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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에 이어 두 번째로 읽은 모디아노의 소설.
전작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 첫 문장이 차지하는 비중만큼이나
"내가 사건의 실상을 알려줄 수는 없다. 다만 그 그림자를 보여줄 수 있을 뿐." 이 문장이 이번 작품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스탕달의 작품 속에 나오는 대사이지만) 어마어마하다.
전작에서 저 문장이 굉장히 커다란 이정표 역할을 했던 것처럼, 이번 작품에서도 작품 초입의 문장은 작품의 방향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과장을 더하자면, 이에 그치지 않고서 그 문장만으로 작품 전체를 요약할 수 있겠다.
- 소설가 장 다라간이 어느 날 우연히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되고 이를 통해 잊고 있었던 과거를 다시 맞이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통화를 했던 남자 또 그와 함께 나온 젊은 여자는 뭔가 모르게 수상해 보이고 이 때문에 소설의 초입은 추리소설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하지만 이들은 도입부에서 장 다라간을 과거로 인도하는 역할에서 그친다. 이후 소설은 이전의 다른 작품들처럼 "언제나 같은" 내용으로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장 다라간은 과거에 살았던 지역에서 과거의 사람들을 찾기도 하지만 그 탐색은 전혀 집요하지 않고 어렵게 만난 사람들에게 결정적인 질문을 던지지도 않는다. 다만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이를 통해 그들이 자신을 찾아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작가의 작품을 접해보지 않은 독자에게는 중반부까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건지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어릴 적의 꼬맹이, 습작을 시작한 20대 초반의 작가 지망생, 현재의 60대 노인. 세 시간대를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방식은 이해를 더욱 어렵게 한다. 또 그렇게 만나고 싶어하던 사람을 만나지만 그 때 왜 그랬냐고 대체 어떤 일이 있었냐고 묻지도 못한다. 더 이해하기 힘든 점은 어린 시절 부모와도 같던 사람들을 15년 만에 다시 만나고도 다시 40년 동안 아무 관계없이 지냈다는 점이다. 전작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의 주인공은 어떤 이유로 자신의 과거를 잃었고, 잃어버린 과거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이번 작품의 장 다라간도 과거의 환영을 쫓긴 하지만 그의 추적은 절실하지 않고 다급하지도 않다. 20대 때 완료했던(혹은 그처럼 보였던) 탐색을 40년 후에 다시한다. 대체 그 이유가 뭔지 곰곰히 생각해봤지만 명쾌한 해석에는 실패했다. 사건은 벌써 벌어졌으니 그 이유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고, 기억을 잃어버려서 "사건의 실상은 알 수 없고 그 그림자만 쫓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다만 그 지점에서도 작품은 충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개가 낀 듯한 희미함과 흐릿함이 작품 전체를 지배하고 있어서인지 설명 못할 비애와 애수가 느껴졌다. 문장은 아름다웠고 작품 말미에선 살짝 눈물도 났다. 작품 바로 뒤 옮긴이의 말에서 이 작품이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라는걸 알게 되자 쓸쓸함이 더해졌다.
- 패트릭 모디아노는 흔히 바스러지는 과거, 잃어버린 삶의 흔적으로 대표되는 근원적 생의 모호함을 탐색하는 작가라고 알려져 있다. 재작년에 막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읽었을 때 우연찮게 같은 책을 읽고 있던 친구의 이 소설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투정에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제목 그대로, 첫 문장 그대로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는, 그래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잃어버린 어두운 것을 찾는 이야기라고 얘기했던 것 같다. 이 작품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 읽고 나니, 거장은 자신만의 방식을 고수해서 다른 사람들을 그 쪽으로 끌어온다던 어느 소설가의 글이 생각났다.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게 되면 이제는 아무리 어두운 거리에서도 쉽게 길을 잃어버리지 않을 준비가 되지 않았을까.
ㅊㅊ
습작 갤러리가 생겼습니다.
http://gall.dcinside.com/mgallery/board/lists/?id=mooncra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