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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빌헬름 텔
저자 : 프리드리히 쉴러
읽은 기간 : 04.21~04.23
출판사 : 을유 문화사
13세기 말, 오스트리아의 식민지였던 스위스.
스위스는 식민지였지만 <자유 서한>에 따라, 황제에게 지세(地稅)와 병역의 의무만 이행하고 자치권을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오스트리아 황제였던 알브레히트 1세가 이러한 <자유 서한>을 무시하면서, 태수들이 폭정을 일삼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민중이 일어납니다.
빌헬름 텔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만들어진 가상의 인물입니다.
아들의 머리에 사과를 올려놓고 맞춘 명사수 이야기(로빈 훗 아님).
제목은 몰라도 한 번쯤은 들어본 '윌리엄 텔 서곡' 은
서양에서 '빌헬름 텔'이 얼마나 유명한 전설 속 인물인지 가늠하게 해줍니다.
-윌리엄 텔 서곡-
스위스 우리주(Uri州)의 사람들은 우리주의 태수인 게슬러의 폭정이 심해지자 봉기를 결의합니다.
명사수인 텔에게도 봉기를 함께 하자는 제의가 들어오지만 텔은 그것을 거절합니다.
'뱀도 가만있는 사람은 물지 않습니다.
백성들이 동요하지 않으면 그들도 결국 저절로 지칠 것입니다.'
사실 텔은 마을과는 멀리 떨어진 산중에서 살았기 때문에 태수의 폭정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자신과는 딱히 상관없는 일에 마음이 내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런 텔을 슈타우파허가 계속해서 설득합니다.
'공동의 문제를 그렇게 냉정하게 외면할 겁니까?'
이에 텔은 '확실히 믿을 것은 자기 뿐'이라며 결국 봉기에서 빠지게 되죠.
그러다가 텔이 자그마한 실수를 하나 합니다.
우리주 광장에는 기다란 장대가 있었는데 그 장대의 꼭대기에는 태수의 모자가 걸려있었습니다.
태수는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모자를 보면 허리를 굽혀 예를 표시하라는 명령을 내린 상태였지요.
하지만 텔은 그냥 지나가다가 태수의 수하에게 잡히게 됩니다.
이때문에 텔은 벌로 자신의 아들의 머리에 사과를 올려놓고 그것을 맞추라는 벌을 받게됩니다.
다행이 사과는 맞췄지만 태수에 대한 엄청난 분노가 끓은 텔은 결국 태수의 심장을 석궁으로 꿰뚫어버립니다.
결국 우리주에는 평화가 찾아오고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되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텔의 태수 저격은 봉기의 성공으로 이어지는 결말을 맺게 됐습니다만, 그의 행동은 자유와 폭정의 종결이라는 대의(大義)를 이루기 위함은 아니었습니다.
아들의 머리 위에 놓인 사과를 쏘라는 끔찍한 형벌을 받았다는 사실에 대한 사적인 복수였지요.
텔은 태수를 쏘기 직전, 태수의 악행을 말하며 저격을 정당화하는 긴 독백에서, 태수가 우리주에 폭정을 일삼았다는 사실보다는 자신의 가정을 파괴하려 했다는 것에 책임을 묻습니다.
그는 이 희곡에서 다른 등장인물과는 홀로 떨어진 '마이웨이'를 걷는 인물인 것이죠.
또한 그는 작중에서 등장하는 '유일한' 살인자입니다.(사실 한 명 더 있는데 비중이 크지 않아서...)
스위스의 민중 봉기를 계획한 무리들은 봉기를 하면서 '피를 묻히지 않기로' 약속합니다.
그러나 봉기계획을 받아들이지 않은 텔은 마이웨이로 태수를 죽여버렸죠.
결국 명사수 빌헬름 텔은 그의 석궁을 '다시는 쓰지 않겠다'고 맹세하면서 살인을 했다는 죄책감을 덜어내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결국 그는 자신을 '죄지은 인간'으로 칭하면서 스스로 그 죄를 인정합니다.
악(폭정)에 악(살인)으로 맞선 텔.
결국 그 스스로 죄인이 되었습니다.
저자인 프리드리히 쉴러는 프랑스 혁명의 시대를 살았습니다.
민병대를 조직하고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며 결국 공화정을 선포하고 루이 16세를 처형하는 민중들.
그런 프랑스 혁명을 쉴러는 비판했다고 합니다.
그는 시민들이 저항권을 가지는 것과 동시에 저항권의 올바른 사용 또한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저항이 무분별한 폭력을 낳는다면 저항 자체의 정당성이 사라진다는 생각이었죠.
무언가를 갈아엎기 위해서 폭력이 행사되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많이 보아왔습니다.
은나라 주왕의 폭정을 견디다 못해 일어난 주나라의 무왕.
귀족사회의 모순이 극에 달한 고려를 엎어버리고 새로운 나라를 세운 이성계와 정도전.
하지만 그들의 폭력성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백이와 숙제가 그러하였고 두문불출한 유생들이 그러하였죠.
분명 주나라는 공자에게 칭송을 받았던 이상국가였습니다.
조선 또한 귀족사회의 모순을 제거하고 능력주의의 관료사회로 발돋음한 발전된 나라였지요.
하지만 그들의 정당성은, 폭력으로 인해 깎아내려졌습니다.
공자는 주무왕을 '예는 있으나 인이 없다'라고 비판하였고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은 아직까지 그 정당성이 논란중이며,
선죽교 사건은 이방원을 잔혹한 피의 군주, 정몽주를 충신중의 충신 이미지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빌헬름 텔」의 봉기파와 텔의 차이점들, 텔의 내적갈등을 보면서 우리의 저항이 어디까지 정당화 될 수 있는가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결론이 빈약하네요.
개인정비 2시간 반을 바쳐서 써봤습니다..
시간이 더 있었다면 지금보단 정제되게 썼을텐데 아쉽네요.
사실 글은 이렇게 썼지만 저는 맹자의 혁명사상을 더 좋아합니다.
민심은 천심이요. 그것을 거스르면 갈아엎어라!
정통성은 폭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민심에 있습니다.
공자 비유 ㅅㅌㅊ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ㅠㅠ 쓴 보람이 있네요
2시간 반이 헛되지 않은 글이였어
해당 댓글은 삭제되었습니다.
「빌헬름 텔」 가십시다. 재미로만 볼 때도 ㅅㅌㅊ입니다
해당 댓글은 삭제되었습니다.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ㅠㅠㅠㅠ
표지가 조로가 맞붙었던 돌인간 같네요
작년이였나 윌리엄 텔 오페라 국내초연 갔던거 생각나네요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어 버리기도 한다죠.. 군붕쿤 잘읽었다구~~ - dc App