중기 니체의 사상은 구체적이고 대안적인 계몽의 길을 (비록 힐쉬베르거가 아무렇게나 들어맞는 공허한 틀이라고 비판하는 아포리즘의 형태로지만) 제시하고 있다. 힐쉬베르거는 주로 인식론과 형이상학 분야를 다루는 극히 정통적인 철학자인 듯한데, 그래서인지 그러한 카테고리에서 벗어나는 철학자들에 대한 논평이 약점이라는 인상을 준다.
또 그가 정통적인 대륙철학자이기 때문인지,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으로 통칭되는 현대철학의 흐름이나 분석철학에 대해서는 거의 다루지 않는다. 아마도 전자는 사회학이나 문학의 영역이라고 여기는 것 같고(오늘날 아도르노, 푸코, 들뢰즈의 이름은 철학과보다는 영문과와 비교문학과에서 더 자주 언급된다) 후자는 전문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상세한 논평을 남기기보다는 간단한 인상비평 정도를 남기는 것으로 만족한 듯하다. 나는 이런 학문적 성실함이 약점이라기보다는 강점이라고 믿는다.
스텀프의 철학사는 인상이 약한 작품이다. 문체와 구성은 평이하고 자족적이다. 특별히 논평을 남기는 부분도 많지 않다(아예 없다는 것은 아니다. 스텀프의 철학사 역시 어느 정도는 그의 철학적 입장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내용 면에서도 힐쉬베르거의 철학사만큼 충실하지 못하다. 그럼에도 그 평이함이 교과서로서는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독해의 난도도 낮지만 이정도 난도 역시 철학사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만만할 것 같지는 않다. 전체적으로 중립적이고 무난하다:
그의 논평이 갖는 강점은 오늘날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것으로 된 관점을 채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적어도 그가 일관되게 보여주는 분석철학적•경험주의적•자유주의적 관점은 제1세계의 교양계급 시민들에게는 의심하기 어려운 것이 되어 있다. 그리고 상식적인 관점이라는 것은 그의 강점이면서 동시에 약점이기도 하다. 이것은 상식이 되어버린 관점일 뿐 철학사에서 최종승리를 거둔 관점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그의 관점을 일관되게 과거의 철학자들에게 적용하며, 그래서 선험적 관념론과 같은 분야에 대해서는 극히 부당한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 분석철학계에서 칸트주의가 부활했다 다시 가라앉은 지금에 와서 보면, 그가 칸트를 비판하는 방식은 지나치게 20세기적이다.
힐쉬베르거의 작품은 내용 면에서는 가장 충실한데, 그것은 가장 방대한 분량 탓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비교적 최근의 문헌학적 연구까지 반영하는 탓이 더 큰 듯하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힐쉬베르거의 철학사는 교과서라기보다는 논평이 덧붙여진 리뷰 논문을 엮은 것에 가깝다. 문체와 구성의 측면에서도 애초에 교과서로 쓰이기를 바란 것 같진 않은데, 전체적으로 설명이 불친절한 부분이 많고 자기 완결적인 구성으로 되어 있지도 않다. 그는 독자들이 이미 서양철학의 담론에 익숙하리라는 전제를 두고 글을 쓴다. 대륙철학적 전통 하에서 철학을 배우는 사람이 이따금 펼쳐보기는 좋은 철학사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리 추천할만한 작품은 아니다.
그의 논평은 썩 공정하지도 않다. 예를 들어 그는 니체에 대해 '큰 소리로 건강에 대해 떠들'뿐인 병든 사상가이며, 창조를 말하면서도 어떤 구체적인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는 헛소리꾼이라 비난하는데, 그런 식의 비난을 니체 본인 또한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까진 알지 못한 듯하다. 니체는 자신이 병든 근대인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으며, 또한 중기 니체의 사상은 구체적이고 대안적인 계몽의 길을 (비록 힐쉬베르거가 아무렇게나 들어맞는 공허한 틀이라고 비판하는 아포리즘의 형태로지만) 제시하고 있다. 힐쉬베르거는 주로 인식론과 형이상학 분야를 다루는 극히 정통적인 철학자인 듯한데, 그래서인지 그러한 카테고리에서 벗어나는 철학자들에 대한 논평이 약점이라는 인상을 준다.
또 그가 정통적인 대륙철학자이기 때문인지,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으로 통칭되는 현대철학의 흐름이나 분석철학에 대해서는 거의 다루지 않는다. 아마도 전자는 사회학이나 문학의 영역이라고 여기는 것 같고(오늘날 아도르노, 푸코, 들뢰즈의 이름은 철학과보다는 영문과와 비교문학과에서 더 자주 언급된다) 후자는 전문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상세한 논평을 남기기보다는 간단한 인상비평 정도를 남기는 것으로 만족한 듯하다. 나는 이런 학문적 성실함이 약점이라기보다는 강점이라고 믿는다.
스텀프의 철학사는 인상이 약한 작품이다. 문체와 구성은 평이하고 자족적이다. 특별히 논평을 남기는 부분도 많지 않다(아예 없다는 것은 아니다. 스텀프의 철학사 역시 어느 정도는 그의 철학적 입장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내용 면에서도 힐쉬베르거의 철학사만큼 충실하지 못하다. 그럼에도 그 평이함이 교과서로서는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독해의 난도도 낮지만 이정도 난도 역시 철학사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만만할 것 같지는 않다. 전체적으로 중립적이고 무난하다:
시르베크 리뷰해주세오 배애애애액 힐쉬베르거는 나중에 업적딸을 치기 위해 꼭 읽어야징. 코플스턴도 봐야징 히히히 아무도 안가본 철학사씹덕의 길이다 히ㅣㅎ히
근데 중간에 4번째 문단 마지막이 좀 잘린 거 같음
앗 잘렸네
근데 힐쉬베르거든 러셀이든 좀 유명하고 예전에 나온 철학사는 빠르면 헤겔 이후, 늦어도 현대철학 이후 부터는 좀 메롱해지는 거 같음. 그래서 현대철학은 따로 다른 책으로 보강할 필요가 있다 생각....
포-모는 일단 좀 정통적인 철학자들한텐 관심밖인 분야기도 하니까....
현대철학은 어느 책으로 봐도 메롱인 듯.. 스텀프 철학사도 말이 포스트모더니즘까지지 그부분은 몇페이지 되지도 않음
그래서 힐쉬베르거는 동녘에서 나온 현대철학의 흐름으로 보강할 생각 중. 코플스턴까지 가게 되면 계보 별로 책 찾아 읽어야지.
러셀 것도 현대껀 완전 메롱.. 러셀옹이 1870년대생이니 그럴만도 함.. 오래사시긴 하셨지만..
닥닥이// 사실상 러셀 철학사는 논리 실증주의 홍보책자 아녀 ㅋㅋㅋㅋ 앞선 철학들은 문제가 많아요 하지만 여기 모든 단점을 상쇄한 완벽한 철학이 존재합니다 짝짝짝!
현대철학은 처음읽는 현대철학이 3권이랑 현대철학의 흐름으로 보강하면 좋을 듯? 최근에 리디셀렉트로 프랑스 현대철학 읽어봤는데 참고문헌도 알려주고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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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ㄷ..
코플스턴은 너무 길다...
빨간책만 읽어봤는데 칸트까진 괜찮았던 기억이
플라톤, 아우구스티누스, 토마스 아퀴나스 좋아하다보니 러셀 평은 거의 악플처럼 느껴졌음.
나한텐 힐쉬베르거 너무 빡셈.. 논문이라고 표현했는데 ㄹㅇ이네
철학사를대체 왜보는거임
적당히 비전공자면 시르베크꺼만 봐도 서양철학사 뚝딱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