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D 미소녀 연금술사 캐릭터가 주인공인 게임 시리즈처럼,
한 세기 전, 이탈리아에서 연금술사를 꿈꾸던 2D 미소녀 같은 문학소녀가 있었다.
오늘은 바로 그 연금술사의 이야기다.
"쟌넨~ 미소녀 캐릭터가 아니라 긔여운 웅가레티짱이었습니다~"
주세페 웅가레티는 단테와 타소, 아리오스토, 레오파르디로 이어지는 장대한 이탈리아 시인의 라인을 완성하던 이들 중 하나였으나,
몇 가지 '사소한' 이유로 꺼려지기도 하는 '사소하게' 문제 많은 작가이기도 하다.
아무튼 레오파르디 이후로도 이탈리아는 항상 약빤 듯한 시인들을 계속 배출하고 있었다.
초기 노벨상 수상자들 중 하나인 '사탄주의' 카르두치 같은 대선배를 비롯하여
<오르페우스 노래>로 20세기 초 이탈리아의 '저주받은 시인'으로 등극한 디노 캄파나는 물론,
전 유럽의 아이돌 시인인 '그새끼'를 배출하기까지 이른다.
가브리엘레 단눈치오 - 원시 파시스트 -
소설가이자 시인, 작가이자 사교계 명사였던 단눈치오는 오늘날까지도 파시즘의 할아버지로도 악명 높은 인물이지만,
아무튼 이탈리아 문단은 이 아이돌의 언리미티드 파워 아래 후배들을 양성하기 시작했다.
웅가레티도 물론 그러한 단눈치오의 후세대들 중 하나였다.
1888년, 주세페 웅가레티는 이탈리아인 부모 아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났다.
이 다소 특이한 배경은 그의 시의 묘사에도 꽤나 큰 영향을 끼쳤지만, 무엇보다 알렉산드리아의 학교에서 이탈리아의 선배 시인들을 비롯한 여러 상징주의 작품들, 고전들을 공부하며 시인의 꿈을 꾸기 시작한다.
그는 24살에 파리로 왔는데, 여기에서 많은 이들을 사귀었다.
아폴리네르를 비롯하여
폴 발레리 등 무수히 많은 동년배 시인들과 악수를 나눈 웅가레티는 무엇보다도
이때는 이미 죽었지만, 상징주의를 직전까지 끌고 있던 늙은 거장 스테판 말라르메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자연스레 웅가레티의 시는 '상징주의'의 연장이었지만
군대가야지~
1차 대전이 일어나자 군대로 끌려간다. 그리고 참호 속에서 시인으로 각성하고,데뷔를 하게 된다.
사실 파리에 상경했을 시절, 파리에서도 활동중이던 같은 이탈리아 미래주의자들과도 어울리는 웅가레티가 곧 새로운 문학의 물결에 몸을 담구는 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그는 전쟁이 끝난 후, 아폴리네르의 빈 왕좌를 노리려는 초현실주의 대전에도 참여했는데, 상세한 일은 언젠가 이야기한 초현실주의자들의 패싸움편을 보면 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웅가레티는 이반 골 파에 합류하여, 브르통파와 맞섰고,알다시피 이반 골은 패배하여 앙드레 브르통에게 초현실주의의 교황의 자리를 넘겨주고 만다.
그러거나 말거나, 웅가레티는 이탈리아로 돌아왔고, 연금술사로 각성하게 된다.
듀얼에 눈을 뜬 웅가레티는 헤르메스덱을 맞추어선, 동료들을 약학하기 시작한다.
이른바, 이탈리아 미래주의의 연장이자 상징주의의 연장이며, 이 시기 이탈리아 시를 좌지우지할 <헤르메스주의>, 이탈리아식 표현으로 <에르메티즈모>를 만들고, 이끌기 시작한 거다.
초현실주의와 미래주의, 그리고 무엇보다 말라르메의 언어의 상징주의에 큰 영향을 받은 웅가레티는
마치 연금술을 하듯, 말과 언어를 통한 연금술을 추구하였고, <헤르메스주의>에 심취하기도 하여 이러한 '진리'를 탐구하려는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토스의 가르침을 시에 접목하고자 한다.
와! 에메랄드 타블렛! 현자의 돌!!
<파묻힌 항구>
- 주세페 웅가레티
시인은 이곳에 도착하여
그의 노래와 함께 다시 떠올랐다
그러곤 널리 흩뿌렸다
나에게 남은 곳은
이것 - 이 시뿐
무궁무진한 비밀의
한낱 무(無)
무엇보다도 이 이탈리아 시의 <헤르메스주의>였던 <에르메티즈모>운동이 오늘날까지 주목을 받는 것은 여기에 참여한 일원들 덕분이었다.
주세페 웅가레티는 물론이었고,
레오파르디 이후 최대의 이탈리아 시인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 모더니스트 에우제니오 몬탈레,
역시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모더니스트였던 살바토레 콰시모도 등,
오늘날까지 20세기 이탈리아 시를 대표하는 3대장이 <에르메티즈모>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그치만...웅가레티...그녀석 운동을 이끈 선배면서, 혼자 노벨상 못 받았잖아?
자 쓰레기죠?
사실 웅가레티가 정말 쓰레기라서 그렇다.
미래주의자들과 어울렸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 웅가레티는 상당히 이탈리아 내셔널리스트였고,
곧 미래주의자들이 그러하듯, '그새끼'와 협력하기 시작한다.
"Miss me?"
파시스트, 또 너야?
많은 이탈리아 작가들이 그러했듯, 웅가레티도 꽤나 적극적으로 무솔리니와 파시즘에 가담한다.
다만, 희한하게도 운이 좋았다.
1936년, 그는 이탈리아를 떠나 브라질로 이사를 갔고, 거기에서 교수를 하며 아들을 잃는 등 여러 개인적인 아픔을 겪다가 다시 1942년에 이탈리아로 돌아온다.
그 후, 이탈리아는 연합군에게 해방되었고, 두체는 거꾸로 매달렸다.
과연 웅가레티는 어떻게 되었을까?
파시즘 경력으로 이탈리아 내부에서 논란이 좀 있었지만, 오늘날 이탈리아는 무솔리니 손녀도 정치가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곳이다.
그 후로도 파시즘 과거 자체는 논란이야 있었지만, 아무 일 없이 글을 쓰며 1970년까지 장수하며 잘 살다 갔다. 노벨상은 못 받았지만.
아 같은 3대장인데 어떻게 후배들은 노벨문학상 받았냐고? 둘은 반-파시즘 운동했으니까.
한 마디로 럭키 에즈라 파운드다.
"꼬우면...이탈리아인 하든가~"
또다른 밤
-주세페 웅가레티
이 어둠 속에서
얼어붙은
손들로
나는 내 얼굴을
분간했다
끝없음에 버림받은
나 자신을 바라본다
모더니스트의 기묘한 모험
- 20세기 최고 시인 예이츠의 환상록과 자서전 읽으쉴?
- <율리시스>는 어떻게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책이 되었는가?
- 위대한 피츠제럴드 (1), (2)
- 토끼공듀의 삶
- 만델스탐의 노래
- 악어들의 거리
- 독일인이 오리라
-머피를 기다리며 (1) 잃어버린 아버지를 찾아서 (2) 계승하는 중입니다 (3) 계속한다, 계속할 수 없다, 계속해야만 한다
-저주받은 상징주의자들 (0) 저주받은 시인들 (1) 세계는 한 권의 책을 위해
모더니스트의 선조들
파운드 시발 몇번을 까이는거야 ㅋㅋㅋㅋㅋㅋㅋ
라이자쟝 허벅지 으윽싼다
웅가레티 웃음벨이네 ㅋㅋㅋㅋㅋ
아니 선생님이 직접 번역하신 겁니가..?
그래도 놀랍구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