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왜 지워진거지? 다시 올림

1961년 작품이고 1960년대 말에 번역되어 전세계에 읽혀졌다고 한다. 이 소설을 읽고 마르케스가 감명 받아 한참 뒤에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을 쓴 것도 유명하다.

에구치라는 67세 노인이 주인공인데, 성적 능력을 잃은 노인들을 위해 나체의 젊은 처녀들을 수면제를 먹여 재워놓고는 노인들과 동침하게 하는 업소의 소문을 전해 듣고 방문한다. 거기 4번 방문해서 처녀들의 나체를 감상하고 만지면서 자신의 일생 연애편력 성적편력을 회상한다는 내용(사실 그 곳을 찾은 다른 노인들과는 달리 에구치는 발기력을 잃지는 않았다).

노년 남성이 느끼는 성적 욕망, 인생의 회한, 이성에게 더 이상 어필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분노, 저항하지 않고 노인을 받아주는 잠자는 여성에게서만 에로스를 찾을 수 있게된 노인의 서글픔, 다가올 죽음에 대한 공포와 그 이면의 타나토스적 욕망, 이런 업소를 드나드는 것에 대한 수치와 굴욕감, 자신이 잃어버린 젊음을 생생하게 가진 여자에 대한 질투, 다른 노인과 달리 발기력을 잃지 않았으므로 잠든 여자를 접하며 드는 성적 충동과 자제심간의 내적 투쟁(거기선 여자를 만지되 그 이상의 행위는 금지되어 있다), 아무 저항도 대화도 못하지만 노인을 위로하고 용서해주는 듯한 여자에게서 부처를 느끼는 종교적 마음 등이 짜증난다 싶게 집요한 여성육체에 대한 묘사와 함께 그려져있다.

에구치는 마지막 방문에서 자신의 평생의 여성편력이 어려서 사별한 엄마의 대용물을 찾아온 과정임을 깨닫게 된다. 엄마에 대한 근친상간의 욕망의 발현으로 추정되는 꿈도 꾼다. 그리고 거기서 피부가 검은 여자와 흰 여자 2명과 동침하는데 검은 여자쪽을 잠결에 죽인다. 그런데 여자 관리인에게 그걸 알리니 검은 여자는 곤히 잠들었을뿐 죽지 않았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어쨋든 그 유곽 사람들이 검은 여자를 잠든 채로 다른 집으로 실어가고 에구치는 흰 여자 곁에 남는다. 그리고 여자 관리인이 준 흰 알약을 먹고 깊은 잠에 든다. 나는 자신의 에로스의 근원이 근친상간적임을 알게 된 에구치가 검은 여자를 죽임으로써 평생의 굴레에서 벗어난다는 것 혹은 죽이지도 않은 여자를 죽였다고 믿음으로써 죄의식을 품고는 흰 알약을 먹고 자신을 죽음(잠 = 작은 죽음)으로 내모는 속죄적 자살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박범신의 '은교'와 비교를 안 할 수 없다. 은교를 읽으며 과연 한국의 1940년대생 작가들이 젊은 작가들보다는 훨씬 잘 쓰는구나하는 생각도 했지만, 대체적인 느낌은 노인의 젊음에 대한 질투심은 그럭저럭 잘 그렸지만 그 이상의 복잡한 심리를 묘사하는데는 실패했다는 것, 기존 명작문학들에서 따온 문장들을 너절하게 잔뜩 인용해놔서 밤무대 가수의 스팽글 잔뜩 붙은 의상처럼 촌스러웠다는 것.

한줄 요약 - 쉬운 문장 그러나 집요한 여체 묘사, 어려운 심리묘사와 깊은 상징으로 가득찬 다소 읽기 껄끄러운 걸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