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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뭔가 좀 전에 읽었을 때 감상문에 쓰고 싶은 것들이 많았는데, 정작 쓸 때 되니까 생각 안 나는 거 보니 그 당시에 써뒀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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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내가 뭐니뭐니 해도 장르 독자에 더 가깝다는 깨달음을 가질 때가 있다. SF를 읽을 때가 그러한데, 본격적으로 진지한 독서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PKD였던 탓에 그것과 비슷한 느낌을 주면서 잘 쓴 글을 읽으면 속에서 서로 공명하는 식이다. 일종의 인이 박인 상태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PKD스러운 글이란 건 이런 식인데, 온갖 SF스러운 물건들과 세계, 인물들이 주위에 가득하지만, 정작 그것을 조명하는 척하다 이 세계 속에서 혼란스럽게 방황하고 인식론적으로 파멸하는 주인공을 보여주는 식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인식론적 파멸-소위 '통 속의 뇌'로 대표되는-에 관심이 많기도 하니 그리 특별하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기는 한다.



다만 <쿼런틴>은 PKD의 글보다는 보다 더 그 주위의 인과에 신경을 많이 쓴다. 인식론적 혼란스러움은 개인적인 차원을 벗어나지 않고, 전체 이야기의 흐름 자체에는 영향을 크게 주지 않는다. PKD의 <파머 엘드리치> 같은 글이 중간부터 실제론 무슨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지 도저히 감 잡을 수 없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수많은 '카렌'들이 그의 주위를 둘러싸는 환영이나, '실패'한 주인공의 이야기가 끊기는 부분이나, 전체 이야기의 줄기로부터 갈라져나온 가느다란 잔가지 정도일 뿐이다.



이야기의 흐름은 대략적으로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주인공이 탐정으로서 실종된 장애인을 추적하는 부분, '앙상블'에 포섭된 이후 신비스러운 과학 기술의 사용법을 점진적으로 익혀나가는 부분, 그리고 여태까지 이야기하던 설정들이 서로 완전히 맞물리면서 본격적으로 혼란스러운 현상들이 가득해지는 부분. 이렇게 정리해보니 재미 없기가 힘든 구성이긴 하다. 특히 스스로를 확산시켜 온갖 가능성들을 창출하는 모드를 본격적으로 사용할 때 주인공이 점차 그것에 익숙해지는 묘사는 판타지로서도 일품이다.



제목에 대한 이야기도 잊을 수 없겠다. <쿼런틴>이란 말이 (현재는 코로나로 인해 익숙한 말이겠지만) 그리 익숙하지 않은 만큼, 제목을 봤을 때 이게 무슨 고유명사일까 생각하던 사람도 꽤나 많을 텐데, 그 '쿼런틴'이란 말이 작중에서 어떤 설정으로 쓰이는지, 그리고 이 설정이 이야기의 중심 소재인 양자역학과 어떻게 얽히는지 보고 있자면 유려한 글 솜씨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게 된다. 우리 세계를 둘러싸는 격리 장벽. 우리가 나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것일까. 아니면, '우리의 눈으로 세계를 난도질하지 못하도록?'



다만 이 글을 읽고 여러 가지 의미로 고통의 신음을 흘리는 독자도 많았을 텐데, <쿼런틴> 역시 그 많은 유사과학스러운 양자역학 관련 소설인 탓이다. 양산형 소설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탄탄한 형이상학적 논의를 이어나가며 관측되지 못한 것들의 수축을 논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하드 SF를 기대하며 읽은 독자에게 내상을 꽤나 입히지 않았을까. 이게 참 얄궂은 것이, 암호비서(뉴로컴, $5,999), 야간 교환수(액슨, $17,999) 같은 식으로 미래 세계에 대해 본격적으로 세밀한 묘사를 보여주겠다는 듯 말하다가 나오는 게 지금 와서 보면 좀 읽기 힘든 양자역학 해석을 들고 나오니 말이다. 어떤 의미로 보면, 이건 일종의 기한 지난 논문을 보는 것과 비슷한 감상일지도 모르겠다. 잘 썼지만, 현재에 와선 완전히 사장된 이론이다, 하는 식으로.



저자의 의도는 이와 정반대였겠지만, 나 역시 <쿼런틴>을 일종의 SF의 탈을 쓴 판타지로서 재밌게 읽었다. 순수 SF니 뭐니 하는 이야기를 하지 않겠지만 (애초에 그런 이야기를 할 만큼 SF를 잘 아는 것도 아니고) 이런 내용들은 상당히 판타지스러운 환상성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 탓이다. 판타지적 내용들을 공상과학적인 상상력과 추론으로 재해석한다는 글에서 다시 판타지를 보게 되는 괴상한 회귀. 어쩌면 그게 소위 '뉴 웨이브' SF들이 갖는 아이러니한 매력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