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image.php?id=3fb8d122ecdc3f&no=29bcc427b28577a16fb3dab004c86b6f0012e229f77b6827a9bd4fdc61884d2f71c07211a7adfaf44203ee1230f4da668ccf0336a7e49d152f



이 책은 노년에 이른 주인공 파벨 예브그라포비치의 삶에 대한 회고의 기록이다. 그는 1919년 볼셰비키 혁명과 내전에 참전한 용사지만, 1970년대의 현실에서는 무력한 노인일 뿐이다. 이야기는 어느 날 옛 친구인 아샤로부터 날아든 편지 한 통에서 시작된다. 그녀가 오랜된 잡지에서 우연히 전 남편이자 혁명가인 미굴린에 대해 쓴 파벨의 기사를 발견하고, 그에게 편지를 보낸 것이다. 아내 갈랴를 잃은 뒤 자식들과 함께 공동 주택에서 살지만 자식들과의 소통 부재로 고독하면서도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파벨에게 아샤의 편지는 과거를 떠올리게 만든다. 그와 아샤, 미굴린 사이에 얽힌 비밀(아샤에 대한 파벨의 오랜 짝사랑과 질투심에 의해 미굴린에게 덮어 씌운 억울한 누명)은 서서히 드러나지만, 노인의 기억은 사건의 추이를 따르지 않고 그가 살아가는 현실과 교차하며 두서없이 조각조각 떠오른다. 즉, 서술자인 파벨의 삶을 중심으로 아샤, 블라디미르 등 유년 시절의 사람들과 슈라, 시곤체프, 미굴린, 브라슬랍스키, 나움 오를리크, 프리고다 등 내전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삶이 다양하게 펼쳐진다. 

하지만 그는 진실의 추적 과정에서 알아낸 사실을 동시대의 그 누구와도 공유하지 못한다. 그 시절을 함께 보냈던 동지들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고, 주변 타인들은 그의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 파벨은 자식들에게, 별장촌의 이웃에게, 혹은 아들 루슬란의 부탁으로 찾아온 의사들에게 그 이야기를 꺼내 보지만, 그들은 예의상 듣는 척할 뿐이다. 어느 누구도 파벨이 추구한 진실 그 자체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이런 그의 앞에 미굴린에 대한 논문을 쓰는 젊은 대학원생 이고리 뱌체슬라보비치가 나타난다. 아들 루슬란은 그 시대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새로운 세대의 손에 파벨의 자료를 넘겨준다. 젊은 연구자에게 노인의 회고록은 역사적 진실을 밝혀낼 하나의 자료가 될 것이지만, 그 시대에 실제 존재했던 사람들의 느낌과 감정들, 그리고 사건들이 그렇게 흘러가도록 만들었던 개별적이고 인간적인 숱한 계기들, 그 모든 주관적인 진정성이 몇 줄짜리 문장으로 요약되어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시간 저편에 묻히게 되리라는 것도 짐작할 수 있다.

 『노인』은 역사의 진실이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역사와 이념, 혁명과 시대 앞에 놓인 인간의 본질에 대한 깨달음을 추구한다. 1978년 그의 생전에 발표한 마지막 소설 『노인』은 그가 추구한 역사와 인간의 주제가 모두 들어가 있으면서 동시에 그 깊이를 더한다. 즉, 일상과 이념, 역사와 인간, 정의와 윤리, 진실 등 그가 탐색했던 거의 모든 주제들이 혼합되어 있을 뿐 아니라, 인간의 섬세한 심리를 드러내는 미학적 문체가 절정을 이룬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