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image.php?id=3fb8d122ecdc3f&no=24b0d769e1d32ca73ded80fa11d028310c0dd27a92083f8186361ad12eeec0ca13d60ecb4aee553a00eef3f59f08b2b86b539da8f3711206928f37fb3a3a2e1eab1b2a9763582be9b608fa3458b7ca4712f982

한(恨)과 고독에 대한 뻘글


앞서 이 감상문에서 백년의 고독과 토지를 비교하는 글을 짤막하게 쓴 적이 있다. 이번에는 ‘한’과 ‘고독’이라는 정서를 중심으로 이 두 작품을 더 면밀히 분석해보고자 한다.

토지를 대표하는 정서는 ‘한(恨)’이고, 백년의 고독을 대표하는 정서는 ‘고독’이다. 깊이 들어 가보면 이러한 정서의 차이의 배후에는 역사의 차이가 있을 테지만, 나는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를 잘 알지 못하는 관계로 작품 내부의 단서에만 집중해서 설명하려 한다.

먼저 박경리가 주장하는 ‘한’은 우리가 막연히 말하는 ‘한’과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갖는다. 한은 타자지향적인 감정이다. 토지의 등장인물들은 서로 사무친 한을 공유하고 그 속에서 유대를 키우며 미래의 평안을 소망한다. 이렇듯 토지에서는 ‘타자와의 연대’가 상당히 강조되는데, 이는 인물들 간의 관계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토지 1부, 평사리에서 벌어진 비극의 가장 큰 원인은 평사리가 집성촌이 아니었다는 점에 있다. 평사리에 사는 수십 가구 중에서 서로 피가 이어진 경우는 거의 없다. (있기는 한데 극히 드물다.) 혈연이 아닌 사람들과의 교류는 곧 ‘나와는 다른 존재’에 대한 이해와 협력으로 이어진다. 경상도, 전라도, 서울, 용정, 상해, 일본 등 지역과 국경을 막론하고 이들은 긴밀히 연대한다.

홍이가 탐욕스러웠던 생모 임이네의 죽음에 연민을 품는 장면, 서희가 최참판댁의 몰락을 가져온 숙부 구천이를 이해하는 장면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타자를 능동적으로 수용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에 비해, 백년의 고독에서는 타자와의 단절이 부각된다.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 가문의 일족은 고독할 운명을 갖고 태어난다. 그들 가족은 연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한 지붕 안에서 따로 사는 사람들이다. 이런 단절은 자기복제적인 인물들과 근친상간에서도 찾을 수 있다. 백년의 고독은 제법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듯 하지만, 거의 대부분이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 가족들이고 그마저도 호세 아르카디오와 아우렐리아노의 복제품과 같은 인물들이다. 때문에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그들은 여전히 남을 이해하지 못하고, 혼자만의 세계에 틀어박힌다.

토지에서 ‘한’을 상징하는 김환(구천이), 백년의 고독에서 고독을 상징하는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하 대령)은 이 차이를 잘 보여준다. 일단 두 인물은 닮은 구석이 꽤 많다. 차남으로 태어나, 아내의 죽음을 겪고, 혁명에 가담하여 리더 역할을 맡는다. 그 혁명의 결과는 시원찮지만, 후세의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 인물로 인식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두 인물의 차이는 ‘한’과 ‘고독’이라는 중심 정서에서 비롯된다. 별당아씨를 잃고 혼자서 거지행세를 하며 방랑하던 김환은 나이가 들수록 수많은 사람들과 협력하며 자신의 한을 타인과 공유하는 반면에, 대령은 나이가 들수록 혼자만의 세계에 틀어박힌다. 김환과 강쇠의 산중문답이 ‘한’을 대표한다면, 대령의 황금물고기는 ‘고독’을 상징한다.

이 작품의 결말도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토지의 결말은 미래를 예고하고 있다. 후반부에 등장한 공산주의자들과 결말을 장식한 광복은 아직 이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음을 내비친다. 부엔디아 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마콘도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언제나 그래 왔듯이 타자와 영원히 단절된다. 그들에게는 어떤 구원도 주어지지 않고, 대령이 총살당하기 직전 아버지와 함께 얼음을 보러가던 유년기를 떠올리는 일, 그 안에 담긴 노스텔지어만이 남게 된다.

이 두 작품은 상당히 스케일이 큰 편이다. 분량은 말할 것도 없고, 작품에서 흐르는 시간과 등장하는 인물들만 봐도 그렇다. 그런 이유로 언뜻 봐서는 위 작품들이 그저 난잡한 서사를 주구장창 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작품들은 각각 한과 고독이라는 중심 정서를 바탕으로 수많은 인물과 이야기와 감정을 하나로 묶었다. 그 결과 소설 종말론에 대항할 항구적 가치를 지닌 작품이 될 수 있었다. 이 두 작품에 경의를 표하며 글을 마친다.

- dc official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